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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은 상상할 수 없었다. 4월 16일 T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이 처음 세월호가 기울어졌을 때 숙소 SP-2번방(4층 선미 중간에 위치한 다인실)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던 이유다. 그렇게 늘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은 이제 곁에 없다.

그는 29일 법정에서 참사 이후부터 "배와 관련된 꿈, 친구들이 죽는 꿈을 많이 꾸게 됐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단지 자신의 고통을 이유로 '선원들을 무겁게 처벌해 달라' 식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처벌보다 우선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벌도 처벌 나름이지만, 선원들이 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먼저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음은 T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기울어진 배, 금방 돌아오리라 믿고 친구들과 장난쳐"

4월 16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4월 16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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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신문]

"숙소로 배정받은 곳은 SP-2번방(4층 선미 중앙 다인실)이었다. 그곳에서 친구들하고 같이 밥 먹고 씻고 게임하고 있었다. 배가 기울어졌을 땐 전부 다 순식간에 다 (한쪽으로) 쏠려버렸다. 그래도 금방 복귀될 거라고 믿고 장난치고 있었다."

"안내방송은 처음에는 움직이지 말라고, 그 뒤에는 '몇 분 후쯤이면 해경 올 것이다, 구명조끼 가까운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최대한 입도록 하라'고 했다.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은 배가 기울고 얼마 안 있다가… (정확한 시각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구명조끼는 처음엔 친구들 나눠주다가 (애들이) 다 입었다 싶어서 (저도) 입었다. 방송말고 한 친구가 먼저 입기 시작해서 그 뒤로 계속 (따라) 입었다."

"사고 나고 20분 정도 지난 뒤에 복도까지 움직였고 거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배가 기울고 있을 때 나왔다. 우현 갑판으로 나갈 때는 배가 완전히 뒤집어질 즈음이었다.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기도 했고, 헬기가 떠있다고 하니까 (우리를 금방) 구출해줄 줄 알고 계속 기다렸다."

"선미 쪽으로 가면 갑판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는 건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깜박했다. (배에서) 나온 후에야 생각이 났다. 사고 초기에 나가라고 했으면 그쪽 복도로는 쉽게 갈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 (방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방송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한 순간부터 애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방송 나오기 전에, 상황 파악하기 전에 일단 나가자고 마음먹은 친구들이 많아서 움직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송을 듣고) 누군가 구조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1분도 안 되어서 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그때 탈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서 물에 뜰 것이란 생각에 그쪽으로 일단 뛰어들었다. (갑판 쪽으로) 올라올 때 힘들긴 했는데, 쇠로 된 봉이 옆에 있어서 그거 잡고 올라왔다. 이때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큰 외상은 입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냐는 질문에) 정신적으로 힘든 것보다 배와 관련된 꿈을 많이 꾸거나 친구들이 죽는 꿈을 많이 꾸게 됐다. 선원들 처벌도 처벌 나름이지만, 선원이 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먼저 가졌으면 좋겠다."

"배와 관련된 꿈, 친구들이 죽는 꿈을 많이 꾼다"

[변호인 측 신문]

"(배가 기울어진 후에도 위치가 그대로였냐는 질문에) 방 중간쯤에 있었는데, 먼저 캐비닛에 들어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저를 잡아줬다. (처음 배가 기울어진 다음에) 끝까지 밀리진 않았고 친구들을 잡아주러 내려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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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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