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최민식과 같은 소속사 후배인 김재중 사이에 있었던 최근 일화 하나가 있다. MBC 드라마 <트라이앵글>로 첫 주연을 꿰찬 김재중이 연기에 대한 가르침을 원하자, 최민식은 "술이나 하자"며 한 시간여 동안 사담만 했단다. '그래도 뭔가 가르침이 있겠지' 생각하던 김재중에게 최민식이 던진 말은 짧고 굵었다.

"야! 드라마 좀 잘돼서 인기 좋으면 연기 잘한다고들 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냐? 많은 작품을 했지만 난 지금도 내 연기에 불만 많다!"

최근 <명량>이 개봉했다. 배우 최민식이라는 존재를 퍼즐로 치환해보자.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갇혀 만두만 먹어야 했던 사내(<올드보이>)에게서, 혹은 처절하게 묵직했던 형사(<신세계>)에게서, 붓을 들고 자유롭게 세상을 조롱하던 화가(<취화선>)에게서도 최민식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 <명량>에서만큼은 예외다. 133척의 왜적 선을 단 12척의 판옥선으로 물리친 확실한 역사적 기술 앞에서 최민식은 사라져야 했다. 그의 말대로 "이순신이라는 벽을 만난" 격이었다.

"수군통제사를 이제 막 전역했네요(웃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참 징글징글한 촬영이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을 위해 블루매트를 깔고 허공에서 액션을 하는데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겠고. 그 뭐냐, 디스코 팡팡 같은 짐벌 위에 150명이 올라가서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어휴, 저 역시 이런 작업이 처음이었습니다."

"꿈에서 이순신 장군과 소주 한 잔 간절하게 원했다"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민식 "해석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정말 사람일까 생각했죠. 아무리 절대 충성이 강조된 시대라지만 왕이 자신을 죽이려 했어요. 그 상황에서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을 표현해야 하니 난 절망적인 거죠." ⓒ 이정민


치밀하게 만들어진 허구의 캐릭터가 아닌 역사 속 인물이다. 게다가 전 국민적 영웅인 이순신이다. 이것만으로도 최민식은 긴장할만했다. 연기 기술적인 부분에서야 감히 누가 농익은 그를 따라올 수 있을까마는 역사적 위인은 달랐다. 대중의 눈과 함께 역사적 의미도 의식해야 했고, 연기하는 자신마저도 납득시켜야 했다. 최민식은 정유재란 속에서 명량해전을 준비하는 이순신을 '대폭발의 징조를 보이는 활화산'으로 이해했다.

"겉에서 보면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죠. 물론 <명량>은 영화니까 관객마저 모르게 하면 안 되기에 아들 이회(권율 분)를 통해 설명을 붙인 거고요. 그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요? 장수이기 이전에 어머니 임종을 못 지킨 아들의 모습이 있잖아요. 또 지휘관으로서는 사기가 떨어져 탈영하는 부하를 죽여야 하는데, 그라고 회한이 없었겠습니까. 지난 6년간 함께 전장에서 싸운 부하를,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부하의 목을 날렸잖아요."

최민식에게 이순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캐릭터 분석이고 뭐고, "내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그는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순신을 담기 위해 어떠한 사견이 들어간 역사서도 마다했다. 오로지 <난중일기>만 팠다. 이순신이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자신을 담은 기록말이다.

"해석하면서 이 분이 정말 사람일까 생각했죠. 아무리 절대 충성이 강조된 시대라지만 왕이 자신을 죽이려 했어요. 그 상황에서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을 표현해야 하니 난 절망적인 거죠. 미치도록 답답해서 진짜 꿈에서라도 그 분을 봬서 딱 10분만! 소주 한 잔 받으시면서 말씀 좀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어요."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민식 "<난중일기>에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오늘은 비가 내렸다. 비. 비' 이렇게 두 번 반복하고 끝나요. 형용사 없이 감성을 전하는 걸 봐서 그 분이 솔직하고 담백한 분이라고 느꼈어요." ⓒ 이정민


▲ [스타영상] '명량' 최민식, '혹시 누가 되지는 않을까...'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제작보고회에서 이순신 역을 맡게된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대체 왜 싸웠고, 어떤 마음으로 전쟁에 임했는지가 가장 궁금했단다. 그런 의미에서 <난중일기>는 그에게 일말의 힌트가 담긴 설계도였다. 최민식이 필요한 건 이미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아닌 생생한 그의 눈빛과 호흡, 그리고 말투였다.

"'오늘은 공무를 일찍 끝내고 활 두 순을 쐈다' 이 구절이 끝인 날도 있었어요. 한 두 줄일지언정 지금의 병영일기처럼 매일 기록한 거예요. 중요한 건 여기서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일기를 쓴다는 건 저녁 때 항상 붓을 들었단 얘기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다는 걸 뜻합니다. 당신이 무얼 했고, 부하가 무얼 했는지 적혀있어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오늘은 비가 내렸다. 비. 비' 이렇게 두 번 반복하고 끝나요. 형용사 없이  감성을 전하는 걸 봐서 그 분이 솔직하고 담백한 분이라고 느꼈어요. 그러니 비애감이 더 커지더라고요."

왜 지금 하필 이순신이었을까...<명량>이 답한다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민식 "<명량>이라는 상업영화를 통해 잊고 있던 가치, 그러니까 애국심, 희생, 극복 등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들이 나왔으면 해요." ⓒ 이정민


<명량>은 왜적과의 싸움을 재현하기 이전에 내부 갈등과 내면 갈등을 극복하는 작품이라는 말에 최민식 역시 동의를 표했다. 이순신은 왜적과 맞서기 전에 자신을 살해하려던 부하 장수와 그들의 두려움을 이겨야 했고, 일본 역시 구루지마(류승룡 분)와 와키자카(조진웅 분)를 위시한 각 지역 무사들의 세력 경쟁을 하나로 뭉쳐야했다.

"시사회와 개봉 이후 <명량>에 대한 각종 해석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현실 정치와 관련지을 수도 있고 반대로 지나친 애국주의라는 평도 나오겠죠. 개인적으로 논란과 토론의 귀결점은 현실이라고 봅니다. 상업영화를 통해 잊고 있던 가치, 그러니까 애국심, 희생, 극복 등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들이 나왔으면 해요. 방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물건을 꺼내서 닦아놓고 보는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생각을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영화를 보는 젊은이들은 다 모바일 세대입니다. 그들을 사로잡으려면 박자감도 있어야 하고 템포도 빨라야 해요. 이와 중에 정통 사극을 표방한 <명량>이 과연 먹힐까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말하지 않아도 올라오는 그런 울컥함이 있거든요. 샘 해밍턴도 이 영화를 봤다는데 과연 우리의 정서와 한을 느꼈을지 모르겠네요(웃음). 분명 <군도>나 <해적>의 경쾌함을 좋아하는 관객도 있을 겁니다. 다만 <명량>은 좀 진지하게 봤으면 하는 거예요."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스타영상] '명량' 최민식, "태산같이 무겁게 침착하라"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이 제작보고회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명량>으로 큰 산을 하나 넘었지만 연기 인생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단다.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최민식은 "조금은 유연해진 거 같다"며 "타락이나 타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렇게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백성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뒤바꾼 이순신 장군을 맡았다지만 최민식은 "내가 두려움이 들면? 술과 잡담으로 날려버리죠!"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스스로를 '쌈마이', 그러니까 고급스럽지 않은 성품의 사람이라 자평하면서 말이다. 그 말에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이순신의 갑옷을 벗은 최민식의 다음은 할리우드 진출작인 <루시>에서의 절대 악한 미스터 장이다. 스칼렛 요한슨 앞에서 윽박지르는 최민식의 모습을 상상하니 또 다시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최민식 명량 류승룡 조진웅 이순신
댓글1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