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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집단자위권 결정 이후 동아시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와 <오마이뉴스>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배경이 어디에 있으며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진단하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해 싣습니다. [편집자말]
아베 수상은 최근 일련의 군사화 추진 배경에 대해 "일본을 둘러싼 안보환경은 더욱 더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동북아의 안보환경이 악화되어 있는가? 아베가 인식하는 동북아의 불안정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북한 핵 미사일 ②중국의 경제성장과 군사대국화 그 결과로 일본이 동아시아의 2류 국가로 전락 ③영토분쟁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고조 ④역사 인식 갈등과 반일 의식의 격화.

그러나 이들 문제는 근본적으로 일본이 자초한 일이다. 우선 일본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구실로 합의 도달이나 이행을 집요하게 방해해왔다. 또 중국이 경제를 중심으로 한 대국화에 힘을 쏟고 있는 건 사실이나, 일본의 몰락을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일본이 2류 국가로 전락한 것은 거품 경제와 그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본 자신의 탓이다.

영토분쟁 역시 2005년 2월 '노일전쟁 승전 100주년'을 맞아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 한국을 도발했으며 2012년 9월 일본 정부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의 국유화를 선언, 중일 영토분쟁의 격화를 초래했다. 끝으로 동아시아의 반일 감정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과 전쟁, 약탈의 역사에 기인하며, 그 가해 책임을 청산하지 않는 데 있다.

'안보환경 악화' 씨 뿌리고 '군사화' 열매 따려는 일본

아베 내각은 7월 1일 각의에서 현행 헌법 9조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헌법해석'을 내려 '해석개헌'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집단적 자위권을 향한 일본의 행보가 매우 신속하면서도 전 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8일 호주 의회서 연설하는 아베 총리.
 아베 내각은 7월 1일 각의에서 현행 헌법 9조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헌법해석'을 내려 '해석개헌'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집단적 자위권을 향한 일본의 행보가 매우 신속하면서도 전 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8일 호주 의회서 연설하는 아베 총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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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안보환경 악화는 미국이나 일본이 기득권에 집착하여, 중국이나 한국이 새롭게 대두하는 등의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려 지역의 긴장과 불안을 조장한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쟁이 일어난 냉전시기에 비하면 지금의 안보환경은 나은 상황이다.

다만 각국이 모두 이율배반적인 국가전략을 가지고 헤매고 있고, 미·일이 G2(미국·중국)시대에 걸맞은 새판을 짜지 못하고 과거의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동아시아를 제압하려 해서 지금과 같은 동아시아의 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학자 가반 맥코막은 일본을 미국의 '속국'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7년간 미군정 지배를 받았다. 일본 군국주의는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정권과 함께 삼국동맹을 형성하고 영·미·프·소·중의 '연합국'과 싸워 패배했다. 일제의 운명은 이미 카이로 선언(1943), 포츠담 선언(1945)에서 결정되었다.

이 선언들에는 '전쟁세력의 영원한 제거'와 '전쟁 수행능력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확신될 때까지 일본의 군사를 점령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에 따라 연합군(실질적으로는 미군)이 일본을 점령하고 일본 군국주의 해체 작업에 착수했다. 미군 점령 기간에 연합군은 일본의 외교 군사권을 빼앗고 1947년에 개정한 일본국헌법 9조에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없고 군대를 가질 수 없음'을 규정했다. 이른바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의 존중, 평화주의'를 기본가치로 하는 일본 '평화헌법'을 탄생시킨 것이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주권회복'을 한다. 그러나 같은 날 발효된 '미일안보조약'에서 '일본이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면서 미군이 일본에 계속 주둔하게 되었다. 주일 미군의 역할은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감시와 견제,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 수행, 일본 국내 반미친공세력에 대한 감시와 치안유지 등이 있다.

즉, 일본의 '주권' 회복은 미군의 보호(감시) 아래 이루어졌고 미군을 후견인으로 하는 피보호자 수준의 '주권회복'이었다. 그나마 외교도 미국의 강한 영향 하에 두어짐으로써 일본의 '속국'적인 성격이 결정된 것이다.

'주권 회복=군국주의 부활'이라는 군국주의자의 비수

지난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마음 속에 '참된 주권회복=군국주의 부활'이라는 비수를 갈면서 친미주의자로 전향 내지 가장하고 '경제대국 일본'을 이루어냈다. 미국에 대한 종속의 대가로 자존심과 자주성을 상실하고, 주권국가로서 외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존경과 대접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국가적·개인적으로 자주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노예적 습성이 몸에 배었다.

한국에도 '용미(用美)주의자'(미국을 이용)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도 일본처럼 똑똑하게 굴어 미군에게 안보를 맡기고 우리는 경제성장만 하면 된다는 주장을 편다. 때문에 '자주국방'이나 '미국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과연 그럴까. 우선 미국에 예속되어 온 '속국' 일본이 잃은 게 무엇인지부터 따져보자.

일본의 진보세력은 군국주의 부활에 저항하기 위해 헌법9조를 금과옥조로 삼아 "평화헌법은 비록 미국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 할지라도 일본 국민의 주체적인 의지에 의해 선택되어 지켜온 것이다"라는 주체적 선택론을 내걸고 호헌(護憲) 운동에 매진해왔다. 그 결과 전후 일본은 직접 대외침략에 나서지 않았다. 따라서 주변 국가들에게 큰 위협으로 인지되지 않았고, 일본인 전사자도 나오지 않았다. 평화헌법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보수정치가 오자와 이치로는 '보통국가론'을 주장한다. 보통국가란, 자기 나라가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자주권과 자주적 군사권을 갖는 나라를 말한다. 독일은 나치를 철저히 비판하고 단절하면서 나치의 침략을 받은 주변국가 및 인민들에게 사죄와 보상을 하고 주변국가들로부터 '보통국가'로 승인받았다. 오늘날 국가주의 자체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그것은 차치하고, 일단 과거청산이 전범국가가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 전범자 천황을 온존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자, 원폭피해자, 야스쿠니 강제 합사자, 한반도 북쪽 지역 등에 대한 전쟁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보통국가'로의 꿈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정당화와 부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하는 나라' 아베의 해석개헌, 입헌주의 원칙 깬 제왕적 사고

아베 내각은 7월 1일 각의에서 현행 헌법 9조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헌법해석'을 내려 '해석개헌'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상식과 법 절차를 초월한 왜곡에 다름 아니다.

아베의 꿈은 A급 전범이던 외할아버지 키시 노부스케가 주장하는 바와 같다. 개헌하여(헌법9조를 파기하여) 군대를 갖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되찾는' 것이다. 헌법이란 국민(시민)이 주권자로서 그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 공권력(국가폭력)을 통제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는 권력이 헌법에 구속된다는 입헌주의의 원칙을 깨고 국민이 나라(지배자)를 위해 봉사하고 복종하는 전제국가로의 전환을 기도하고 있다.

국회에서 절대 다수의 힘을 배경으로 '해석개헌'을 강행한 아베의 논리는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최고책임자로서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진다", 즉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한다'는 제왕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헌법의 실질적 변경을 주권자인 국민의 판단에 따르지 않고, 행정책임자의 판단만으로 감행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아베는 입헌주의를 오히려 공권력이 국민을 억압한 "절대왕권 시대의 사고"라고 일축한다.

1947년에 개정된 현행 일본헌법 제9조는 '국권의 발동으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는 '정부의 행위에 의해 또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결의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함으로써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유지하려고 결의했다'이다. 오해나 오독의 여지 없이 일본 헌법은 군대와 전쟁을 금하고 있다.

미국, '군국주의 해체' 아닌 '냉전 위한 군사기지'로 일본 활용

그러나 헌법 9조의 제정과 동시에 냉전이 시작됨으로써 일본 군국주의 해체라는 미국의 당초 일본 점령 목적은 무산돼버렸다. 대신 일본을 냉전 수행을 위한 미국의 군사기지로 활용하고, 구 일본 군국주의자를 면죄하여 미국의 도구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평화헌법도 자위권까지는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석, 일본은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재군비하여 세계 유수의 군대로 발전시켜 왔다.

이번 '해석개헌'의 의미는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세계 어느 곳에라도 자위대를 파병하고 전쟁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있다. 이제는 일본이 평화국가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떳떳하게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됨을 천명한 것이다.  

천황을 국가 원수로 추대하고 헌법 9조를 폐기하고 국방군을 만들어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희생시키는 나라. 즉, 구 일본제국과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일본헌법 개정을 꿈꿔오던 자민당, 특히 아베는 2012년 집권한 다음 개헌을 지지하는 기타 정당과 함께 개헌에 착수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양원의 3분의 2, 국민투표 시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개헌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그러나 2013년 참의원선거에서 3분의 2 차지를 실패하고 국민의 과반이 개헌을 반대한다는 난관에 봉착하자, '헌법해석'만으로 '평화헌법'의 틀을 깨는 꼼수를 쓴 것이다.

☞ 2편, 한국을 '종'으로...한미일 군사동맹 재구성의 실체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서승 리츠메이칸대 특임교수는 누구?
서승 교수는 1945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 1968년 도쿄 교육대학 졸업 후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를 마치던 1971년 '재일교포 학생학원침투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육군 보안사로 연행, 고문에 저항하다 분신을 시도했다.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서승 교수는 1974년 엠네스티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됐으며 1990년 2월 석방될 때까지 비전향정치범으로 19년간 투옥됐다. 이후 1998년 일본 리츠메이칸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1년 3월 정년퇴임했다.

제1회 '진실의 힘' 인권상에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 속에 신음하는 많은 이들에게 일어설 수 잇는 용기와 격려를 주는 서승 선생의 삶은 열정적인 실천 과 헌신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인간 정신의 고귀함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수사 과정에서 입은 화상은 한국 정부의 폭압성을 상징하는 자국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됐으며 출옥 후 학자로서 비교인권법을 강의하며 평화운동에 참여해오고 있다. 저서로 <서승의 옥중 19년>, <서승과 함께하는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이 있다.



태그:#집단 자위권, #아베, #동북아, #군국주의, #헌법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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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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