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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7일, 18일 양일간 일본 오사카 오사카죠홀에서 콘서트를 연 JYJ 김재중이 섹시한 콘셉트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자료사진)
 2013년 12월 17일, 18일 양일간 일본 오사카 오사카죠홀에서 콘서트를 연 JYJ 김재중이 섹시한 콘셉트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자료사진)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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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감히 고백한다. '동슈501'(동방신기+슈퍼주니어+SS501)에 열광하던 친구들에게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던 중학생 시절의 나를 반성한다. 친구가 책상에 정성스레 붙여놓은 영웅재중의 얼굴에 콧수염 그렸던 걸 사죄한다.

철없던 행동에 대한 죄 값은 지난 겨울 갑작스레 시작된 내 생애 최초의 아이돌 '덕질'로 갚고자 한다. ('덕질'은 특정 대상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의 '덕후'에서 나온 말이다. '덕질'은 구체적 행위를 말한다.)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2000년대 중후반, '동슈501'을 비롯해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이 데뷔했다. 당시의 나는 죽어라 "오빠"를 외쳐대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중 어떤 그룹이 더 예쁜가를 논하는 남자애들이 한심했다. 그렇게 나는 평생 내가 '머글'(평범한 일반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덕통사고'(덕질+교통사고,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덕질을 시작하게 됨)는 아주 갑작스레 찾아왔다. 친구가 귀여우니 한 번 보라며 보내준 유튜브 영상의 링크를 클릭한 순간, 나도 모르게 덕질의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그 영상이 한 팬에 의해 '머글 영업용'(일반인의 덕질 입문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제작된 것이란 걸 깨달았을 때, 이미 나는 덕후의 신분이 되어 새로운 머글 영업용 영상을 만들고 있었다.

'덕질'의 세계는 '머글'들의 상상보다 넓고 깊다

아이돌 덕질의 세계는 머글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도 깊다. 머글 신분을 갓 탈출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인터넷과 SNS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그 정점은 트위터다. 대부분의 덕후들은 덕질을 위한 트위터 계정을 하나쯤 갖고 있다. 계정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가장 기본은 역시 내 '오빠들'을 팔로우하는 것.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트위터 계정은 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에 이르는 팔로어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의 대다수가 덕후들이다.

오빠의 모든 스케줄을 따라다닐 수 없는 덕후들이 오빠들의 소식을 받아볼 때도 트위터는 요긴하게 쓰인다. 최근엔 팬서비스 일환으로 멤버들이 팬들의 멘션에 무작위로 직접 답하는 일명 '멘션 파티'가 진행되기도 한다.

오빠들의 음악방송 1위를 위해서도 트위터 계정은 필수다. 대부분의 음악방송이 트위터의 해시태그(#단어) 양을 순위 결정의 한 요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오빠들의 1위를 위해 그룹 이름과 노래 제목이 포함된 트윗을 일주일 내내 기계처럼 찍어낸 경험이 있다.

트위터에서 아이돌 그룹의 이름과 노래명을 검색하면, 오빠들을 1위로 만들기 위한 덕후들의 해시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트위터에서 아이돌 그룹의 이름과 노래명을 검색하면, 오빠들을 1위로 만들기 위한 덕후들의 해시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조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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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덕후들은 인터넷상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오빠들을 위한 영업이 이뤄지는 곳도 인터넷이다. 덕후들은 팬이 아닌 일반인이 보아도 매력을 느낄 만한 오빠의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대형 페이스북 페이지에 제보한다.

거기엔 누군가가 '덕통사고'를 겪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게시물에 머글인 척 댓글을 남기는 건 필수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편인데 이 그룹은 좀 호감" "팬도 아닌데 이 영상 보고 한참을 웃었네"하는 식이다. 그러면 지난 겨울의 나처럼 누군가는 걸려들게 되어 있다.

이처럼 의외의 노동을 요하는 아이돌 덕질이지만 "그래도 마냥 좋다"는 게 덕후들의 중론이다. 덕질의 다양한 순기능 가운데 단연 으뜸은 어떤 일에도 웃게 되는 나만의 치료제가 있다는 사실.

제출이 코앞인 레포트가 한 글자도 써지지 않을 때, 야심차게 지원했던 대외활동에서 탈락했을 때, 친구의 가시 돋친 말이 마음을 콕 찌를 때 등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오빠들은 내 기운을 북돋아 준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오빠들'은 나이차와 무관하게 '내 새끼들'이 된다. 이때가 되면 세상 그 무엇도 '덕심'을 막을 수 없다. 앨범을 사고 콘서트를 가야 하므로 불필요한 곳에 돈을 낭비하지 않게 되는 것도 덕질의 소소한 장점이다. 

나는 덕질에 입문한 이후(흔히 이걸 '입덕'이라 한다) 맨 먼저 커피를 끊었다. 앨범이 나오기 직전엔 다 쓴 스킨과 로션을 새로 사는 대신, 여기저기서 얻어온 샘플들로 연명하며 돈을 아끼기도 했다.

사실 사람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아이돌 팬의 모습은 중·고등학생이다. 요새는 자신보다 어린 아이돌을 좋아하는 '누나 팬'의 존재도 조금씩 알려지는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자유롭게 덕질을 만끽할 수 있는 건 나같은 대학생 덕후라고 생각한다. 경제력이 부족한 청소년 팬이나 경제력은 있지만 세상살이 탓에 시간이 부족한 누나 팬과 달리, 대학생 덕후들은 적당한 시간과 경제력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수준'을 매기다니

덕질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덕후의 신분이 되자마자 신나게 '덕밍아웃'(덕질+커밍아웃)을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가 나오면 내 오빠 자랑을 했고, 노래방에선 오빠들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덕후와 '빠순이'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고울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반응은 차갑다 못해 매섭기까지 했다.

의문스러운 건 인디밴드나 록 음악, 힙합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한 시선이었다. 사람들은 놀랍게도 대상만 다를 뿐 같은 덕후인 그들에겐 "취향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런 덕후들을 꽤 괜찮은 '수준'의 취미를 지닌 사람으로 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추측컨대, 아이돌 덕질을 경시하는 사람들은 사생팬처럼 아이돌 팬들이 지닌 극성적인 면만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느 집단에나 존재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팬들은 극성 행동을 하는 팬은 진정한 팬으로 취급하지 않고 경계한다.

아마 조금이라도 아이돌 덕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덕질을 시작하는 순간 덕후들은 아주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을. 때문에 유난스러운 행동으로 오빠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건 진정한 덕후로서의 자격상실이다.

길게 돌아왔지만 핵심은 한 가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수준을 매기는 것은 부당하단 거다. 모든 덕후의 본질은 같다. 아이돌 덕후들은 그 대상이 아이돌일 뿐이다.

핫트랙스 영등포점에 전시된 아이돌 그룹의 앨범들.
 핫트랙스 영등포점에 전시된 아이돌 그룹의 앨범들.
ⓒ 조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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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아이돌 덕후들이 존재한다. 어쩌면 방금까지 당신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 친구의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가 실은 고도의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일 수도 있다.

그러니 개인의 취향을 수준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길.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인 H.O.T 빠순이 성시원의 말처럼 "빠순이의 기본은 열정"이며 우리는 "그 열정으로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한가한 주말 음악방송을 유심히 살펴보길 권한다. 당신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하는 오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덧붙이는 글 | 조해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아이돌, #덕후, #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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