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수정: 29일 오후 5시 19분]

황우여 교육부장관님께.

안녕하신지요. 저는 전라북도의 한 사립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국어 교사입니다. 타 지역에 있는 또 다른 사립 학교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사안이 시급하고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무례함을 무릅쓰고 장관님께 편지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이유입니다.

인사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8일에 취임하셨더군요. 일부 언론은 그날 취임식에 '이례적'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놓았습니다. 인사청문회가 바로 전날 끝나고, 당일 오전에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된 직후 취임식이 이뤄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이례적으로' 신속한 취임식의 배경으로 서남수 전 장관 퇴임과 김명수 후보자 낙마 등으로 인한 업무 공백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를 들었다고 합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말입니다.

취임 직후 장관님의 행보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공식 외부 일정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청 부교육감회의 참석이었더군요. 15~16일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전남의 낙후 교육 시설을 둘러보는 현장 방문 활동을 다녀오셨습니다. 27일을 전후로 해서는 전국시·도교육감들과 첫 상견례를 가질 것이라는 보도도 보입니다.

장관 취임 10여 일,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장관님은 취임 후 10여일째를 맞고 계십니다. 솔직히 눈에 크게 띄는 행보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눈길 끄는 일정이 하나 있긴 합니다. 지난 14일 전국 부교육감회의입니다. 그 자리에서 장관님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미복직 전임자와 조퇴투쟁 집회 참여 교사들을 관련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해 달라고 시·도교육청에 요구하셨더군요. 모두가 전교조와 관련된 휘발성 강한 사안들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긴급하게' 발언하신 것으로 보면 되겠지요.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장관님은 여러 교육 현안에 대해 무척 말을 아끼고 있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업무 공백의 장기화를 걱정한 교육부의 설명을 고려할 때, 장관님의 행보는 한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지금 장관님은 한가하게 보낼 때가 아닌데 말입니다. 구성원간 첨예한 갈등의 현장이 된 상지대 사태가 목전에 펼쳐지고 있어서입니다.

보고를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사학 비리 1호'의 오명을 안고 있는 김문기 전 상지학원 이사장이 지난 14일 상지대학교 총장으로 선임·의결됐습니다. 한 자리에 불러모은 전국 부교육감들에게 장관님이 전교조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신 날이었지요.

상지대는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사학 비리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장기 사학 분규의 대표 본보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상지대 총학생회는 지금 김 전 이사장의 상지대 총장 취임에 반발해 총장실을 점거·농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지대 교수협의회는 김 전 이사장이 총장으로 선출된 것에 대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지요.

장관님, 이들은 왜 그렇게 거세게 반발할까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김 전 이사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0년대 초반 '사학 비리 1호'로 옥살이까지 한 전과자입니다. 입학 부정 등의 혐의였습니다. 교육자로 활동하기에는 도덕적인 흠결이 너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8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교육부 산하 위원회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에서조차 비리 당사자인 점이 문제가 돼 상지대 정이사로 적절치 않다며 거부당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런 인물이 상지대 이사가 된 것도 모자라 이사회 만장일치로 총장에 선출되어 취임한 것입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데 상지대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교육부의 '뒷짐', 혹은 짐작컨대 장관님의 '무관심'(?) 같은 게 큰 구실을 한 것 같습니다. 예의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상지대 이사회가 김문기 전 이사장을 이사로 선임한다고 밝힌 것은 지난 7월 28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기자-김문기 전 이사장의 이사 선임과 관련하여) 임원 취임 승인 신청이 접수되면 그때 가서 승인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손을 놓고 있다고 합니다.

교육부는 8월 초에 김문기 전 이사장 차남이 총장에서 사퇴했다는 상지대 재단 쪽 구두보고를 받은 뒤에도 상지대에 총장 사직서 등의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현행 사립학교법이 사학재단의 임원(이사) 취임, 이사장의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등 특수관계인의 총장 취임 시 교육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는 점을 아시는지요.

상지대는 지난 1년간 '임원 간 분쟁' 상태에 있었다고도 합니다. 채영복 전 이사장 등 구성원과 교육부 추천 이사들이 올해 3월까지 김문기 전 이사장 쪽에서 추천한 이사들과 갈등하면서 총장을 1년 넘게 뽑지 못했기 때문이라지요. 재단 이사회가 임원 간 분쟁 상태에 있으면 교육부는 이사를 해임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하거나 행정감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상지대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껏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관님 휘하의 교육부 관료들은 몰라서 그러는 걸까요, 알면서도 그러는 걸까요.

적어도 상지대 문제에 관한 한 교육부, 나아가 장관님의 '한가한' 움직임은 이미 예견된 바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난 7월 24일, 저는 이곳 <오마이뉴스>에 '교육부장관 황우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제하의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장관님의 교육부장관 후보자 지명이 사학 교육 현장에 미칠 영향 및 파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한 글이었습니다.

사학 수호 5걸 중 하나로 선정된 황우여 장관님

'사학비리 1호'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의 총장 선임 소식에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50여 명이 총장실 앞에서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 상지대 학생들 총장실 점거 농성 돌입 '사학비리 1호'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의 총장 선임 소식에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50여 명이 총장실 앞에서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 윤명식

관련사진보기


그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장관님은 2005년 사학법 개정 파동 당시 교육위원회 전체회의 거부와 법안 상정 보이콧 등으로 직무를 유기하며 국회를 파행 시켰지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함께 나선 사학법 개정 반대 투쟁의 전면에 서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관님의 뜨거운 투쟁은 여섯 달 동안이나 이어졌지요.

당시 장관님은 박 대통령과 함께 사학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사학법인협의회·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등 관련 단체로부터 '사학 수호 5걸' 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셨습니다. 결코 그렇게 보고 싶지 않지만, 사학을 향한 장관님의 각별한 관심과, 장관님을 향한 사학 법인들의 특별한 시선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는지요.

장관님은 200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자-사학재단의) "이사회에 외부 인사를 넣는 것은 민법상 재단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나름대로의 '소신' 같은 것을 밝히신 적이 있습니다. 개방이사제를 골자로 하는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였습니다. 외부 인사로 채워지는 개방이사에 대한 반감을 그렇게 드러낸 것이 아니었는지요.

대체 누구의 뜻일까요. 장관님이 이끄는 교육부는 지금 '임원 간 분쟁' 상태인 상지대 사태에 계속 침묵하고 있습니다. 법률로 규정한 임시이사 파견이나 행정감사 등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계십니다. 혹시 이러한 현재 상황의 이면에 장관님이 의원 시절 피력한 예의 '소신'이 깔려 있다고 말하면 제 억측일까요. 사학의 공적 책무성보다 재산권이나 자율권 등을 우선시하는 장관님만의 관점과 같은 것 말입니다.

전직 국회의원 출신의 행정 관료가 지난날의 '소신'을 잊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가 아닐는지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소신'이라고 끝까지 고수할 필요는 없겠다지요. 그 '소신'이 공공성에 배치되거나,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상식'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장관님께는 각별한 법률일 게 틀림없을 사학법은 2007년 6월 임시국회에서 재개정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잘 아시지요. 친·인척 임용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위법을 저지른 재단이라도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학교 운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장관님과 같은 '사학 수호 5걸'의 뜨거운 투쟁 덕분 아니었겠는지요. 그리고 지금 그 법의 위력은, '친 사학재단' 성향이 강해 보이는 사분위조차 거부한 부적격자가 이사로 선임되고 총장에 선출된 상지대 사태로 증명되고 있다고 봅니다.

장관님, 죄송하지만 지난 번 글에서 인용한 한 누리꾼의 말을 다시 옮겨옵니다. "황우여 씨가 교육과 관련해서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은 비리 사학 수호였다"는 말입니다. 장관님께는 근거 없는 비방이나 험담으로 들리시겠지요.

지금 장관님께서는 이 나라 교육부의 수장이십니다. '비리 사학 수호' 따위의 말은 결코 들어서는 안 되는 자리지요. 일개 교사가 장관님께 작금의 '한가해' 보이는 일정을 작파하고,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상지대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기를 간곡히 요청하는 이유입니다. 장관님이 아직도 '사학 수호 5걸'일 것이라고 보지 않을 뿐더러 믿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 글로 강하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한 마디입니다.

2014년 8월 19일에 어느 사립학교 교사가 씁니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올립니다.



태그:#상지대 사태, #황우여 교육부장관, #사학 수호 5걸, #상지대, #비리 사학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