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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주말 한강둔치는 자전거 천국이 된다. 한낮의 태양이 쏟아내는 햇살과 자외선에도 아랑곳없이 속도와 강바람을 즐기는 자전거족들이 꼬리를 문다. 자전거도로를 따라 펼쳐진 도시의 강변 경치를 즐기며 신나게 페달을 밟다 보면 들려오는 헉헉~ 가뿐 숨소리마저 반갑다. 더운 여름날씨지만 이상하게 몸과 마음 모두 상쾌해진다. 강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주위 풍경들은 자전거를 타면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강의 북단과 남단엔 자전거 타기 좋은 대표적인 코스가 하나씩 있다. 북쪽으로는 월드컵공원~난지 한강공원~서울숲~뚝섬유원지로 이어지는 약 25㎞ 길이의 강변 자전거도로가 있고, 남쪽으론 여의도~서래섬~잠원지구~암사동으로 이어지는 약 25㎞의 강변 자전거도로가 있다. 둘 다 시원한 강바람을 선물하며 청량감을 만끽하게 해 자꾸만 달리고 싶게 하는 코스다. 지난 17일 한강 남단의 여의도에서 팔당호가 가까운 강동구 암사동까지 자전거 여행 겸 라이딩을 즐겼다.

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되었던 밤섬의 놀라운 부활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한강 자전거도로.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한강 자전거도로.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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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걷기 좋은 산책로, 낚시터 등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서래섬.
 유채꽃, 걷기 좋은 산책로, 낚시터 등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서래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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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여의도 지구는 텐트 등 야영장비 없이도 캠핑을 할 수 있는 강변 캠핑장, 야외무대와 풀장 등이 있어 한강 시민공원의 얼굴 마담인 곳이다. 이외에도 '물빛광장'과 아이들과 어릴 적으로 돌아가 물장구치기 좋은 작은 개울격인 '인공수로' 등 시원한 수경공간이 많다. 그 가운데 자전거 여행자에게 제일 좋은 곳은 여의도 안내센터 안에 있는 샤워장이다. 시민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샤워장이 있어서 (오전 9시~오후 8시까지) 찬물에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탔다. 

여의도를 비롯 뚝섬, 잠실(잠실도), 난지도는 한강의 대표적 하중도(河中島)였다. 하중도는 강이 오랜시간 흐르면서 모래 등의 퇴적물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생긴 섬이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300년 전 강원도를 여행하고 나서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지면 토사가 한강으로 흘러들어 한강의 깊이가 점점 얕아진다"라고 기록했다. 한강을 따라 흘러들어 온 모래와 흙은 자연 제방과 삼각주 섬을 형성했다. 한강변 지명에 섬 도(島)와 나루 진(津) 자가 많이 들어 있는 이유다.

현재 한강에서 보이는 밤섬, 노들섬, 선유도를 하중도의 전부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한강에는 뚝섬, 잠실도, 여의도, 난지도 같은 큰 섬을 비롯해 석도, 부리도, 저자도, 선유도 같은 크고 작은 10여 개의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고 한다. 광나루(광진)부터 뚝섬, 이촌, 노량진, 양화진(합정)까지 은빛 백사장으로 이어져 강(江)수욕을 즐기던 자연 휴양지였단다.

특히 한강의 새끼섬 '밤섬'은 한강 여의도 지구를 지날 적마다 눈길을 끄는 존재다. 1968년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여의도'를 개발하기 위한 골재, 모래, 흙 등을 조달하기 위해 밤섬은 폭파, 해체를 당하게 된다.

그전까지 고기잡이와 조선, 뽕나무·약초(감초) 재배나 염소 방목 등을 하며 살던 60여 세대의 주민들은 결국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고향섬이 그리워 2년에 한 번씩 서울시에 허가를 받고 밤섬에 와서 제사를 지낸다. 당시만 해도 밤섬은 한강의 해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백사장과 기암괴석의 절경이 아름다운 섬이었고, 한강에 물이 적을 때는 여의도와 백사장으로 연결돼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설레는 풍경이다.

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되었다가 되살아나고 있는 한강의 밤섬.
 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되었다가 되살아나고 있는 한강의 밤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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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경치가 보기 좋은 한남대교 다리 위 카페.
 한강의 경치가 보기 좋은 한남대교 다리 위 카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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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그렇게 여의도가 생겨났고 밤섬은 사라지고 말았다. 자연이란 정말 놀랍고 신비로운 것이, 파괴되었던 이 섬이 해가 갈수록 원래의 섬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년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지나갈 때마다 밤섬엔 두터워지는 모래톱과 강변의 갯벌이 새살이 돋아나듯 생겨난다. 원래는 하나의 섬이었다는데 폭파로 인해 두 동강 났던 섬 사이도 점점 좁아지며 하나의 섬으로 복원되고 있고... 한강의 진짜 기적은 밤섬의 부활이 아닌가 싶다.

경쾌하게 페달을 밟은 지 얼마 안 되어 만난 봄날 유채꽃으로 유명한 서래섬에서 쉬어갔다. 유채꽃은 물론 흙길을 밟을 수 있는 산책길, 낚시도 즐길 수 있는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섬이다.

두 번째로 쉬어간 한강 잠원 지구 한남대교의 다리 위 카페는 강의 장쾌한 풍경과 남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들어진 전망으로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한강다리 카페 가운데 하나다. 한강변에서 카페로 가는 승강기가 가까워 자전거 라이더를 위한 카페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문의 : 02-3780-0811)

잠원 지구를 지나 마주치는 '압구정 나들목'도 이채로운 곳이다. 한강의 다른 평범한 나들목과 달리 '그래피티'라 불리는 벽화가 담벼락을 따라 그려져 있어서다. 동네에서 강가로 이어지는 긴 나들목도 어찌 보면 동굴 같아서, 고대 동굴의 벽화나 이집트의 유적 같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인간의 본능적인 예술욕구가 느껴졌다.

백사장에 앉아 손과 발을 담글 수 있는 한강을 기원하며

그저 바라 보기만 해야 하는 관상용 강이 되버린 한강.
 그저 바라 보기만 해야 하는 관상용 강이 되버린 한강.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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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가 회상하곤 했던 1970년대의 서울 한강 피서철 풍경.
 내 아버지가 회상하곤 했던 1970년대의 서울 한강 피서철 풍경.
ⓒ 서울시 <한강의 어제와 오늘> 사진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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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잠실지구는 풍광이 좋은 자전거 드라이브 코스다. 유유히 강 위를 지나는 유람선과 도도히 흐르는 강물 건너로 병풍처럼 펼쳐진 도봉산, 북한산이 한데 어우러져 색다르고 멋들어진 도시 풍경을 그려낸다. 도서관 간행물실에서 우연히 서울시가 편찬한 <한강의 어제와 오늘(2001)> 이라는 책자를 보고 정말이지 '깜놀'한 적이 있다. '아, 내가 아는 한강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강이었단 말이야?!'

진경산수화로 이름 높은 겸재 정선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그리고 또 그려도 늘 새롭다고 예찬했다는 한강의 모습. 멀리 조선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한강은 지금 모습 같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빛'이 살아 있고 금모래, 은모래가 살랑거리는 '살아 있는 강'이었다. 내 아버지는 1970년대에도 한강의 백사장에 놀러가거나 피서를 갔었다고 회상하곤 했다. 당시 코흘리개 아기였던 나도 데리고 가서 물놀이를 했다는데 너무나 아쉽게도 기억이 안난다.

한강 개발의 일차적인 원인은 홍수와의 전쟁 때문이었다. 한강 상류에 댐이 없고, 제방이 없던 시절 물난리는 최악의 재앙이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용산, 뚝섬, 광진, 여의도, 잠실, 압구정동, 신사동, 반포, 잠원이 잠겼다. 이때 몽촌토성과 암사동 유적지가 발견됐다. 한강은 자원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에서 보았듯이 군사정권은 한강을 피란 시간 확보 대책용으로 여겼다.

1967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추진한 '한강 개발 3개년 계획'에 따라 강변을 메워 제방을 쌓았고, 제방 위에 강변도로가 건설되고, 여의도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윤중제가 건설되고, 잠실이 내륙이 됐다. 한강가에 택지 개발과 도로 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중략) 이어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대비용으로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진행된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라 2개의 수중보(잠실보와 신곡보)와 올림픽대로, 한강둔치공원이 들어섰다.
- 서울시 <한강의 어제와 오늘> 가운데

이후 두 번의 공사를 더 거쳤고 한강변은 콘크리트 호안과 도로가 됐으며 강수욕을 즐기던 모래밭은 매립용 모래로 쓰였다. 한강은 본모습을 잃고 말았고, '강물'이 주가 아니라 '강변'이 주가 되는 이상한 강이 됐다. 손이나 발을 담글 수 없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변했다.

십여 년 전 취미로 활동했던 수영 동호회에서 한강에서 매년 열렸던 핀수영(발에 길쭉한 물갈퀴를 차고 하는 수영)대회에 참가하곤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2개의 수중보로 인해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한강은 수질도 수질이지만 한 치 앞이 안보였던 물속이 어찌나 어두웠던지 무척 무서웠었다. 그나마 강물에 손과 발을 담가볼 수 있었던 한강 핀수영 대회는 얼마 후 없어졌다. 

암사동 한강변에 있는 우거진 수풀속 생태공원 탐방로는 흙길이라 더욱 걷기 좋다.
 암사동 한강변에 있는 우거진 수풀속 생태공원 탐방로는 흙길이라 더욱 걷기 좋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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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배 위에서, 자전거 위에서,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강이 아니라 손발을 담글 수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는 수변 습지와 모래톱, 백사장 풍성했던 한강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까...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한강을 바라보며 제2의 '한강의 기적'을 꿈꾸어 보았다. 1968년 여의도 개발용 골재를 채취하기 위해 폭파해 버렸던 한강의 새끼섬 밤섬이 수십 년 만에 기적처럼 스스로 살아난 것을 보면 그런 꿈과 희망이 부질없는 것만은 아닐 듯싶다.

마침내 도착한 암사동의 한강은 강가에 큰 푯말과 함께 '상수원 보호구역'이라고 써있다. 가까이에 있는 서울 시민의 식수원인 팔당호가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강변에 있는 암사 생태공원길은 수풀로 빽빽하게 우거져 어디 멀리 숲속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흙길이라 더욱 좋았다. 마침 저녁시간이 가까워 가까운 암사동 종합시장에 가서 식사를 하면서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했다. 돌아올 때 집이 멀다면 수도권 전철 8호선 암사역에서 전철을 이용하면 된다. 주말과 휴일엔 전철의 맨 앞 칸과 뒤 칸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 자전거 주요 여행 코스 ; 한강 여의도 공원 - 서래섬 - 한남대교 다리 위 카페 - 압구정 나들목 벽화 - 암사동 생태공원 - 암사동 종합시장


태그:#자전거여행, #한강 , #밤섬, #암사생태공원,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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