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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아내와 함께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아놓은 '합동분향소'가 있는 곳이다. 내가 사는 태안에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럼에도 나는 참사 발생 100일이 다 되도록 그곳을 가지 못하다가 100일을 사흘 앞둔 시점에 가게 되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미안해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매일같이 기도할 때마다 세월호를 떠올렸고, 정성껏 미사예물을 준비하여 위령미사도 여러 번 봉헌했다(참사 100일째인 오늘도 위령미사를 봉헌한다). 우리 고장의 문예회관에 임시로 마련한 분향소에도 두 번이나 갔고, 서울의 대한문 앞 광장과 시청 앞 광장에서 거행된 미사에도 여러 번 참례했다.

천주교 수원교구 '공동선 실현을 위한 사제연대'가 주최하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가 21일 저녁 8시 안산시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합동분햡소 옆)에서 거행되었다.
▲ 천주교 수원교구 미사 천주교 수원교구 '공동선 실현을 위한 사제연대'가 주최하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가 21일 저녁 8시 안산시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합동분햡소 옆)에서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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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5월 5일 저녁 대한문 앞 광장에서 거행된 참회 및 추모미사와 5월 19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거행된 참회 및 추모미사에서는 시낭송도 했다. 그리고 6월 29일 저녁에는 서산시 호수공원에서 열린 세월호 관련 행사에 아내와 함께 참석하여 시낭송을 했다.   

늘 세월호를 생각하며 생활하면서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의 합동분향소는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고생스럽게 합동분향소를 다녀왔다는 딸아이의 얘기를 전해 듣고 나도 불원간 다녀와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은 실행하지 못했다. 물론 명확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합동분향소에서 겪게 될 막막한 비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은연중 그것을 의식하면서도 100일은 넘기지 말아야지, 100일 안에 꼭 그곳을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곤 했다. 그러던 중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전하는 소식을 들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 '위로와 기억의 주간'을 지내며'라는 제목의 전문이었다.

나는 사제단의 전문을 곱씹듯이 읽으면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일말의 노여움도 느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위로와 기억의 주간'을 지내자는 제안은 사제단에서 할 것이 아니라 주교회의, 즉 주교단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 강하게 솟구쳤다. 주교님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천주교 수원교구 사제들이 21일 저녁 안산시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합동분향소 옆)에서 거행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를 공동집전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사제 입당 천주교 수원교구 사제들이 21일 저녁 안산시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합동분향소 옆)에서 거행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를 공동집전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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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런 결정에 따라, 맨 먼저 수원교구의 '공동선 실현을 위한 사제연대(대표 서북원 신부)'가 21일 저녁 8시 안산시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한다고 했다.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나는 그곳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합동분향소에도 가서 참배와 분향을 하고, 미사에도 참례하자는 생각이었다.

미사 시간은 저녁 8시이므로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도 퇴근 후 함께 갈 수 있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2014년 4월 16일의 '통한'이 머물고 있는 그곳을 갈 수 있었다.

숨이 막히는 현상 속에서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안산시 화랑유원지 제1주차장으로 갔다가 제2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길에서부터 숨이 막히는 것 같은 현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길가에 빽빽이 결집되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노란 리본들과 크고 작은 수많은 현수막들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신음을 삼키며 성호부터 그었다. 비탄과 통한의 물결, 소리 없는 아우성, 비통한 절규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울울창창한 공간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놓고 합동분향소를 향해 걸어가면서 우리 부부는 묵주기도를 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다. 한쪽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 번갈아 나타나는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내는 눈물을 닦았다. 우리 부부는 국화를 한 송이씩 받아들고 영정 앞으로 갔다. 실종자 10명을 포함하여 304명 희생자들의 영정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걷자니 발이 더없이 무거웠다.

어딘가에 꽃송이를 놓고, 영정들 앞에 놓여 있는 과자와 초콜릿들, 가족과 친구들의 편지들도 간간이 보며 영정들을 보자니 내 딸아이와 아들 녀석의 옛날 모습, 내 딸아이와 아들 녀석 친구들의 고교 시절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딸아이와 아들 녀석의 고교생 시절에 수없이 보았던 천진난만하고 발랄한 고교생들(그 모습들)이 그렇게 영정 안에 담겨 도열해 있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한 번 분향만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 죄스러워 미사 전후에 두 번 분향을 했다. 분향소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문 밖에서 분향소 안의 일부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 합동분향소 우리 부부는 한 번 분향만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 죄스러워 미사 전후에 두 번 분향을 했다. 분향소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문 밖에서 분향소 안의 일부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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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을 마친 우리 부부는 근처 야외 음악당으로 가서 미사에 참례했고, 미사 후에 또다시 분향소를 찾았다. 분향소를 한 번만 보고 가기가 왠지 죄스러워지는 마음 때문이었다. 또 한 번 분향소에 들어가 다시 분향을 했다. 영정들을 보고 또 보며 묵주기도를 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미사

천주교 수원교구 '공동선 실현을 위한 사제연대'가 주최하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는 20여 명의 사제가 공동 집전을 했고, 사제연대 대표이면서 '유무상통마을' 제2대 촌장인 서북원 베드로 신부가 주례를 했다. 신자들은 야외음악당 무대 앞 공간과 스탠드를 거의 메울 정도로 1천 여 명이 함께 했다.

서북원 신부는 미사를 시작하면서 미사의 취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주례사제의 비통한 음성 때문으로도 미사 분위기는 무거우면서도 한결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미사 강론은 원곡성당 주임 김종훈 신부가 맡았다. 

"어둠을 감싸주고, 빛이 마음의 창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위정자들 아니겠습니까? 정부가 아니겠습니까? 이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할 때 세상의 악과 어둠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15~16일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도보행진을 했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디뎠지만, 많은 이들이 동행을 해준 덕에 그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웃고 박수도 쳤습니다.

우리는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비정하고 잔인한 오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왜곡되고 은폐돼서 진실의 자리를 다른 것이 대치할 것을 염려하면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행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더 우렁차게 함께 할 때 우리의 목소리가 더 우렁차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 동행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의 가슴에서 어두운 자리가 환하게 밝아질 것입니다."

강론을 마친 후 김종훈 신부는 한국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가 지난 14일 발표한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파행과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입장'을 낭독했다. "유족 뜻대로 세월호특별법 제정하라"는 내용과 "박 대통령, 현재의 국정기조 포기하라"는 내용이 기조를 이루고 있는 이용훈 주교의 담화문을 신자들 모두 숨죽이며 귀담아 들었다.

한국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의 담화문을 들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여러 번 뇌었다. 한국주교회의 의장이며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와 함께 이용훈 주교가 우리 한국교회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없는 위안과 희망을 안겨주는 기분이었다.

영성체 후에는 '4·16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홍보 동영상이 상영되었다. 자식을 잃은 여러 명 단원고 학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 어린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동영상 상영 다음에는 미사 반주를 한 '원 밴드'의 추모 노래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추모 노래를 들으며 많은 신자들이 손수건을 눈에 대곤 했다.

천주교 수원교구 '공동선 실현을 위한 사제연대'가 21일 저녁 안산시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합동분향소 옆)에서 봉헌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에 참례하면서 영성체 후에 자작시 낭송을 했다.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라는 시였다.
▲ 시낭송 천주교 수원교구 '공동선 실현을 위한 사제연대'가 21일 저녁 안산시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합동분향소 옆)에서 봉헌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에 참례하면서 영성체 후에 자작시 낭송을 했다.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라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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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내가 시낭송을 했다. 지난 5월 19일 서울광장 미사와 6월 29일의 서산시 호수공원 행사 때 낭송했던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라는 시였다. 나는 이 시를 <오마이뉴스>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외로 여러 종이매체에도 발표했는데,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대로 이 시를 계속 낭송할 생각이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노란 리본' 시를 지어, 거리에 섰습니다)

시낭송 다음에는 '세월호 참사 안산지역 시민대책위원회'의 마금이 공동대표가 시민대책위에서 벌이고 있는 활동에 대해 경과보고를 했다. 시민대책위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서울 범시민대책위의 열세 명은 동조 단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단원고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가 나와 예비 신학생이었던 아들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고,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발언했다. 정혜숙씨는 특별법에 대해 일부 국민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일부 국민들이 유가족이 대학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추모공원 건립, 유가족 생활안정 평생보장 등을 요구한다는 말을 유포하고 있는데,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했다.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수사권, 기소권, 재발방지대책이 특별법에 포함되는 것뿐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금까지 대형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제대로 된 특별법'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그냥 운이 없어서 죽은 아이들로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여러 어른들이 목숨을 잃은 이유, 그 진상을 밝혀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저희 유가족들은 특별법을 소망합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춘 특별법만이 이 문제를 바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의 이 사건과 이 문제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과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예비신학생이었던 단원고 2학년 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씨가 단원고 학생들의 유족들을 대신하여 인사말을 했다.
▲ 유족 인사 예비신학생이었던 단원고 2학년 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씨가 단원고 학생들의 유족들을 대신하여 인사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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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혜숙씨의 조리 있고 강단 있는 말을 들으며 예비 신학생의 엄마답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신자들이 뜨겁게 위로와 격려,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미사를 마치고, 근처 합동분향소를 한 번 더 들렀다가 오후 9시 44분쯤 차에 올랐다. 조금은 가벼워졌지만, 더욱 비장해지고 뜨거워진 마음으로 차를 몰고 태안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나고 있는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되었어.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야!"

그리고 나는 농담 반 진단 반인 말도 한마디했다.

"가난한 이들의 친구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찾아오시는 올해, 우리 한국교회는 전환점을 피할 수 없게 됐어. 앞으로 우리 한국교회는 강우일 추기경과 이용훈 대주교를 갖게 될 거야. 강우일 주교가 추기경이 되시고, 이용훈 주교가 대주교가 되시는 날이 꼭 올 거야, 수원교구는 서울대교구 다음으로 큰 교구야. 정의와 평화, 공동선 구현을 위해 늘 앞장서는 교구지. 곧 수원대교구가 될 거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참사 100일, #안산시 화랑유원지, #안산시 합동분햡소,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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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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