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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정부는 '쌀 관세화'를 선언했다. 쌀 시장을 개방해 관세만 내면 어떤 쌀이든 수입해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주식인 쌀 생산기반을 지키기 위해 허가 없는 쌀 수입을 양곡관리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정부는 의무수입물량(MMA)을 감당할 수 없기에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고, 높은 관세율을 설정해 쌀 산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쌀 수입 개방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양곡관리법 개정 절차도 거치지 않고, 농민들과 합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관세율도 300~500%라는 범위만 추정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쌀에 대한 관세 예외가 인정돼 1995년 초부터 올해 말까지 두 차례 관세화 유예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쌀 생산 기반은 나아지지 않았다. 뚜렷한 대책도 없이 시장개방을 선포한 것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밥상은 카길,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 농업기업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낮은 곡물자급률, 줄어드는 농지면적

2011년 곡물자급률 22.6%에 불과하다. 쌀 이외의 곡물자급률은 보리 22.5%, 두류 6.4%, 밀 6.6%, 옥수수 0.8% 등으로 대단히 낮다.
▲ 한국의 곡물자급률 추이(1970-2011년) 2011년 곡물자급률 22.6%에 불과하다. 쌀 이외의 곡물자급률은 보리 22.5%, 두류 6.4%, 밀 6.6%, 옥수수 0.8% 등으로 대단히 낮다.
ⓒ 농림수산식품부(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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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낮아도 너무 낮다. 1990년 43.1%였던 곡물자급률은 2011년 22.6%로 떨어졌다. 쌀을 빼면 5% 이하이다. OECD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인데, 2011년에는 믿고 있던 쌀 자급률도 83%로 떨어졌다. 캐나다(180%), 프랑스(174%), 미국(125%), 독일(124%), 영국(101%)은 높은 곡물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식량생산을 위한 농지면적은 줄고 있다. 1970년 270만6천ha였던 식량작물 재배 면적은 2010년 109만3천ha로 4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벼농사 재배지역 감소율이 가장 낮았지만 쌀 관세화 이후 이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쌀 수입개방은 쌀 생산 토대를 무너뜨리고, 농촌사회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집에 반려동물이 있다면 사료 메이커를 살펴보라. 뉴트리나 애견식품 아니면 퓨리나사료가 대부분일 것이다. 카길사료는 주로 소, 닭, 돼지 사료를 생산한다. 모두 카길애그리퓨리나제품이고, 이 기업은 세계 최대 곡물기업인 카길의 자회사이다. 카길애그리퓨리나는 1967년 한국에 진출해 송탄, 천안, 군산, 정읍, 김해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갖추고, 연간 150만여 톤의 사료를 생산한다. 국내 곡물 및 사료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최근 축산 농가가 치솟는 사료비로 인해 축산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우 육우 전체 생산비 중 사료비 비중이 2012년 58.7%에서 2013년 61.2%로 상승한 상태다. 국제 곡물가격이 널뛰는 상황에서 국내 사료용 곡물생산기반이 완전히 무너졌기에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농가는 사룟값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런 문제가 쌀에서도 되풀이된다는 그것은 재앙이다.

한국의 곡물사료 시장을 장악한 카길이 마지막 남은 쌀 시장에도 진출하면 우리는 식량주권을 메이저 곡물회사에 넘기게 된다. 카길은 세계최대 곡물기업으로 엄청난 자본력, 기술력, 물류를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WTO를 비롯한 미국통상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부는 관세율을 높이겠다는 입장이지만 통상압박으로 관세율이 낮아지면 수입쌀이 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농민 아닌 농업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

청양고추 종자는 몬산토 소유다. 청양고추 종자는 IMF 이후 국내 종자회사들이 초국적 종자 기업에 매각되면서 종자의 소유권도 같이 넘어갔다.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재배돼는 작물의 26%만이 재래종이라고 한다. 토종 종자의 74%를 잃어 버린 셈이다. 몬산토는 전세계 유전자조작식품(GMO)의 90%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쌀 관세화는 몬산토에도 기회가 될 듯하다. 미국은 쌀 수입허가제를 폐지한 일본과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하면서 미국 쌀에 대한 유전자조작 검사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쌀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품질 검사를 받은 뒤 유전자조작 쌀이 아니라는 증명서를 첨부해야 유통할 수 있다.

국제통상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쌀 관세화가 되면 유전자조작 쌀이 수입될 수도 있고, 한국에서도 유전자조작 쌀이 상업화될 여지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미 농촌진흥청도 지난해 벼에 살충성 유전자를 도입한 '벼물바구미 저항성 벼'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도 GMO작물 개발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기에 유전자조작식품의 상업화에 뛰어들 수도 있다. 식품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지는 것이다.

방사능과 유전자조작, 유해첨가물 없는 안전한 밥상을 위해서는 농업 생산 기반을 지켜야 한다.
▲ 녹색당 농업정책 "땅을 살려서 사람도 사는 농업" 방사능과 유전자조작, 유해첨가물 없는 안전한 밥상을 위해서는 농업 생산 기반을 지켜야 한다.
ⓒ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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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는 줄어들고, 농민들은 노쇠해지고 있다. 농지도 농약과 화학비료 남용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역대정부에서 농업관련 부처 이름이 수시로 바뀌었지만 농업생산 기반을 다지는 정책은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채용되는 사무관들은 이미 농민 정서와 농사 경험과 거리가 멀다. 농업을 산업이라고 배운 사람들이다. 농업도 기업화, 대규모화해 수익률을 높여 경쟁력을 키워야 할 산업이지 소농이니 가족농, 친환경, 유기농은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정책도 해외식량기지정책, 6차 산업정책, 골든씨드 프로젝트 등 농기업을 중심으로 한 내용 위주이다.

카길애그리퓨리나와 몬산토코리아에 대해 검색해 보면, 언론사가 선정하는 신뢰받는 기업에 뽑히기도 하고, 서울대를 비롯해 대학교 농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 사회공헌사업을 통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영향력도 키워가고 있다. 카길과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농기업들이 국내 농업정책과 농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최소한의 비판과 감시는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이들을 견제할 시민단체나 농민단체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농업도 기계화, 규모화 추세를 따라가면서 돈이 많이 들기 시작했다. 씨앗, 비료, 농약, 비닐, 농기계, 창고, 포장, 유통 등에 든 비용 때문에, 농민들이 '쌔가 빠지게' 농사를 짓고도 비용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농민이 아니라 농업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다. 이러다간 농민들이 멸종할 판이다.

농부가 사라진 멕시코의 들판, 우리 나라의 미래다

대표적인 유전자조작식품 기업이다. 정문을 촬영하기 위해 앞에 서자마자 경비가 다가와 제지했다.
▲ 멕시코 북부 로스 모치스일대에 진출한 몬산토 대표적인 유전자조작식품 기업이다. 정문을 촬영하기 위해 앞에 서자마자 경비가 다가와 제지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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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오마이뉴스>에서 바이오에탄올을 중심으로 식량 연료화 현장을 취재를 하는 데 동행한 적이 있다. 그때 방문했던 황량한 멕시코의 들판을 잊을 수가 없다. 먼지가 폴폴 나는 길을 달리다 보면 옥수수가 자라는 광활한 땅 한가운데 최신식 몬산토 빌딩과 카길 마크가 찍힌 곡물창고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들판의 끝에 있는 마을에서 만난 농부들은 농부가 아니었다. 기업농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그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마피아에게 땅을 빌려주고 적은 임대료를 받아 살아간다. 농부들은 집수리나 노점상, 운전수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땅을 포기하는 농민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포기한 땅에 다국적 곡물기업들이 진출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20년 동안 우리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2005년 이후 8년째 쌀 목표가격을 동결하고 있다가 2013년 80㎏당 겨우 4000원 올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쌀 관세화'까지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나라에 농민이 계속 쌀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우루과이 라운드에 "쌀 수입 개방반대"를 외치며 장외집회를 벌였던 대학가는 2014년 놀랍도록 조용하다. 정말 이렇게 쌀시장이 개방되어도 되는 것일까? 중국에 '핸드폰' 팔고, '마늘' 수입하면 되는 것일까?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아메리카 원주민 '크리' 부족 추장은 "마지막 나무가 잘려나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죽으면 우리는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쌀 관세화 이후 "들판에서 마지막 농부가 사라지고, 꿀벌이 죽고, 씨앗마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제야 우리는 '카길'이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쌀 관세화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쌀을 먹고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쌀이 무너지면 농촌이 무너진다. 식량주권도 무너진다(관련기사 :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유진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입니다.



태그:#쌀 관세화, #녹색당, #카길, #몬산토, #쌀 수입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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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에너지전환을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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