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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이미 저문 시간, 퇴근을 앞두고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봤자 시간만 잡아먹을 것 같은 예감에 받지 않으려하다가 마음이 약해졌다. 수화기를 들자, 중년 여성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짜고짜 '거기 어디냐'고 묻더니, '구스만을 만났느냐?'는 등의 질문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영문을 몰라 누구인지 밝혀달라고 했지만, 상대방은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 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이주노동자를 일상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회사라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회사들은 대개 이주노동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방을 이주노동자를 무시하듯 같은 대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전화를 받다 보면, 그냥 끊어 버리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두 번 경험한 일이 아닌 터라, 그러려니 하고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거 보세요. 전화하셨으면 전화 건 사람이 누군지, 무슨 용무로 하셨는지 밝히셔야죠. 목소리 들어보니 그 정돈 충분히 아실 것 같으신데."

그러자 상대방은 땍땍거리며 취조하듯 하던 말투가 조금 누그러지며 말꼬리가 내려갔다.

"아, 여기 부산에 있는 도자기 공장인데예. 우리 회사에 구스만이라는 사람이 이 전화로 해 보라 캐서..."

사실 개그도 이런 개그가 따로 없다. 오랜 경험으로 봤을 때, 무슨 일인지 쉽게 짐작이 갔다. 한국어가 서툰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장인지 관리자인지 한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사측에 전달한 것이었다. 그러자 사측에선 이주노동자가 알려 준 전화번호로 의혹의 눈초리와 경계심을 갖고 전화한 것이었다.

어차피 말이 길어질 것 같아 통화하면서 혹시나 하고 발신번호를 검색해 봤다. 발신번호가 부산 지역 번호가 아닌데, 부산이라 하는 부분이 미심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지역이었다.

혹시나 하고 따져 물어봤다.

"거기 **이네요?...작년 겨울에 기숙사 문제로 시끄러웠던 회사."

그때부터 상대방의 목소리가 기어들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세상 참 좁다는 걸 느낀다. 작년 겨울, 기숙사라고 하지만 남녀가 같은 화장실과 욕실을 사용하는데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한꺼번에 회사를 옮겼던 바로 그 회사였다. 그곳을 나온 키르기즈스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가 우리 쉼터를 이용할 때, 그간 사연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쯤 되자, 다시 말투를 바꿔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아니, 야가 어제 회사를 나갔다가 오늘 오후에 들어왔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 전화번호를 주느기랴예. 인도네시아 사람이라고."
"제가 인도네시아 사람은 아니고요, 인도네시아어를 좀 합니다."
"아, 그라믄 통역해 달라고 전화번호를 줬는갑네예. 그리 먼데 어이 알았을꼬?"

퇴근하려다가 전화를 받았던 터라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고 이주노동자를 바꿔 달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억울하다는 듯이 털어놓았다.

어제가 무슬림 금식 기간인 라마단이 끝나면서 시작되는 축제인 이둘 피트리(Idul Fitri)였는데, 부산에 예배드리러 갔다 왔고, 가기 전에 사장님께 허락받고 갔는데 사무실로 불러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은 어제 사무실을 떠나 본 적이 없고, 앞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말 한 마디 섞어 본 적이 없다며 뭔 말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이 사장이라는 것을 밝힌 셈이었다.

라마단 축제 다녀온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사장 이야기 

한참 동안의 통화 끝에 문제의 발단이 뭐고, 사측에서 궁금했던 것이 뭔지 밝혀졌다. 무슬림인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세 명이 라마단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이둘 피트리를 맞아 예배를 드리려고 부산에 갔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오래 일했던 직원이 대표로 조퇴를 허락받았는데, 다른 이주노동자들은 당연지사, 자신들도 허락받았다고 생각했던 것.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사장에게 의사 전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구스만은 자신은 분명히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추궁을 받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반 년도 채 안 된 신참 이주노동자였다. 고향에 있었으면 일주일은 족히 즐길 이둘 피트리였는데, 허락까지 해 놓고 뭐라 하는 회사가 이상하다고 했다.

반면 사장은 한 명에게만 반나절 조퇴를 허락했는데, 세 명이 한꺼번에 반나절에 하루를 더한 시간 동안 보이지 않자 조급증이 생겼고, 무단결근한 것이 괘씸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장은 직원들이 회사를 옮겨달라고 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주동자를 색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장은 그 모든 문제가 제일 오래 근무했던 직원이 다른 직원들을 선동해서 근무처를 변경하기 위해 회사를 나갔었다고 보고,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가 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었다.

결국 양측에 의사전달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으니까, 서로 오해를 풀 것을 주문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그래그래' 했는데, 말한 사람은 그런 뜻이 아니었고, 상대방 역시 그런 뜻으로 답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을 해 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던 셈이었다. 그래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서로 알아듣기나 하고 대화했는지 묻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마른장마 끝나고 찜통더위라는데, 더위는 기온 탓만은 아닌가 보다.


태그:#이주노동자,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어,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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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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