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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위령제에서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헌화하고 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위령제에서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헌화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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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묻혀 있던 돌 하나 /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나무 하나
깜깜하게 폐쇄되었던 광산에서 / 총소리가 들린다
신음 소리가 들린다
가녀리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 숨이 끊어져 가는 소리가 들린다
폐광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 노래소리, 만세 소리가 들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대구형무소 등에 수감돼 있던 보도연맹원과 제주 4·3사건, 여순사건과 관련한 민간인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됐던 가창골에서 31일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제가 열렸다. 이날 위령제에 참가한 이들은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10월항쟁유족회와 10월문학회,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주관으로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댐 수변공원에서 열린 64주기 위령제에는 희생자들의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대구시 공무원 등이 참석했다.

채영희 10월항쟁 유족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금수강산 골짝 골짝에, 폐광에, 도는 동굴 속에 널브러진 부모님의 유해를 수습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방치한 이 나라와 저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채 회장은 이어 "해방된 내 나라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자 했던 젊고 훌륭했던 그 많은 주체세력들을 빨갱이로 몰아 금수강산 골짝마다 학살하여 부모를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가족들을 연좌제로 묶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고귀한 삶도 거세당한 채 숨어살아야 했다"라고 회고했다.

"화해와 상생 위해 가창골에 평화공원 세워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에서 여린 가운데 ㅐ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아버지의 위패를 모시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에서 여린 가운데 ㅐ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아버지의 위패를 모시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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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토크콘서트에서 추모비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유족들의 의견에 대해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고통받고 아팠던 것들을 치유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임무"라고 밝히며 예산을 지원해 추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날 조화를 보내 유족들을 위로했다.

권영진 시장은 황종길 대구시 자치행정과장이 대신 읽은 추모사를 통해 "그동안 남몰래 위령제를 지내다가 자유롭게 향불을 피울 수 있기까지 설움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기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권 시장은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한다'는 말을 예로 들며 "10월 항쟁을 우리 시민들이 바르게 알고 어려움을 함께 나눌 때 불행했던 과거를 넘어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위령제에서는 위령탑 건립과 평화공원 조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가창골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이 억울하게 희생된 곳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대 민간인 희생사건 현장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다.

함종호 4·9 인혁열사계승사업회 부이사장은 "아픈 역사의 화해와 상생을 위해 평화공원을 가창골에 세워 억울한 죽음을 진혼하고 자칫 보수 일색의 대구에 민주 기념물을 세워 기억해야 한다"라면서 위령탑 건립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특히 대구는 영남의 대표성을 가지는 도시이므로 영남지역 전체 희생자를 아우르는 상징성에 걸맞은 평화공원을 만들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 상생도시로서의 이미지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에서 31일 오전 열린 가운데 무용가 박정희씨가 초혼무를 추고 있는 모습.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에서 31일 오전 열린 가운데 무용가 박정희씨가 초혼무를 추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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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는 무용가 유진 박정희씨의 '초혼무'를 시작으로 민중의례와 여는시 낭독, 제례, 추모식 순으로 진행됐으며 유가족들은 간간이 흐느끼기도 했다. 박정희씨는 검은 한복을 입고 나와 당시 영혼들의 억울함을 표현하는 춤으로 위로했다.

대구경북작가회의 이하석 시인은 <가창골>이라는 자작시를 통해 "애비로서의 죽음을 그 아들딸로서 거두는 그 모든 게 쌀과 밥 때문이라면 그 댐의 물에 호미 씻어 죽음 가시고 낫을 가시는 모진 사랑의 힘 되피우는 게 분명하다"라고 노래했다.

전숙자 시인은 <시월의 그날>을 노래했고 10월문학회 이정연 시인과 조선남 시인은 <우리가 만드는 세상> <학살의 현장> 등의 시로 희생자를 추모했다. 행사 마지막엔 추모곡인 <시월의 아비에게>가 불려졌다.

1950년 경찰과 군은 이곳 가창골에서 7월 7일부터 3일 동안 제주 4·3사건 관련자 140명과 여순사건관련 장기수 82명 등 242명을 학살했다. 또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장기수 1196명을 학살하는 등 공식기록만으로도 총 2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당시 죽으러 간다는 말로 쓰인 '골로 간다'는 말이 이곳 가창골에서 나왔을 정도다.

한편, 대구에서는 이곳 가창골을 비롯해 경산코발트, 앞산 빨래터, 중석광산, 팔공산 입구 등 16곳 정도에서 학살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앞산 빨래터는 1946년 10월항쟁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대표적인 학살터였다. 학산동 학살터에서는 두개골에 대못이 박힌 유골이 나왔고 대전의 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유해가 발굴되기도 했다.

"우리는 왜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는가
우리는 왜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가
고개를 들고 보라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고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
우리가 만든 2014년을
어느 한 군데 마음 놓고 숨쉴 수 있는
맑은 공기가 있는지를"

- 이정연의 시 <우리가 만든 세상> 중에서 -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는 모습.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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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민간인 피학살, #위령제, #가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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