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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의 소야곡> 등 불후의 명곡 유행가를 남긴 박시춘의 복원된 생가. 경남 밀양 영남루 바로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애수의 소야곡> 등 불후의 명곡 유행가를 남긴 박시춘의 복원된 생가. 경남 밀양 영남루 바로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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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하고 노래했다. 게다가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 아름 따라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하고 축원까지 했다.

대중가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인 김소월만큼 격조 높은 철학을 노래하기는 어렵다. '대중'가요라는 말도 그래서 붙은 것이다. 1938년의 <애수의 소야곡>이 1925년의 <진달래꽃>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것을 너무 탓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생가 옆 박시춘 흉상
 생가 옆 박시춘 흉상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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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옛사랑이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모든 '대중'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혼자 된 고독과 절망감은 눈물을 낳고, 그래서 이 밤은 구슬플 수밖에 없다.

마음도 몸도 힘이 없으니 창도 '고요히' 열게 되고, 혹시나 싶은 희망을 가지고 '별빛'을 바라보는데 마침 누군가가 부는 '휘파람소리'가 들려온다. 그 휘파람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일부러 불어주는 것만 같다.

<진달래꽃>이 보여주는 수준의, 상대를 배려하는 인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대중' 가요의 노랫말이 되기에 적합한 인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의 이 말이 '대중은 수준이 낮다', 또는 '대중가요는 수준이 낮다'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진달래꽃>의 수준이 높다는 역설일 뿐이다.

수많은 '명곡' 유행가를 창작한 박시춘

<애수의 소야곡>을 작곡한 박시춘은 경남 밀양 출신이다. 그는 1913년 <밀양 아리랑>, 아랑 전설, 이창동의 영화, 근래 벌어진 송전탑 반대 싸움 등으로 이름높은 밀양에서 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박찬호 저 <한국가요사>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밀양에서 기생을 양성하는 권번을 운영했다고 한다.  

박시춘은 <애수의 소야곡> 외에도 <신라의 달밤>, <전우야 잘 자라>, <비 내리는 고모령>, <이별의 부산 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 불후의 유행가들을 남겼다.  이 노래들은 태어난 지 오래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흘러간 유행가'가 되어 잊혀졌지만, 나이든 사람 가운데서는 전혀 잊혀진 바 없는 '살아 있는' 노래들이다. 

밀양에 박시춘의 생가가 복원되고, 그를 기려 흉상 조각과 노래비가 세워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위치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이름을 떨쳤던 영남루 왼쪽이다. 복원된 생가 왼쪽으로 흉상과 <애수의 소야곡> 노래비가 차례대로 서서 답사자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애수의 소야곡> 노래비, 박시춘 흉상, 박시춘의 복원된 생가가 나란히 보이는 풍경
 <애수의 소야곡> 노래비, 박시춘 흉상, 박시춘의 복원된 생가가 나란히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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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영남루(보물 147호), 천진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17호), 아랑 사당과 비(문화재자료 26호), 밀양읍성(경상남도 기념물 7호)을 아니 보고 돌아설 수는 없다. 여느 곳과 달리 영남루는 찾아오는 손님 모두에게 2층 누각에 오르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엄청난 면적의 마루 위에 앉아 시원하게 흘러가는 밀양강의 유장한 흐름을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영남루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눈길을 던지면 채 100미터도 아니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천진궁이 보인다. 이름에 '궁'이 있으니 임금을 모신 집인데, 앞에 '천진'이 붙었으니 단군을 제향하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 안에 단군을 모시는 집이 별로 없으니 영남루 뜰에서 천진궁을 만난 일을 행운으로 받아들여야겠다.

밀양읍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밀양 아리랑> 노래비
 밀양읍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밀양 아리랑>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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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둘레에 영남루, 천진궁, 아랑 사당

영남루 뒤편 강쪽 절벽 사이에 아랑의 비와 사당이 있다. <밀양 아리랑>의 근원이 된 아랑 설화의 현장이다.

억울하게 죽은 아랑 처녀가 신임 부사마다 도착한 첫날밤 꿈에 나타나 그를 혼절시켜 죽였는데, 간 큰 청년부사가 죽지 않고 깨어나 그녀의 원혼을 풀어주었다는 설화다. 그 때 아랑을 진혼하기 위해 노래가 생겨났는데, 그 노래가 발전하여 <밀양 아리랑>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에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도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서 입만 방긋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가마 타고 시집 가서 다 틀렸네

<밀양 아리랑> 노래비는 밀양읍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다. 노래비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가요사>의 박찬호는 '박시춘의 아버지가 <밀양 아리랑>을 만들었다고도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고도 한다'는 표현으로 보아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태그:#박시춘, #애수의소야곡, #영남루, #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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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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