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의 집단자위권 결정 이후 동아시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와 <오마이뉴스>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배경이 어디에 있으며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진단하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해 싣습니다. [편집자말]
그간 '자위'라는 괴물이 일본을 변신시켜 왔다. 과거 세계의 거의 모든 전쟁은 '자위'를 명분으로 저질러졌다. 명치유신 이래 기습과 모략을 일삼아 온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1941)도 '자존 자위'의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자위의 전쟁을 '국경선을 무력으로 침범한 집단을 국경선까지 밀어내는 무력행사'라고 엄밀히 규정하고 지키게 하지 않는 한, 결국 자위의 전쟁은 곧 침략전쟁이 돼 왔다.

집단적 자위권의 화살, 만만한 게 한반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월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월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기가 직접 무력 공격을 받지 아니하여도 자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가 공격을 받을 때 남의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냉전시기에 동맹국과 우호국을 자기 진영에 끌어들이는 '진영의 논리'로 이용되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전쟁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구실로 저질러졌다. 베트남 전쟁이 대표적이다.

월남 정부의 요청을 근거로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대의명분으로 삼아 1965년에 베트남에 군사 개입했다. 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상 미국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이유로 참전했다. 그 결과 미국은 5만6천명, 한국은 5천명의 전사자를 냈으며 월맹군과 월남민족해방전선은 90만명의 전사자, 100만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

유엔 헌장은 '집단적 안전보장조치(유엔 결의에 의한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무력제재)', 유엔의 조치가 있기까지의 한시적인 '개별적 자위권',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예외로 하여 모든 전쟁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그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천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아베의 해석개헌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과반은 공감을 표시했다.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① 미국의 전쟁수행과 일체화한 일본의 군사활동 ② 원유를 중심으로 한 해상수송로 다국적 안전 확보 ③ 외국(미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의 도서 방어 ④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긴급구호와 재외 일본인 구출 등 15개 사례를 들었다. 그 중 11개 사례는 한반도 유사시 또는 북한선박 검사나 항만 봉쇄 등을 포함하는 대(對) 북한 군사행동이다.

냉전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핵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로 반북 여론이 극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규정, 여론을 선동하고 군사화, 우익화의 지렛대로 삼아왔다. 거기에 근래의 반한 증오범죄까지 더하여 일본정치의 우경화를 재촉해왔다.

아베는 일본 국민에게 남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며, 가장 저항력이 약한 한반도를 대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시나리오를 그렸던 것이다. 명치유신 후 한반도를 일본의 '생명선'으로 규정하고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삼았던 것처럼 지금도 한반도를 가장 만만한 군사활동 무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율배반적 동아시아 정책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해석개헌을 지지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이율배반적이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자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아래 아태) 지역에서 일본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하면서 전략적으로는 중국을 가장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

세계 정치경제를 책임지는 파트너로서 중국이 필요하긴 하나(G2시대), 다른 한편으로 몰락해가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과거 일본에게 동아시아 후방기지의 역할을 맡겼다면 이젠 전투부대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을 의식하면서도 계속해서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지속가능하게 하려는 것이 바로 '재균형(rebalance) 정책'이다. 일본을 '주'로, 한국을 '종'으로 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재구성이 그 정책의 축이 되고 있다.

다만 한·미·일동맹은 중국, 북한만을 겨냥하기보다 세계 각처에서 전개되는 미국의 전쟁에서 한·일 양국군을 보조군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이다. 여기에서 일본은 미국에 충성을 다하고 한·미일 동맹에 충실한 척하면서 미국에게 기대어 잃어가는 동아시아에서의 존재감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선은 진주만 공격의 재연은 허용치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우연치 않게도 오월동주(吳越同舟, 서로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된 경우나 서로 협력하여야 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하는 미·일의 틈새를 드러냈다. 앞으로 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본 열도라는 판도라 상자 안에 가두어 놓았던 일본 군국주의가 해외에서 행동의 자유를 얻어 그 뚜껑이 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한 한국, 왜 이러나
지난 7월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일본 평화헌법 무력화 및 집단 자위권 행사 저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각계 시국회의'에 참석한 각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일본의 행보를 규탄하고 있다.
 지난 7월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일본 평화헌법 무력화 및 집단 자위권 행사 저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각계 시국회의'에 참석한 각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일본의 행보를 규탄하고 있다.
ⓒ 겨레하나

관련사진보기


한국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일본의 내정이라는 입장으로 이미 용인한 바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도 한·미·일군사동맹도 미국이 한반도 안보를 지켜주고 있으니 거역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한·일 양국의 군대를 미국의 보조군으로 삼으려는 정책 속에서 한·일은 이미 공동운명체이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를 지렛대로 군사화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그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외교부는 "우리 영역 내에서 자위대의 침입, 군사 활동은 당연히 우리 동의없이 할 수 없고 일본도 그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다"며 "우리 영역 내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고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일본 군대의 발자국이 채 사라지기 전인 6·25전쟁 때 3000명 가량의 구 일본군이 '미국의 명령 하에' 참전하여 전사자까지 내지 않았나. 그때 미국이 명령했을 뿐이지 한국정부는 의논도 하지 못했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사실 미국이 참전하는 미국의 전쟁이지, 한국의 전쟁이 될 수가 없다.

동족상잔을 다시 상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비극이자,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동족상잔을 전제로 한 군사훈련이나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상상의 세계에서라도 동족 전쟁을 상상하거나 일본군의 재상륙을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즉 자주 국방이 요망되는 것은 아베의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다.

자주 국방은 일본 아니라 우리나라에 필요

주변 국가들이 이율배반적인 안보정책을 동시에 밀고 나가는 동아시아의 정치 군사 지형 속에서, 세 갈래 네 갈래로 찢겨진 한국이 평화 안전을 도모하는 길은 전쟁의 구상이 아니라 평화의 구상에 있다.

일본의 군사화, 일본 군국주의 망령의 재등장을 거부하고 식민지 지배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면서 일본이 진짜 '보통국가'가 되기를 도와야 한다.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의 군사대국화 욕망과 주변 국가들에 대한 패권적인 욕망에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면서 중국은 역사적으로 덕과 예의 정치를 해 온 문화국가였음을 상기시켜야 한다.

미국에게는 패권주의의 시대는 끝나고 동아시아의 평화야말로 미국의 이익임을 깨우쳐야 한다. 중미 공동의 전략적인 구상속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평화와 번영의 세계를 이루어야 함을 설득해야 한다.

한국이 이해 관계가 중첩되고 상충하는 동아시아의 갈등을 해소하고 소통을 매개하는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눈을 가져야 한다. 옳은 것이라면 굽히지 않는 자주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만이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이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이 자작자연(自作自演)에 의해 진행되어 왔듯이 우리도 스스로 한반도의 위기와 불안정을 만들어오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한반도야말로 어지러운 동아시아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는 핵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태그:#동북아시아, #서승, #일본 자위대
댓글4

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