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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애 참 어렵습니다. 시작하기도 계속하기도 끝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연애 방법을 학습하고, 어플리케이션으로 사람을 만나고, 재회를 위해 비싼 돈을 냅니다. 연애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세상, 요즘 연애의 신풍속도를 탐구해봤습니다. [요즘 연애] 시리즈는 <오마이뉴스> 공채 7기 수습기자들이 자체적으로 기획,취재,작성한 '독립편집국' 기사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시라노;연예조작단>이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시라노 연예조작단은 연애에 서툰 의뢰인을 대신해 완벽하게 짜인 각본으로 사랑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작전단'은 현실에도 있다. 이들은 많게는 1000만 원을 받고 짝사랑뿐만 아니라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갖은 상황을 연출하는 '작전'을 펼친다
 영화 <시라노;연예조작단>이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시라노 연예조작단은 연애에 서툰 의뢰인을 대신해 완벽하게 짜인 각본으로 사랑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작전단'은 현실에도 있다. 이들은 많게는 1000만 원을 받고 짝사랑뿐만 아니라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갖은 상황을 연출하는 '작전'을 펼친다
ⓒ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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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입금완료]' 
'친구이상으로 안 보인다고 헤어졌습니다. 잡고 싶어요. 절박합니다. (입금완료)'
'망했어요ㅠㅠ *** 상담사님 도와주세요... 이젠 진짜 끝인가봐요. (입금까지 완료)'

통계에 근거한 과학적 연애 지침을 내려준다고 홍보하는 어느 연애상담전문 사이트. 이곳엔 한 시간에 20만 원짜리 전화 상담을 요청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대부분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주문이다. 상담신청 게시판 곳곳에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글이 눈에 띈다. 닉네임 또한 애절하다. '사랑뿐이야', '그립네', '끝이아니길바랍니다'….

연애 컨설턴트가 등장해 '연애 과외 시대'를 연 데 이어 헤어진 연인과 재회를 돕는 '재회컨설턴트'도 나타났다. 포털사이트에 '재회상담'을 검색해보니 관련 업체가 10곳 넘게 나온다. 재회상담만 전문으로 하는 곳도 있다. 주 고객층은 20~30대다. 흔히 이별은 '성장통'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돈을 들여서라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적게는 2만 원, 많게는 1000만 원 호가하지만 찾는 사람 꾸준

컨설팅은 크게 세 종류다. 전화상담과 방문상담, 그리고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처럼 재회를 위해 상대방 모르게 갖은 상황을 연출하는 '현장 프로젝트'다. 전화상담은 최소 2만 원에서 최대 20만 원, 방문상담은 30~50만 원이 든다. 시간은 1시간~1시간 30분이 기본이다. 현장 프로젝트는 신청자의 상황에 따라 다 다른데, 계약기간을 연인과 재회할 때까지로 두고 1000만 원을 호가하는 상품도 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재회컨설턴트들은 스스로를 심리학과 뇌신경학, 화법 등의 전문가라고 소개하며 수년 동안의 상담기록을 분석한 '데이터베이스(DB)'를 근거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처방을 내려준다고 말한다. 재회 성공률이 80%라며 확률을 제시하기도 한다. 연애고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해주는 상담은 엉터리라고 단언하면서 "유료상담의 가치를 모르거나 상담을 위해 몇 만 원 쓰기 아까운 분들은 조용히 나가달라"고 하는 곳도 있다.

상담 절차는 간단하다. 먼저 신청자가 홈페이지에 나이, 직업 등 간단한 신상과 함께 연인과 헤어지게 된 사연을 구체적으로 올리고 비용을 결제한다. 컨설턴트는 신청자의 사연을 나름의 관점으로 '프로파일링'한 뒤에 이별의 원인을 분석해주고 연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작전'을 설계해준다.

작전은 꽤 구체적이다. 컨설턴트는 신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깨알 지시'를 내린다. 이별 과정에서 신청자에게 문제점이 있었다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지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어떻게 바꿀지, 어느 시점에 상대에게 연락을 할지 등을 단계별로 알려준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는 적절한 문안까지 써준다. 재회에 성공한 이후에는 서로 조심해야 할 점도 조언해준다.

한 시간 상담에 최대 20만원이 들지만, 상담 신청 게시판을 둘러보면 꽤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2010년에 문을 연 한 업체의 홈페이지에는 최근까지 1:1 음성상담을 요청하는 글이 8200건 넘게 올라왔고, '업무 폭주'로 중단한 문서상담도 2800건 이상 이뤄졌다. 또한 전화 상담이 폭주하니 상담 이외의 문의는 메일로 달라는 당부 글도 올라왔다. 2011년에 문을 연 업체의 홈페이지에도 재회 상담을 요청하는 글이 7000건 이상이다.

한 연애컨설팅 업체의 상담신청게시판. 이곳에는 재회 상담을 간절히 원하는 상담요청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 재회상담 신청게시판 한 연애컨설팅 업체의 상담신청게시판. 이곳에는 재회 상담을 간절히 원하는 상담요청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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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되돌릴 수 있다면 큰 돈 들여도 아깝지 않아"

20대 여성 A씨는 지난 7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한 연애상담전문 업체에서 전화로 재회 상담을 받았다. 특별한 방법을 알려줄 거란 기대로 30초당 1500원이 드는 ARS 번호를 눌렀다. 헤어진 남자친구는 연락을 거부하며 그와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었다. 조급해진 그는 상황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큰돈이 들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상담 중에는 잠시나마 마음이 편안했다. 남자친구와 재회도 가능해 보였다. 여성 상담사는 "남자들은 이래서 안 된다"고 맞장구를 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동시에 헤어지게 된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재회를 위한 여러 조언도 건넸다. 그는 "'매달리면 더 싫어한다' 같은 일반 연애상식을 잘 정리해서 말해주는 정도였지만, 상담하는 동안에는 답답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고 전했다.

A씨는 같은 업체의 남성 상담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남성의 시각에서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또 말없이 떠난 남자친구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추측해보고 싶기도 했다. 두 상담사와 전화 상담을 마치고 나니 140만 원이 청구됐다. 8시간 통화에 4인 가구의 한 달 최저생계비(132만 6609원)를 웃도는 금액을 써버린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을 쓰고, 남자친구의 마음을 돌리는 데도 실패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담으로 재회를 단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불안한 마음도 잠재웠다. 또 익명이라는 장점을 활용해 남에게 하지 못한 속 이야기까지 후련하게 털어놓은 점도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대기업에서 회계를 담당하는 김아무개(30.남)씨도 지난해 11월 돈을 내고 재회컨설팅을 받았다. 3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그동안 쌓인 서운함을 토로하며 결별을 선언한 직후였다. 상실감이 컸던 그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친구마다 처방이 달라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연애컨설턴트가 쓴 칼럼을 봤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어 각종 재회컨설팅 후기를 읽으며 컨설턴트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김씨는 재회컨설턴트에게 19만 원을 지불하고 상담을 시작했다. 첫 상담에서 컨설턴트는 "매달리지 말고 시간을 두는 게 중요하다"며 여자친구에게 이젠 미련 없이 끝내겠다는 내용의 '정리문자'를 보내라고 주문했다. 그는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열흘을 버텼다.

열흘 후 컨설턴트는 '라디오 DJ'를 가장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디오 생방송 중에 전화연결을 한 것처럼 상황을 꾸민 것이다. 컨설턴트는 여자친구에게 전 남자친구가 재회를 간절히 원한다며 김씨가 쓴 편지를 읽어주었다. 이 방법으로 여자친구의 마음이 조금 움직이자 컨설턴트는 곧바로 다음 '작전'을 실행했다. 김씨에게 여자친구와 만나 '커플10계명'을 쓴 다이어리를 전해주며 고백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날 김씨는 재회에 성공했다. 

김씨는 컨설팅 과정을 되돌아보며 "재회에 성공하긴 했지만 사실 컨설턴트에게 일반적 연애상식을 뛰어넘는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고 평했다. 그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심란한 마음을 다스렸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벽에도 고민을 들어주는 컨설턴트는 실연이 가져다 준 상실감을 달래주는 상대"라고 전했다.

재회컨설팅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한 연애컨설팅 업체에서 5년 동안 재회컨설팅을 담당했던 전직 컨설턴트 B씨는 "재회 가능성이 희박한 신청자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으며 수백만 원 짜리 프로그램을 판매하라는 압박을 회사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또 "수백만 원을 쓰고도 재회에 실패한 사람들이 환불을 요구할 때는 연락을 회피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재회컨설팅 업체들은 "신청 순간부터는 분석 및 연구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로도 환불이 불가하다"고 공지하거나, 아예 환불 규정을 명시하지 않은 곳도 있다.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만든 새로운 풍경 

<러브멘토 제니의 연애 상담소>를 운영하는 연애카운슬러 제니(36)씨는 20~30대가 큰돈을 쓰면서까지 헤어진 연인과 재회에 힘쓰는 이유는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취를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실연'도 실패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또한 "취업난으로 공부하기 바쁜 젊은이들은 관계 맺기에 서툴 수밖에 없다"며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 본의 아니게 사랑을 잃고 큰 좌절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과정으로 얻은 상실감을 재회상담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제니씨는 재회상담을 할 때 연애 패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도, 최선을 다해도 상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덤덤히 이별을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이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한국경제신문사,2012년), <혼자일 땐 외로운 함께일 땐 불안한>(사막여우.2013년)을 쓴 이인 작가도 재회컨설팅 시장이 등장한 원인을 "실패를 견디지 못하는 세대의 특징"에서 찾았다.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뜻하지 않게 이별 겪으며 성장해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승리와 결과에 집착하는 '자기계발세대'에게는 연애 또한 스펙이 된 상황"이라며 "이별을 성장통으로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무능이자 실패로 여겨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전수하는 '픽업아티스트'의 등장과 연결 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원, 학교 등 뻔한 사람들 속에서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은 세대는 타인을 성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픽업 아티스트가 '술수'를 써서 이성을 유혹할 수 있다고 믿듯이 재회컨설팅을 찾는 사람들 또한 '술수'로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태그:#재회컨설팅, #이별, #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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