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도자와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그 흔한 이야기가 요즘처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때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문득 김대중 대통령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한 과거에 머물지 않고 반추를 통해 미래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마이뉴스>에 '하늘에서 온 편지'를 공개합니다. 이 글은 단순히 제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쓴 것이 아닌,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서신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그의 글과 연설문 등을 종합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또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를 가장 잘 하는, 깨어있는 지식인 개그맨 '노정렬'씨가 이 글을 녹취하여 풀어 이야기 합니다. '주권방송'(www.615tv.net)에 함께 공개합니다. - 기자 말

  

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친구 여러분, 이 더운 날씨에 다들 평안하십니까? DJ예요. 근래에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 국민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참 안됐어요. 그리고 도무지 정부의 대처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답답하고 또 두려웠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국민들이 아예 '희망'이라는 것을 버리는 것은 아닌가?

대한민국을 저 버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이 마음에 의지처가 있어야 하는데, 민심은 이미 박근혜 정권을 떠난 것 같고, 이를 대신해야 할 야당은 전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가 답답해서 나섰습니다.

책임의 절반은 야권의 몫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으로 만든 캘리그래피를 시사만화가 유사랑님이 보내 주셨다.
▲ 김대중 대통령의 캘리그래피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으로 만든 캘리그래피를 시사만화가 유사랑님이 보내 주셨다.
ⓒ 유사랑

관련사진보기

다들 그렇겠지만, 저는 세월호 사건을 예사로 보지 않습니다. 단순히 수학여행을 가다 사고가 나서 수많은 어린 넋들이 수장된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 국민의 안전이 가장 우선이라고 규정한 헌법 제 34조 6항... 제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6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 헌법 제 34조 6항이 완전히 무시가 되어버린 비극인 것입니다. 국가가 국가로서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된 계기가 된 거예요.

문제는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이 진지하게 "국가란 과연 무엇이냐?"라는 질문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책임을 정면으로 회피하고 있어요. 거기다 야당까지 휘둘리고 있습니다.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한마디 하겠습니다.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민주주의적 사고, 협상과 타협 등 4가지를 숙성시켜야 한다. 현실정치에서 소신과 명분 못지않게 현실적인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 나는 늘 핵심을 이야기 하려 했고 선명한 대안을 제시하며 비판했다. 이것이 나의 정치생활을 지배한 철칙이다."

저는 이러한 자세가 과연 야당에게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야당의 리더가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자연스레 경쟁하는 여당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이 시기, 국가가 국가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와 청와대가 국민을 속이고 자꾸 나쁜 정치로 이끌어가고 있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의 절반은 야당에게 있다! 야권이 더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지한 연대의 정신을 만들어야

지난 지방선거와 이번 재·보궐선거를 보면서 저는, 야권의 리더십,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공천문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정치적 일을 풀어가는 능력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한 마디 합니다.

제가 아직 이승에 있었을 때, 그러니까 2009년 6월에 당시 정세균 대표,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에게 간곡하게 이야기 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를 버리면서 큰 틀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크니까 7을 차지하고 나머지 3을 나눠가지라는 식으로 해선 곤란하다. 망원경으로 2012년까지를 보고 현미경으로 6월 국회를 봐야 한다."

또 저는 이 시기에 함께 하던 비서관들과 '토요강의'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협력하고 있는 타 정파에) 30,40석을 양보해서 우리가 60석을 얻어 모두 100석을 얻을 것인지, 따로따로 나가서 40석만 얻을 것인지 그것은 분명하다. 빈손으로 말 것인지, 아니면 전체 10개 중 5개라도 얻어서 2,3개씩이라도 나눠 갖는 것이 나은 지 그것은 분명하다."

저는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에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세 가지를 시대의 3대 위기로 규정했습니다. 이 위기의 극복은 함께 연합해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위기의 여파가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야권의 지도자들은 길게 멀리 망원경으로 보고, 현실의 발등에 떨어진 문제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 상대방은 아무래도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이기기 참으로 어려운, 참으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연대의 정신이 무엇인지 찾고 그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아예 대화조차 단절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내 분명히 경고하는데! 진지한 연대의 정신을 모색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인 2016년, 대선인 2017년에도 똑같은 오류를 범할 것입니다.

하나의 링, 통합과 연합의 정치가 답이다

내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링은 하나만 만들고 그 위에 모두 올라가 경쟁하라"라는 겁니다. 국민들은 링 하나에서 경쟁하는 것을 봅니다. 자연스레 집중되는 것입니다. 만약 작은 링을 만든다면 일시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끝까지 가지 못합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흩어지게 되면서 그 전체 링에 지지와 관심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이칩니다.

저는 이렇게 정치를 했습니다. 여당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정치지형이 불리하고, 지지기반도 부족하고, 돈도 없고, 언론이 확실하게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통합과 연합의 정치밖에 없었습니다. 판을 키우고 하나의 링에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 새로운 이슈, 새로운 프레임을 올려놓고 경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체득한 일종의 노하우인 셈입니다.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할 때, 흔히 이야기 하는 'DJP연합'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YS의 '3당합당'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명백하게 다른 것입니다. 3당 합당은 '야합'이고 DJP연합은 말 그대로 '연합'입니다. 야합은 자신의 주체적인 정치 정체성을 포기하고 오로지 달콤한 정치적 열매에만 목표를 두는 것이고, 연합은 국민들의 이해와 요구, 의사를 기초로 목적을 같이하되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관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합을 해야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합을 하면 커집니다. 정치는 상상력의 싸움이기 때문에 '1+1=2'가 아니라 +α(플러스 알파)가 되는 것입니다.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 의심말라

나는 내 마지막 비서관인 최경환 비서에게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최 비서관, 나는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국민을 믿습니다. 우리 국민은 폐허의 땅에서 민주주의라는 장미꽃을 피운 국민입니다. 다른 나라는 수백 년 걸려서 이룩한 것들을 단 수십 년 만에 이룩한 위대한 국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에서 독립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 능력 있고 위대한 국민들이 있기에,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내 이승에서의 마지막 일기의 제목을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고 붙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권에 있는 연부역강(年富力强)한 동지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민주주의는 혁명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가는 개혁이다. 국민과 함께 가고 반걸음만 앞서 가며 손을 놓치지 마라. 강경한 것이 겉으로 선명해 보이지만 때로는 한없이 무책임하며 무능한 것이다. 재야에 있든 야당을 하든 민주주의적 과정이 중요하지 말이 거칠어지고 강퍅해져서는 안 된다. 어찌 보면 이념이란 세월이 흐르면 바래서 작은 바람에도 나부끼는 구호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김대중 자서전 1권 199쪽, 2권 327쪽)

말이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에는 내 몸의 반쪽 같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말씀하시라 권해보겠습니다. 무더운 날씨, 몸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늘에서 김대중 씀-

덧붙이는 글 | 중간에 있는 시사만화가 '유사랑'님의 캘리그래피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시사만화가 유사랑'이라는 출처는 밝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오마이뉴스와 주권방송, 시사개그맨 노정렬과 시사만화가 유사랑, 그리고 글을 쓰는 저 최요한에게 응원을 많이 해주십시오. 힘내서 글을 더 열심히 올리겠습니다.



태그:#김대중, #리더십, #통합과 연합, #주권방송, #노정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