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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내가 다니던 공장 생산현장의 담벼락에는 '공장일을 내일처럼 근로자를 가족처럼'의 표어가 붙어있었다.

주5일 야근에 월2회 휴무는 생산량이 많아지면 철야와 특근으로 바뀌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장일을 내일처럼 했지만, 회사는 가족처럼 대해주지 않는다. 어느날 표어의 '가족'을 '가축'으로 누군가 바꿔놓았다. 주는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나는 가축이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1990년대 중반  IT(Information Technology) 산업의 전성기가 올 것을 예측이나 했던 것처럼 몇 년간 컴퓨터프로그램을 배웠던 것이 쉽게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조용하고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일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은행의 전산실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조언을 들으러 회사로 찾아갔었다. 그도 별로 다르지 않다며 그래도 먹고 살려면 별 수 없지 않냐며 수시로 집에도 못들어가면서 하는일이 은행자동화시스템(ATM)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세상은 모든 것이 자동화로 바뀌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말을 그때는 수긍하지 못했다. IMF사태를 겪으면서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계가 있고 그 앞으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재앙의 시작임을 느꼈다.

2000년대 들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가' 라는 고민을 풀어가는 첫 과제는 쳇바퀴 돌듯이 월급을 받는것 외에는 무의미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는 회사생활이 노예의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쉽지는 않았지만 30대 중반에 회사생활은 그만 하겠다며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농촌 출신으로서 절대 농사만은 하지 않겠다던 내가 농사를 지으며 자급하는 생활을 하겠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산은 없고 소비만 하는 도시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때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귀농을 선언했다.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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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아직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귀농에 대한 계획은 좀 더 현실로 다가와 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농사도 짓고 있으며, 몇 년간 농사와 관련된 일들을 하면서 수입은 들쑥날쑥하지만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삶이 재미있다. 흙을 만지고 농사를 통해서 얻는 삶의 깨달음과 성찰의 배움터가 흙과 농사라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다.

살기위해 일하는가 일하기 위해 사는가

내 삶의 궤적을 쭉 늘어논것은 농부이자 생태농업의 선구자로 불리는 알제리출신의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을 읽으면서 그의 삶에 깊이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된 피에르 라비는 청년시절 노동자로 일하면서 생산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과 도시는 땅을 벗어난 잘못된 문명임을 깨닫는다.

흙에 기반을 둔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그는 아내와 시골로 내려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농업을 실천하고 연구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들을 하고 있다. 피에르 라비는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한 질문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일하기 위해 사는가'에 답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떠 받치고 있는 현대문명의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낙인을 떼어내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질적 풍요와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다.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일생이 정해진 삶에서 나를 위한 시간과 지속가능한 인간적인 문명사회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물질에 집착하는 삶에서 벗어난 자발적 소박함을 실천하고 싶다면 휴가를 떠날 때 피에르 라비와 함께 해도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ㅣ 예담 ㅣ 12,000원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 인간이 유일하게 지녀야 할 삶의 정의

피에르 라비 지음, 배영란 옮김, 예담(2013)


태그:#피에르 라비, #자발적소박함, #도시, #귀농, #생태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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