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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삼정의 종업원인 가족들(왼쪽에서 며느리 정미희, 맏아들 김재승, 주인 김규섭, 안주인 원인숙, 딸 김비아, 둘째 아들 김재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삼정의 종업원인 가족들(왼쪽에서 며느리 정미희, 맏아들 김재승, 주인 김규섭, 안주인 원인숙, 딸 김비아, 둘째 아들 김재운)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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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꼭 10년 전인 2004년 3월 말, 아내는 안흥 전재고개를 넘으면서 오랜 침묵을 깼다.

"안흥으로 찾아온 손님은 맞이하지만 굳이 우리가 초대하지는 맙시다."

아내의 말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다.

우선 우리가 사는 안흥집은 다 쓰러져간 폐가를 거저 얻어 수리하여- 그것도 아내가 수개월 동안 직접- 들어간 집이기에 엄청 초라하고 궁색한 집이기 때문이다. 그 둘째는 시장도 멀거니와 우리 내외는 공동으로, 또는 각자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을 초대하면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빠트릴 수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손님 치르다가 애초 귀농의 뜻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울 구기동 집에 살 때 아내는 설날이면 가래떡을 두세 말 정도 뽑을 정도로 손님을 치렀다.

안흥으로 내려온 뒤 내가 <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연재하자 여러 독자들이 진짜로 그렇게 사는지, 자기네도 귀농하고자 정보를 얻기 위해, 또는 우리가 부동산 투기나 하려고 내려 온 줄 알고 자기네도 몇 필지 사달라고, 심심찮게 찾아와서 아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단언컨대 우리는 이곳에 내려와 여태까지 땅 한 뼘 산 적이 없다.

초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멀리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자들이, 국내 먼 곳에서 친지들이 찾아왔다. 그럴 때는 집에서 가까운 막국수 집, 두부 집, 곤드레 밥집, 메밀국수집 등으로 모시고 별미를 대접하곤 했다. 그러다가 그 얼마 후 자작나무숲미술관 원종호 관장의 소개로 당신 매제가 운영하는 횡성군 둔내면의 삼정 한우 맛집을 소개받아 한번 시식하고 그 맛에 반해 그 뒤로는 이따금 손님을 그곳으로 모시곤 했다.

제1 우엉죽
 제1 우엉죽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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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육회1
 제2 육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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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육회2
 제3 육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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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식빵 위에 올려놓은 구운고기
 제4 식빵 위에 올려놓은 구운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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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의 풀코스

안흥을 떠나 원주로 오고는 한참 뜸했다. 얼마 전 나는 장편소설을 마무리한 뒤, 몸과 마음이 몹시 허하여 오랜만에 그곳을 찾았다. 다행히 삼정 그 집은 그제나 이제나 변함없이 번창하고 있었다. 그 집의 특색이요, 매력은 모든 식자재가 유기농 친환경재료로 믿을 수 있는데다가 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는데 있다. 게다가 주인을 비롯한 전 종업원이 모두 가족인 점이요, 서양요리나 중국요리처럼 그때그때 코스별로 음식이 나오는 점이다.

삼정에서는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흑미와 우엉으로 만든 죽과 함께 들깨, 참깨, 레몬을 곁들인 샐러드로 입가심을 하게 한다. 곧 이어 잘 숙성시킨 쇠고기 두 조각이 생선회처럼 내온다.

손님 취향대로 소금이나 참기름소금에 찍어 먹으면 입안이 행복해진다. 다음 상추 겉절이에 구운 마늘과 함께 육회가 나온다. 한 젓갈 입에 넣으면 세상에 이런 맛도 있나 싶을 정도로 육회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종업원인 맏아들 김재승 씨가 손님에게 고기를 일일이 구워주고 있다
 종업원인 맏아들 김재승 씨가 손님에게 고기를 일일이 구워주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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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가 끝나면 주 메뉴가 시작된다. 강원산골 진짜 참숯불이 들어오고, 주인아들이 석쇠에 고기를 구우면서 고기 이력과 고기를 맛나게 드는 법, 둔내면의 이런저런 명소를 들려준다.

그가 식빵 조각 위에 놓아주는 방금 구운 고기를 먹으면 입안에서 저절로 녹아들 듯 어느 새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왜 식빵 위에 구운 고기를 올려놓느냐고 묻자 그는 고기가 식지 않도록, 그리고 기름이 빠지라고 그렇게 당신들이 개발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도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고자, 횡성 한우의 명인이 되고자, 이 고장에 있는 송호대학 한우유통관광과에서 정통으로 한우유통과 한우 요리를 배운 심지가 매우 깊은 젊은이였다.

그날 내가 먹은 한우는 13일간 숙성시킨 횡성 한우 등심 토시살이라고 하는데, 몇 점 먹자 왜 사람들이 횡성한우에 열광하는 까닭을 알게 했다.

맛이 고픈 사람들을 위한 집

한우 숯불구이가 끝나자 주인은 식사로 뭘 드실 거냐고 물었다. 된장찌개와 국수, 두 메뉴라는데 국수를 청했다. 잠시 후 조그마한 사발에 고명을 예쁘게 놓은 국수가 나왔다. 예로부터 "보기 좋은 음식은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맛나고 산뜻한 국수를 들자 포만감으로 더욱 행복해졌다. 마지막 후식으로 식혜가 나왔는데 색깔이 예사롭지 않았다. 모양 그대로 입안을 상큼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제5 국수
 제5 국수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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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 후식 식혜
 제6 후식 식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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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김규섭(57) 씨는 4대째 둔내 토박이로 성당에서 이웃 우천마을의 유치원 교사 원인숙(54) 씨와 성당에서 교우로 눈이 맞아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당신은 가구상을, 아내는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다가 둔내에 성우 리조트가 들어오기에 이 고장을 찾는 관광객에게 제대로 된, 고품격의 횡성 한우를 제대로 고급스럽게 맛보여 드리고자 삼정 한우맛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관광객의 방명록
 일본관광객의 방명록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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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고전했으나 이즈음에는 입소문으로 단골이 상당히 늘었다고 했다. 나에게 자랑스럽게 방명록을 보여주는데 명사들, 특히 일본관광객들이 많았다.

내가 그 점이 의아스러워 물었더니 요즘은 세계적으로 식도락가들이 많아 그들은 국경과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맛 순례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네 가게는 서울 등 외지 사람이나 외국인 손님이 더 많다고 했다. 잠시 방명록을 펴보았다.

염수정 주교님을 필두로,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박진선 샘표 사장님,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2009. 11. 12. 박완서 이경자 임철우 민병일 등 작가, "소문대로, 느낀 대로 아주 맛있게 즐기고 갑니다" 2010. 8. 14. 부산갈매기 다섯사내 일동,

"일본에서 왔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2010. 7. 16. 福田公子, 맛이 고픈 사람들을 위한 집!!! 2013. 10. 21. 유시민 등 방명록이 가득하다. 굳이 나에게도 부탁하기에 "천하 특미" 단 네 자만 썼다.

어떤 남매의 효도

삼정 안주인 원인숙씨.
 삼정 안주인 원인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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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에는 경기도 일산에서 한 남매가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와 구운 고기를 젓갈로 집어 입안으로 넣어드렸다. 그 장면에 나는 한동안 눈시울이 젖었다. 그들 남매의 효행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효도를 하지 못한 불효자식이 뒤늦게 탄식하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을 새삼 느꼈다.

주방장인 안주인에게 삼정 맛의 비결을 물었다.

"제 입맛이 몹시 까다롭거든요. 제 입맛에 맞춰 손님상에 올려요."

조금은 허함을 메우고 원주 행 버스에 올랐다. 맛난 음식을 먹는 기쁨도 매우 컸다.


태그:#횡성한우, #삼정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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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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