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팽목항으로 가는 길. 도로변 가로수에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군민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들이다.
 팽목항으로 가는 길. 도로변 가로수에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군민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들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또 팽목항으로 간다. 지난달 28일이다. 도로변 가로수에 매달린 노란 리본의 색깔이 부쩍 옅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알려준다. 이 길을 수 없이 오갔을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생각하니 마음 애잔하다. 옷깃도 다시 한 번 여민다.

팽목항은 며칠 전보다 더 을씨년스럽다. 몇몇 사람이 빨간 등대 주변을 오갈 뿐이다.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적막감만 감돈다.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글귀가 눈에 박힌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팽목항 매표소도 한산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는 주민들만 보인다. 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어깨도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매표소의 분위기도 무겁다. 바다도, 사람도, 풍경도 모두 가라앉아 있다.

"진도의 대표 관광지... 관광객 없다고 보면 됩니다" 

팽목항에 내걸린 노란 깃발. 침몰한 세월호에 갇혀 아직까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팽목항에 내걸린 노란 깃발. 침몰한 세월호에 갇혀 아직까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팽목항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국민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빨간 등대 앞으로 경비함정이 지나고 있다.
 팽목항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국민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빨간 등대 앞으로 경비함정이 지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팽목항 옆 서망항도 적막하다. 거리는 한적하고 상가에는 무거운 정적만 감돈다. 예년 같으면 꽃게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포구다. 지척의 남도 석성과 굴포마을에서도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운림산방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마을 사람 몇몇이 슈퍼 앞에 앉아서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버스 구경이 힘듭니다. 보시다시피 주차장에 버스 한 대도 없잖아요. 예년 이맘때면 평일에도 주차장이 꽉 찼거든요. 지금은 관광객 자체가 없어요."

운림산방 매표소를 지키고 있던 김상겸씨의 말이다.

한국 남종화의 본거지로 통하는 운림산방은 진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그럼에도 1시간가량 매표소에 앉아서 김씨와 얘기하는 동안 입장표를 끊은 여행객은 고작 2명이었다.

"휴가철이잖아요. 작년 이맘때에는 평일에 200∼300명씩 찾았어요. 주말이나 휴일엔 1000명이 넘기도 했고요. 근데 지금은 하루 20∼30명 옵니다. 진도의 대표 관광지인 여기가 이 정도인데요. 다른 곳은 관광객이 아예 없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씨의 하소연이다.

진도의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남도석성. 팽목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진도의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남도석성. 팽목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진도 운림산방 전경. 진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관람객의 발길이 뜸해졌다.
 진도 운림산방 전경. 진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관람객의 발길이 뜸해졌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여름 휴가가 절정을 맞았다. 관광지로 가는 도로가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행락객으로 북적댄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진도는 여전히 적막강산이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주민들은 움츠러들고 지역이 활기를 잃었다.

여행객들을 상대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주민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청정해역에서 건져 올린 수산물과 건어물도 소비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소비자를 찾아간 농수특산물이 되돌아오는 사례도 일상이 됐다. 세월호 참사와 함께 진도가 슬픔의 땅으로 국민들의 머리에 각인된 탓이다.

세월호 참사 진도군범군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5월 진도를 찾은 관광객은 2만3200여 명.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1만1600명)의 5분의 1 수준이다. 관련 업계의 매출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기고 여름 휴가철 관광특수마저 사라지면서 낚시점과 편의점, 식당, 숙박업소 등 상가도 개점 휴업 상태를 보내고 있다. 택시와 군내버스 등 운수업계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생활필수품의 수요도 덩달아 줄었다.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양식장을 덮치면서...

서망항에 세워진 꽃게상. 진도 서망항 일대는 꽃게 주산지다. 팽목항 바로 옆이다.
 서망항에 세워진 꽃게상. 진도 서망항 일대는 꽃게 주산지다. 팽목항 바로 옆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주민들의 수산업 소득도 크게 줄었다. 진도군수협에 따르면 지난해 4∼6월 3개월 동안 각종 어패류와 건어물을 팔아 225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그 절반 수준에 그쳤다. 진도의 특산물인 울금과 구기자, 검정쌀 판매량도 곤두박질쳤다.

청정해역의 양식장도 별반 차이가 없다.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양식장을 덮치면서 300억 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게다가 세월호 사고 수습과 인양도 기약이 없어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농수특산품 판매에서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주민들이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앞으로도 금방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오히려 피해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진도군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이 진도에 놀러 가는 것을 꺼려 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식당과 펜션, 낚시점을 하는 주민들의 생계가 타격을 받고, 진도산 농수특산품은 모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역 경제가 송두리째 위기에 빠져들었다"고 한숨지었다.

진도읍내 시장. 세월호 참사 이후 주민들의 발길까지 뜸해졌다. 주민들의 소비심리까지 위축된 탓이다.
 진도읍내 시장. 세월호 참사 이후 주민들의 발길까지 뜸해졌다. 주민들의 소비심리까지 위축된 탓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팽목항에서 조도와 관매도를 오가는 철부도선. 섬주민들만 오갈뿐 외지인을 찾기 어렵다.
 팽목항에서 조도와 관매도를 오가는 철부도선. 섬주민들만 오갈뿐 외지인을 찾기 어렵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사정이 이쯤 되자 속으로만 눈물을 삼켜 온 진도주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부와 정치권에 생계 지원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도군범군민대책위원회는 지난달 15일 국회를 찾아가 세월호특별법의 조속한 제정과 함께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진도군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범군민대책위 관계자는 "진도군민들이 생계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면서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보상과 지원을 담은 특별법 제정과 함께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진도와 안산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과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라남도도 진도군과 주민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었다. 진도 방문과 진도산 농수특산물 구매 등을 뼈대로 한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진도산 농수산특산품 판매를 거들기 위해 전남도 내 공공기관과 유관기관단체에 협조공문을 보냈다. 다가올 추석의 선물도 진도산으로 써줄 것을 당부했다. 대형마트와 연계해 판매행사도 추진키로 했다. 앞으로 전남도에서 주관하는 행사도 진도에서 열기로 했다.

지난달 19일과 20일 안산시청 주차장에서 열린 ‘안산-진도 희망장터’. 많은 안산시민들이 나와 진도산 농수특산물을 사갔다.
 지난달 19일과 20일 안산시청 주차장에서 열린 ‘안산-진도 희망장터’. 많은 안산시민들이 나와 진도산 농수특산물을 사갔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도 진도 농수특산품 구매를 요청하는 협조공문을 전국 각 자치단체와 산하 기관에 보냈다. 추석을 앞두고 진도산 농수특산품 판매행사와 구매 촉진운동도 펴기로 했다.

이의 일환으로 안산시와 진도군은 지난달 19일부터 이틀 동안 안산시청 주차장에서 '고맙습니다. 안산-진도 희망장터'를 열었다. 장터는 세월호 참사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도군민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한 자리였다.

희망장터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안산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진도에서 생산된 김, 미역, 멸치 등 건어물과 흑미, 오색미 등 곡물 그리고 구기자, 울금, 홍주 등 특산품 7000여만 원 어치가 팔렸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첫걸음에 불과하다. 우리가 배려하지 않으면 진도 경제는 완전히 침몰하고 말 것이다. 우리 모두가 '내 식구'라는 생각으로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과 함께 진도군민을 보듬어야 할 때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슬퍼하면서 일상까지 뒤로 미룬 채 지금까지 인명구조와 사고수습에 참여하고 있는 진도사람들이기에.

진도 팽목항에 내걸린 소망. 언제라도 가슴 저미게 한다.
 진도 팽목항에 내걸린 소망. 언제라도 가슴 저미게 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태그:#세월호, #진도경제, #팽목항, #운림산방, #남도석성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