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차기 대표팀 사령탑에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하면서 과연 어떤 인물이 태극군단의 지휘봉을 잡게 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용수 신임 기술위원장은 지난 7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차기 대표팀 감독의 8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간단히 말하면 클럽과 대표팀을 아우르는 풍부한 국제경험을 갖춘 감독을 찾겠다는 것이다.

한국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원할한 직무수행을 고려하여 나이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기준으로 70세가 넘지 않아야하고 영어구사가 가능하며 무엇보다 지금 바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또한 단기적인 대표팀 성적만이 아니라 국내 지도자와 연계하여 유소년 교육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축구의 중장기적인 비전을 함께 수립하고 공유할수있는 인물이라면 금상첨화다.

기술위는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국내파 감독을 배제하고 후보를 추린 결과 3명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아직 감독후보들의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차기 감독의 조건에 따라 유력한 해외 감독들의 이름이 국내외 언론과 팬들을 통해 거론되고 있다.

이중 공통적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감독들을 살펴보면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마틴 욜, 프랭크 레이카르트(이상 네덜란드), 페르난도 산투스(포르투갈), 알레한드로 사베야(아르헨티나), 호르헤 루이스 핀투(콜롬비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밖에 닐 레넌(북아일랜드),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스페인),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크로아티아), 루치아노 스팔레티(이탈리아),밀로반 라예바치(세르비아) 등도 가능성은 낮지만 감독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번에도 1순위는 네덜란드?

그동안의 전례로 살펴보면, 한국축구는 남미보다는 유럽, 동유럽보다는 서유럽, 특히 네덜란드 출신 외국인 감독들을 유독 선호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을 시작으로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백, 조 본프레레 등 네덜란드 출신 감독만 무려 4명이 한국대표팀을 거쳐갔다. 비네덜란드 출신으로는 움베르투 쿠엘류(포르투갈), 90년대 올림픽대표팀을 잠시 지휘했던 디트마르 크라머(독일)와 아나톨리 비쇼베츠(우크라이나) 등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출신이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한국축구가 네덜란드 출신을 선호하는 것은 역시 히딩크 감독의 영향이 크다. 히딩크 감독은 역대 한국축구 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외국인 감독으로 평가받고있다. 네덜란드 축구를 한국 실정에 맞게 변형시킨 전방위 압박축구와 토털싸커는 2002년 이후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색깔이 됐다. 선진화된 대표팀 운영 시스템을 처음 정착시킨 것도 히딩크 감독 때부터였다. 물론 이후의 네덜란드 출신 감독이 모두 히딩크 감독처럼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히딩크 감독이 남긴 유산이 워낙 강렬했기에 한국축구는 여전히 '제 2의 히딩크'가 등장할 가능성에 미련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네덜란드가 급변하는 전술 트렌드를 선도하는 팀중 하나였다는 것도 네덜란드 축구에 다시 주목하게 한다. 루이스 판 할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네덜란드는 변형 스리백 전술과 정교한 롱패스에 이은 속공축구로, 한때 스페인 스타일의 '점유율'이 지배하던 축구의 트렌드를 '효율성'으로 바꾸어놓았다.

한때 네덜란드식 압박축구를 롤모델로 지향해왔던 한국축구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달라진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보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네덜란드의 전술적 진화를 한국형 압박축구에 다시 접목시킬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실험이다.

실제로 이번 차기 감독후보군 중에서도 유독 네덜란드 출신이 많은 게 눈에 띈다. 판 마르베이크, 욜, 레이카르트 등 네덜란드 감독만 세 명이다. 특히 여러 주요 언론에서 차기감독 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판 마르베이크는 1년 전에도 이미 한국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오른바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클럽무대에서도 풍부한 경력을 자랑하는 판 마르베이크는 모든 면에서 이용수 위원장에 언급한 차기감독의 조건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막연한 과대평가나 선입견은 금물이다. 판 마르베이크나 욜은 네덜란드 감독 중에서도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색채로 더 유명한 인물들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히딩크 보다는 한국 대표팀에서 기대에 못 미친 케이스에 가까운 아드보카트나 베어벡과 비슷한 성향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레이카르트는 화려한 클럽경력에 비하여 월드컵 본선경험이 없다는 뚜렷한 약점이 있다. 더구나 이들 3인방 모두 최근 감독으로서의 커리어가 급격한 하향세라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외국인 감독 영입의 최대 난제, '비싸도 너무 비싸'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결국 몸값이다. 최근 주가가 떨어졌다고 해도 대부분은 유럽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거물급 감독들이다.

유력한 1순위인 판 마르베이크의 경우,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조국 네덜란드 대표팀을 준우승시킬 때의 연봉만 270만 달러(27억 원)에 이르렀다. 레이카르트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지휘봉을 잡을 당시 3년간 무려 1600만 달러(약 164억) 이상을 보장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이끈 홍명보 감독의 연봉은 약 8억이었다.

설사 일류 감독이 통크게 양보해서 몸값을 10~20억 원 선까지 낮춘다고 해도 그게 전부가 아니다. 보통 외국인 감독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스테프들을 데리고 올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의 몸값까지 부담할 경우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최소 50억에서 최대 100억 이상이 될수도 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의 예산(연간 1000억 원 내외 추정)으로 감당하기 힘든 규모다.

역대 한국축구대표팀 외국인 감독 사상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것은 2002년 히딩크 감독으로 연봉 100만 달러(약 10억28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옵션계약 등으로 20억 이상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순수 연봉은 많이 깎은 상태였다.

히딩크 감독이 당시 클럽무대에서의 연이은 실패로 주가가 하락한 상황이었던데다 월드컵 개최국 사령탑이라는 프리미엄과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을 통하여 조율이 가능했다. 1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외국인 감독에게 지불할 수 있는 연봉상한선은 크게 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2 월드컵 개최 때처럼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서는 특별한 메리트도 부족하다. 대한축구협회의 협상력으로 몸값 비싼 거물급 감독들과 얼마나 현실적인 조율이 가능할지가 변수다.

숨은 보석은 없을까

한편으로 비네덜란드 혹은 비유럽 출신 감독들에게도 한번쯤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세계축구의 중심은 여전히 유럽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지난 월드컵에서 북중미나 남미팀들중에서도 한국의 본보기가 될만한 창의적이고 참신한 축구를 보여준 팀들은 많았다. 이제는 네덜란드식 압박축구 외에도 한국 실정에 맞는 다양한 축구스타일을 접목시키려는 도전정신도 필요하다.

포르투갈 출신 페르난두 산투스나, 콜롬비아 출신 호르헤 루이스 핀투, 아르헨티나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은 유럽 주류 명장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아 보이지만, 능력은 충분히 검증된 감독들이다.  바로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일정한 성적을 거두며 가장 최근에 기술위가 제시한 우선조건을 충족시켰다는데도 주목할만하다. 현재 맡고있는 팀이 없어서 자유롭게 계약이 가능하고, 2014 브라질월드컵을 기준으로 몸값이 국내파 감독들과 비슷한 수준에서 비교적 저렴한 연봉에 협상할 여지가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하지만 그만큼 월드컵 이후 몸값이 급격히 치솟을 가능성도 높다는게 변수다. 몇몇 감독들은 과거 본프레레의 경우처럼 알려진 것에 비하여 커리어가 과대포장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단편적이고 외형적인 성과에 집착하지말고 감독의 능력과 비전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해외에서의 활동경험 유무나 현지의 평판 등도 주의깊게 검토해야한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기술위가 검토한 3명의 외국인 감독 우선순위와 모두 협상이 결렬된다면 어떻게 될까.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많지만 실제로 접촉하거나 구체적인 협상이 가능한 인물은 한정되어있다는게 중론이다. 거물금 감독의 영입은 몸값 등의 제약이 많고, 그렇다고 어중간한 외국인 감독을 성급히 데려왔다간 본프레레나 베어벡의 전철을 밟을 위험부담이 높다. 감독후보로 이름을 올린 인물중, 대표팀이나 월드컵 경험이 부족한 일부 외국인 감독들의 경우에는 우선순위 후보들과의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파격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국내파 감독으로 다시 회귀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7년에도 한국축구는 당시 우선순위였던 제라르 울리에(프랑스)-마이클 매카시(아일랜드) 감독과의 협상이 모두 결렬되면서 3순위였던 허정무 감독을 대안으로 선택한 바 있다.

올해의 경우, 황선홍- 최용수 등 현역 K리그 감독들 혹은 재야에 머물고있는 김호곤-허정무 감독 등이 다시 대안으로 오를수도 있다. 물론 팬들이 기대하는 시나리오와는 가장 거리가 멀다.

이번 신임 감독은 2018년까지 대표팀뿐만 아니라 한국축구 개혁의 전권을 쥐고 막중한 책임을 맡아야한다. 파격보다는 안정성에, 재능보다는 경험에 더 무게가 쏠릴 수 밖에 없다. 이번만큼은 축구협회가 과연 어떤 최적의 대안을 내놓을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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