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무>는 여수 바다 일대를 주름잡던 안강망 어선 '전진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1990년대 말,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한 채 폐선 위기까지 몰린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 분)'는 배를 지키기 위해 밀항을 돕는 일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되면서 이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무> 포스터.

<해무> 포스터. ⓒ (주) 해무


영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작 단계부터 <해무>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영화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봉준호 감독이 기획·제작·각본에참여했고, 그가 연출한 명작 '살인의 추억' 제작에 참여한 심성보 감독이 연출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김윤석, 이희준, 한예리, 박유천, 문성근, 김상호, 유승목 등 무게감 있는 배우들의 출연으로 이 영화는 제작기간 내내 많은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13일 개봉한 <해무>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일주일여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지만 무거운 영화 분위기와 생각보다 실망한 관객들의 입소문, 그리고 경쟁작인 <명량>이 거의 모든 영화관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일일 관객수가 가파르게 줄어가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추석 전후로 이어지는 개봉작들에 밀려 곧 IPTV에서 만나보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의 평가도 많이 갈리고 있다. 과연, 영화가 어땠기에.

전진호의 선장 '철주'는 만선의 꿈을 가지고 바다로 나가는 뱃사람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타고 있는 배, 전진호다. 다른 남자와 몸을 섞고 있는 아내를 봐도 무덤덤한 그에게는여자라는 존재도 그저 배를 타다가 얻은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배의 젊은 선원 '동식(박유천 분)'의 발목이 그물에 걸려 그 날 조업을 망치게 되고, '철주'는 밀항이라는 일을 선택하게 된다. 선원의 동의는 그에게 필요하지 않다. 그는 배의 대통령이고 판사고 배를 탄 사람들의 아버지다.

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는 기관장 '완호(문성근 분)', 선장 '철주'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갑판장 '호영(김상호 분)', 돈을 밝히는 '경구(유승목 분)', 언제나 여자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는 '창욱(이희준 분)', 그리고아직 뱃사람이라고 하기엔 순박하고 젊은 선원 '동식'이 일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캐릭터 설정이 매우 잘 되었다고 느꼈다. 뱃사람들 특유의 감성이 영화 전체에 걸쳐 곳곳에 깔려있었고 등장인물들이 그것들을 고스란히 전달해 낸다. 각본과 캐스팅의 조화가 그만큼 훌륭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옥에 티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던 박유천의 출연은 오히려 영화의 한 축을 훌륭하게 지탱하며 그러한 예상이 기우였음을 보여줬다.

이야기의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특징을 잡아주는 영화의 전반부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다. 배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와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기까지의 긴장감이 밀도 있게 스크린에 담겨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는 잔인하고 소름 돋는 이야기를 굉장히 담담하게 보여준다.

'바다 위에 떠있는 배'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감독의 취향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마더>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 담담했던 분위기가 깨져버리고 굉장히 혼란스러워진다.

막판에는 이 영화가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격렬해진다. 마치 한 영화를 두 세 사람이 연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감정의 흐름이 튀면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유치하게 느끼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작년 개봉작 중 <숨바꼭질>의 전개가 이와 비슷했다. 초중반까지 이어지던 소름 끼치고 조용했던 긴장감이 후반부에서는 급격한 격렬함으로 변하는데 그 순간 영화에 대한 집중이 깨져버렸던 기억이 있다. 유사하게 이 영화 <해무>에서도 감정의 흐트러짐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집중을 깨버렸고, 그렇게되면서 도입부에서 '동식'의 발이 그물에 걸린 일이나 밀항자들이 배를 옮겨 타는 과정에서 '철주'가 했던 "재수없게 여자를 배에 태워?" 같은 대사가 결말을 암시하는 뻔한 클리셰라고 느끼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또한, 배우 김윤석의 이미지 소비가 가속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왼손으로 도끼 등의 무기를 들고 있는 김윤석의 사진을 얼핏본다면 그 영화의 제목을 쉽게 유추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의 연기나 무게감은 이 영화에서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고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음은 분명 하나 그의 그런 이미지가 반복된다고 느낀 관객들도 분명 많을 것이고, 그로 인해 다른 캐릭터들마저 평면적으로만 보였을 수도 있겠다.

한 예로, 그가 시체들을 굉장히 담담하게 무표정으로 처리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철주'라는 새로운 캐릭터 대신 <황해>의 '면정학'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해무> '철주'역의 김윤석.

<해무> '철주'역의 김윤석. ⓒ (주) 해무


뱃사람들에게 '해무'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다. 그들에게 '홍매(한예리 분)'는 전진호를 전진하지 못하게 막는 해무였고, 집에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 그녀를 없애려 했지만, '동식'에게 그녀는 해무가 아닌 햇살이었다.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동식'과 '홍매'가 나누는 사랑(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인간'이 떠올랐다)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뱃사람들에게 내리는 햇살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의 햇살을 가리려는 '철주'가 '동식'에게는 해무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해무가 걷히고 해가 뜨면서 '동식'도 눈을 떴지만, '홍매'는 바다를 덮었던 안개처럼 사라졌다. 결국 그에게도 '홍매'는 해무로 남게 된다. 이것이이 영화의 제목이 왜 <해무>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생각한다.

<해무>는 영화를보고 난 직후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생각나게 하는 영화인 것 같다. 무겁고, 비린내가 가득하며, 처절하기까지 하다. 몇몇 아쉬운 점이 있음은 분명하나 그것을 넘어서는 울림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평가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고, 가장 단순하게 재미가 있고없고를 따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 있어도 또 다시 보는 것이 꺼려지는 영화가 있고, 처음 볼 때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또 한 번 봤을 때 더 깊게 다가오는 영화가 있다. 영화 <해무>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가 될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관람하는 것을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다.

 <해무> 서로의 손을 잡으려는 '동식'과 '홍매'.

<해무> 서로의 손을 잡으려는 '동식'과 '홍매'. ⓒ (주) 해무



해무 김윤석 문성근 박유천 한예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