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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 14학번 학생들이 제작한 '귀를 여시오'. 소방대원의 국가직 전환 문제를 다뤘다.
 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 14학번 학생들이 제작한 '귀를 여시오'. 소방대원의 국가직 전환 문제를 다뤘다.
ⓒ 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 1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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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인상 필요 없다, 장갑 좀 사주시오. 국민의 귀한 목숨, 돈이 더 중요하느냐?"

시위대가 광장에서 외치는 문구 같지만 아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라온 패러디 뮤직비디오 <귀를 여시오>의 가사다. 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 14학번 학생들이 가수 임창정의 노래 <문을 여시오>를 개사해서 이 영상을 만들었다. 여장한 남학생도 출연하고 단체 군무도 있는 그야말로 '대학생 느낌'의 UCC다. 그러면서도 소방대원 국가직 전환이라는 다소 무거운 문제를 다뤘다.

이 영상이 올라온 유튜브 페이지의 댓글 중 '웃프다(웃긴데 슬프다)'는 말이 눈에 띄었다. 그만큼 이 영상은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해학적으로 다뤘다. 영상을 기획한 백규준(21·남·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 1년)씨를 지난 13일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방대원 국가직 전환에 관한 패러디 영상 '귀를 여시오'를 제작한 대학생 백규준씨.
 소방대원 국가직 전환에 관한 패러디 영상 '귀를 여시오'를 제작한 대학생 백규준씨.
ⓒ 황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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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구조과를 졸업하면 주로 병원 응급실이나 산업체 의무실에 취직하거나, 소방대원·해경 특채에 지원하게 된다. 그는 "매년 학과의 44명 정도가 소방구급대원 특채로 합격한다"고 했다. 백씨도 진로를 소방구급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소방관의 국가직화 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

"예전에 서울대학교 법인화 사건 때 학생들이 만든 뮤직비디오 <총장실 프리덤>을 봤어요. 많이 감동을 받았고, 자기가 관심 있는 사회 문제를 재미있게 표현해서 이목을 끈다는 것이 흥미로웠죠. 그래서 저희도 동영상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백씨가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동기들 중 이 문제에 관심 있고 '끼' 있는 친구들 13명이 함께 참여했다. 다들 아르바이트도 빠지면서 촬영과 제작에 나섰다. 기획을 거쳐 촬영을 하고, 편집은 지인을 통해 수원 소재 공연예술연구기관 '연우시'에 의뢰했다.

"아르바이트도 빼가면서 영상 만들었어요"

동남보건대 1학년 학생들의 '귀를 여시오' 영상 속 장면. 왼쪽 화면은 도시의 체계적인 구급 시스템(좋은 구급차, 3인 구급대원)을, 오른쪽 화면은 지방이나 시골의 열악한 구급 환경(낡은 구급차, 1인 구급대원)을 표현했다.
 동남보건대 1학년 학생들의 '귀를 여시오' 영상 속 장면. 왼쪽 화면은 도시의 체계적인 구급 시스템(좋은 구급차, 3인 구급대원)을, 오른쪽 화면은 지방이나 시골의 열악한 구급 환경(낡은 구급차, 1인 구급대원)을 표현했다.
ⓒ 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 1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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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시작부터 '빵 터지는' 장면이 나온다. 시골 다방 종업원으로 여장한 남학생이 자신을 음흉하게 바라보며 추행하는 남자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는다. 이 장면에도 물론 의도는 있다. 시골 사람들이 몇 시간을 기다려 허름한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구조대원 한 명의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 같은 상황에 처한 도시 남녀는 구급대원 세 명의 질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 구급차에 대원 세 명이 타는 게 원칙이에요. 그런데 어떤 지역은 지자체 예산이 부족하고 인원 확충을 못해서, 심한 곳은 한 명만 출동합니다. 혼자 운전도 해야 하고 응급처치도 해야 하니 난감하죠. 응급구조사나 간호사가 아닌 사람이 교육만 간단하게 받고 바로 투입되기도 하고요. 그것을 한 팀은 도시팀, 한 팀은 시골팀으로 나눠서 표현해봤습니다. 시골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장소를 찾기 힘들어서 애먹기도 했어요."

경찰과 군인은 정부의 일원화된 명령으로 움직이지만, 소방공무원들은 정부와 지자체 소속으로 나뉘어서 아래 사진처럼 삐걱거리기 일쑤다.
 경찰과 군인은 정부의 일원화된 명령으로 움직이지만, 소방공무원들은 정부와 지자체 소속으로 나뉘어서 아래 사진처럼 삐걱거리기 일쑤다.
ⓒ 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 1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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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대부분의 장면을 백씨와 친구들이 함께 고안해냈다. 과거 이슈가 된 사건을 재연한 장면들도 있다. 영상 중반에는 작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소방공무원들이 동원돼 의자를 닦았던 사건을 패러디했다(관련기사 : 박근혜 취임식 '소방관 의자닦기' 행안부 해명은 거짓).

다음 장면에서는 일할 때 쓰는 낡은 장갑이라도 바꿔달라는 소방공무원들이 등장한다. '지자체' 역할을 맡은 학생이 이들의 뺨을 때리며 "돈 없으니까 제발 그냥 쓰라"고 노래한다. 백씨는 "원래 이 장면에서 여자 친구들도 쓰려고(출연시키려고) 했는데, 여자아이들의 뺨을 때릴 수 없어서 그냥 뺐다"며 웃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제가 제안한 '마리오네트(인형극)' 장면이에요. 경찰이나 군인은 정부가 혼자 조종하니 단일화되어 일사불란하게 잘 춤추잖아요. 그런데 소방의 경우에는 지휘가 시·도지사(지방)와 소방방재청장(중앙)으로 이원화되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죠. 그런 것을 삐걱거리는 인형으로 표현한 겁니다."

"소방은 국민과 가장 가까운 단체... 귀를 열어주세요"

소방대원으로 분장한 학생의 '장갑 좀 사 달라'는 말에 지자체로 분한 학생이 거절하는 장면.
 소방대원으로 분장한 학생의 '장갑 좀 사 달라'는 말에 지자체로 분한 학생이 거절하는 장면.
ⓒ 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 1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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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영상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페이지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에 올라가 있다. 현직 소방대원들이 "잘 만들었다"며 게시물 공유도 하고 응원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백씨는 "그 분들의 입장을 학생인 저희들이 대변했다는 것이 좋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백씨는 "소방과 119는 국민에 제일 가깝고 친숙한 정부 단체이고, 그만큼 브랜드가치도 있다"며 "소방대원 제복도 결국 나라에서 일하라고 입혀준 건데 왜 군인·경찰과 달리 소방관만 지방직인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 의원이 공동 발의한 '소방공무원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개정안이지만, 안전행정부와 일부 지자체의 반대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심의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귀를 여시오>라는 동영상의 제목은 이 상황을 비꼬았다. 그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동의하고 전문가나 일반 국민들도 공감하는데, 일부 반대자들이 귀를 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제가 아직은 소방관이 아닌 국민이잖아요? 그런데 국민의 입장으로 봐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방관의 문제만이 아닌 국민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대통령, 국회의원 위에 국민이 있습니다. 국민 여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동영상을 보시고 소방대원 국가직 전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소방공무원, #국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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