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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쓰는 편지' 공모전이 열렸다.
 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쓰는 편지' 공모전이 열렸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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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보건의료원(원장 김진백)에서는 매년 자녀에게 편지쓰기 공모전을 연다. 가족과 가정의 중요성 그리고 출산장려 등 가족 간 유대강화를 위함이다.

금상 50만 원(1명), 은상 40만 원(1명), 동상 30만 원(3명), 입선 15만 원(5명). 상금도 적은 편은 아니다. 지난 7월 21일, 작년에 이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24명이 응모한 다양한 작품들. 내용이 흥미롭거나 감동적인 쪽에 높은 점수를 주기로 했다.

지난 7월 31일, 공모전 결과 발표가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합산해 등수가 결정된다. 심사위원들 시각은 모두 비슷했던 모양이다.  

금상을 차지한 작품은 주제의 선정은 좋았지만, 문장의 완성도는 낮았다. 반복적인 문구, 기다란 수식어는 글을 조잡스럽게 만든다. 또 여섯 줄이 넘도록 이어지는 장문은 주어와 서술어 구분도 모호해 진다.

그래도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높게 주었던 건, 아버지와의 갈등 또 그것을 극복한 내용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문장을 다듬어 기사로 쓰고 싶다는 제안에 원문 그대로 싣는다면 허락을 하겠단다.

글의 균형과 짜임새가 다소 떨어진다.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줬던 작품으로 결정했다. 감동보다 밝고 생동감 넘치는 쪽에 높은 점수를 줬던 글이다. 주제의 기준에도 부합했다.

<작은 손>이란 제목의 글. 동상을 차지한 화천군 상서면 신풍리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인 안상미 씨(35세)가 '자녀에게 쓴 편지 글'이다. 아이를 키우는 새내기 주부시절의 에피소드를 막힘없이 써 내려갔다. <오마이뉴스>에 소개를 해도 좋다는 그녀의 허락을 얻어 원문 그대로 각색 없이 옮긴다.

안상미씨가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       

꼬물꼬물 애벌레처럼 속싸개에 쌓여 움직이는 작은 손. 만질까 말까, 울까 웃을까, 1초의 시간 속에 뒤범벅이 되는 긴장감과 집중력. 누군가의 몸짓에 이렇게 긴장하고 애가 탄 적이 있던가? 떠지지도 않는 눈을 단춧구멍만 하게 뜨고 날 보는지 천장을 보는지 모르는 눈빛으로 가끔 버거워 보이는 눈꺼풀만 올렸다 내렸다 한다. 그러다 갑자기 손을 쭉 펴 용트림을 하고 마지막에는 앵~~~

절망의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본능적으로 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널 둥기둥기 하면서 허리반동을 이용해 어르고 달래보았지만 넌 작기만 한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악을 쓰며,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터질 듯 울었다. 나도 울고 싶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거실을 학교 운동장마냥 돌고 바운스를 주며 널 위 아래로 흔들어도 넌 반응도 없고 앵~앵~.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네 울음소리... 넌 내게 강적이었다. 그 순간 넌 내게 엄청난 삶의 역경을 준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컥컥- 넌 과자을 먹다 신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사이즈만 다른 데칼코마니인 네 아빠는 놀라 급히 차를 몰고 응급실로 갔다. 그러다 간호사에게 둘 다 혼났다. 과자를 침으로 다 녹였기 때문에 컥컥 거린 거고, 물이나 우유를 먹이면 괜찮은데 왜 응급실로 왔냐며 핀잔을...

그 소리를 듣고도 네 아빠는 입안을 확인해 달라고 사정사정해 의사 선생님이 예의상 입안 한번 확인하고 진료비 내지 말고 바로 집에 가라고 해 병원 응급실을 투덜투덜 걸어 나왔다. 네 할머니에게 별것도 아닌데 둘이 유난스럽다며 도 한번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엄마 아빠는 네가 어떻게 될까봐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응급실의 바보 엄마 아빠로 등극하는 날이었다.

욱욱~~ 너의 작은 입에서 정체불명의 것들이 화산 분출하듯 했다. 난 손으로 네 턱에 미니 바구니를 만들어 바치고 있었다. 너의 왕성한 장 활동으로 늘 네 기저귀는 풍년이 들었다. 너의 똥과 토가 손에 묻어도 하나도 더럽지 않았고, 네가 혹시 어디 아픈가 걱정만 될 뿐이었다. 내가 늙어 치매라도 걸려 아무 곳이나 대변을 보면 너도 엄마가 해 준 것이 있으니 더럽게 생각하지 말고 한번은 치워주기 바란다. 엄마가 네 똥 수발을 몇 년은 했으니, 내 먼 미래에 부탁해.

너의 작은 움직임과 너의 처음을 다 기록하고 싶었고, 네게 알려주고 싶어서 쓴 육아일기.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썼지만 시간의 흐름과 반비례. 너와 함께 한 시간과 이야기는 늘어만 가는데 페이지는 넘어가질 않았고, 책장의 구석진 곳으로 몰린 육아일기. 처음엔 정말 '널 사랑하는 만큼 써야 한다'는 생각과 '네 모든 것들을 나중에 시집갈 때 알려줘야지' 거창한 다짐이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다. 너의 첫 신발과 원피스 정장, 백일 때 입었던 옷, 아가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만이 네가 내 품안에 안겨 살았다는 증거자료가 될 뿐...

지금은 나보다 더 자라 안기도 힘들고, 반대로 네가 날 안아주는 격이 되어 버렸다.

아빠의 미니어처인 너. 또 다음 미니어처의 등장. 다시 꼬물거리는 애벌레와의 싸움. 2년 만에 알게 된 사실, 넌 내게 강적이 아니었다. 강적은 따로 있었다. 널 키우는 것보다 10배 더 힘들게 만든 진정한 강적. 다행히 네가 있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위안이 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순간. 동지 함께 위기를 탈출 합시다. 동지밖에 없소이다. 그동안 미안 했수다 동지...

동지와의 연합작전으로 우린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지만, 또 다른 태풍이 우리들을 휘몰아쳤으니... 느닷없는 늦둥이의 등장.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고 진행 중. 그러나 날 이해해주고 나와 늘 눈빛만으로 통하는 네가 있어 천만다행. 넌 동지에서 내게 로또 1등으로 격상. 로또 1등과 널 바꾸라고 하면 난 거절할 수 있단다. 돈으로 살수 없는 기쁨과 슬픔을 주고 날 사랑해 주는 너의 마음이 천억이 아니 조 단위니.

가끔 삶의 무게에 눌려 너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널 사랑하고 누구보다 네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엄마의 희망을 들어주기 바란다. 남다른 남동생들 틈바구니에서 꿋꿋이 서 그 둘을 들었다 놨다. 나보다 동생들을 더 잘 이해하는 네가 고맙고 정말 사랑한단다. 늘 건강하고 네가 늘 즐겁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의 눈가에는 늘 눈물보다 웃음이 흘러 넘쳤으면 한다.
사랑 하고,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하다.

- 내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해준 소중한 내 딸에게 엄마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자녀에게 편지쓰기, #안상미, #화천보건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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