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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도청항 입구의 등대가 평화롭게 보인다.
 청산도 도청항 입구의 등대가 평화롭게 보인다.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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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던 곳, 청산도. 반드시 다녀와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비우기 위해 지난 14일 완도항으로 출발하였다. 도착할 때까지 아침부터 내리던 가느다란 빗줄기는 하염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청산도행 페리를 타고 가는 내내 희끗 무리한 바다풍경은 계속되었지만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음일까? 배가 청산도 도청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비가 멈추고 유난히 푸르다는 청산도의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부녀와 동호가 진도아리랑을 신명나게 부르던 장소이며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은 봄의 왈츠를 촬영했던 곳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부녀와 동호가 진도아리랑을 신명나게 부르던 장소이며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은 봄의 왈츠를 촬영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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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영화 서편제(임권택 감독)의 무대가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 펼쳐지는 공간적 배경은 전라도 보성땅 어디쯤 되겠지만 서편제 소리가 불려지는 남도땅 어딘들 어떠랴?

남도의 한과 풍광을 서정적 필치로 그려내는 이청준이 197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서편제'는 소리꾼 아버지와 배다른 의붓 남매 사이에 얽힌 소리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편제길 바로 옆에 위치한 당리마을 신당으로 매년 정월에 제사를 모신다.
 서편제길 바로 옆에 위치한 당리마을 신당으로 매년 정월에 제사를 모신다.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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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의 줄거리는 어머니의 불륜으로 알게 된 의붓 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호는 어느날 아버지가 데려온 수양 딸 송화와 함께 소리를 배운다. 이들은 전혀 남남이면서 오누이가 되고 고수와 소리꾼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판소리의 퇴락과 함께 동호는 집을 뛰쳐나가고, 그 뒤를 따라 갈까 두려워한 아버지는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세월이 흘러 송화를 찾아 나선 동호는 어느 시골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송화를 발견하게 되고 그날 밤 오누이는 밤새 판소리를 하며 그동안의 한을 푼다.

청산면 도청리에 실존하는 언양김씨의 초분이다. 일종의 풀무덤으로 섬지역에서 행해지던 장례풍습이며 시신 또는 관을 땅위에 올려 놓은 뒤 짚이나 풀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3~5년후 남은 뼈를 수습하여 땅에 묻는 무덤을 말한다. 이 초분 바로 옆에는 언양김씨가 죽기 전에 본인의 묘역을 조성해 놓았다.
 청산면 도청리에 실존하는 언양김씨의 초분이다. 일종의 풀무덤으로 섬지역에서 행해지던 장례풍습이며 시신 또는 관을 땅위에 올려 놓은 뒤 짚이나 풀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3~5년후 남은 뼈를 수습하여 땅에 묻는 무덤을 말한다. 이 초분 바로 옆에는 언양김씨가 죽기 전에 본인의 묘역을 조성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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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편제의 클라이막스는 소리꾼 부녀와 동호가 이곳 서편제 길에서 5~6분정도 롱샷으로 진도 아리랑을 신명나게 부르며 화면을 빠져 나가는 장면일 것이다. 청산도의 서편제 길은 정감있게 놓인 돌담 사이의 황톳길 너머로 푸르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배경을 만들고 있으니 부드러우면서도 구성지고 애절한 서편제 소리와 어우러짐이 그만인 것이다.

서편제의 촬영 무대가 되면서 유명해진 청산도의 진면목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호]로 지정된 '구들장 논'일 것이다. 청산도 주변 바다는 수심이 너무 깊어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은 전체 인구(1360세대, 2550명)의 약20%에 불과하며 80%의 섬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며 삶을 이어 간다.

유난히 돌이 많고 들판다운 논이 별로 없는 청산도에서 사람들은 가파른 산비탈에 마치 구들장을 놓듯 돌을 쌓아 먼저 바닥을 만든 뒤, 그 위에 다시 흙을 부어 다져서 논을 만들었다. 척박한 땅을 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농토를 만들면서 살아온 청산도 사람들의 지혜가 묻어나는 삶의 유산이 아닌가 싶다.

구들장논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벼를 새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세우려는 허수아비들
 구들장논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벼를 새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세우려는 허수아비들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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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의 돌들은 구들장 논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마을의 풍경도 멋스럽고 독특하게 만들어 놓았다. 상서리는 물론 여러 마을에서 튼튼하게 쌓아 올린 돌담은 오랜 시간이 내려 앉아 그 자체로 청산도만의 멋스러움을 연출하고 있다. 층층이 쌓아올린 돌담은 소박하게 지어진 농가와 조화를 이루며 포근한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느릿느릿 살아가는 삶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청산도 상서리 돌담길 마을의 돌담
 청산도 상서리 돌담길 마을의 돌담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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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3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번성했던 청산도 고등어 잡이는 도청항을 끼고 있는 안통길에 청산파시를 이뤘다고 한다. 보통 선단(10척 정도의 배가 함께 조업)을 꾸려 고등어 잡이를 했는데 10여개 선단이 들어와 조업을 하면서 하루 20000~3000여 명의 어부들이 유입되었으니 안통길에서는 약50여개의 점포가 성업을 이루며 번성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쇠락해지고 요즘에는 전복양식과 삼치잡이로 어업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참치잡이 배들이 조업을 끝내고 도청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이며 대나무의 반영은 느리게 살아도 평화롭고 행복함을 드러내는 것 같다.
 참치잡이 배들이 조업을 끝내고 도청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이며 대나무의 반영은 느리게 살아도 평화롭고 행복함을 드러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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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양식은 청산도 전체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삼치잡이는 30여년만에 전통적인 창대발이 방식을 재현하여 삼치를 잡아 올리는 것이다. 배의 중심에 긴 대나무를 두 개 세우고 대나무 끝에 낚시 줄을 메달아 배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삼치를 낚는다고 한다. 청산도가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들을 하나 둘 찾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섬사람들의 새로운 도전이 되는 것 같다.

범바위-권덕리에서 청계리로 향하는 길을 오르면 만날 수 있으며 청산도의 푸른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서도, 거문도,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범바위-권덕리에서 청계리로 향하는 길을 오르면 만날 수 있으며 청산도의 푸른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서도, 거문도,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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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걷기 열풍까지 더해져 청산도에는 11개 코스, 42.195㎞에 이르는 슬로길이 만들어 졌다. 섬을 구석구석 크게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섬의 굴곡을 따라 들어가고 나가는 바다가 아늑해 섬에서 바다로 물이 뻗어 나간 듯 하고 작은 섬이면서도 산세가 제법 높고 낮기가 반복되고 있어 눈맛이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제법 알려진 걷기 길 가운데서 꼭 걸어봐야 할 길을 꼽으라면 단연 으뜸으로 청산도 슬로길을 두고 싶다.

청산도를 처음 찾은 우리 일행들에게 2박3일동안 청산도 구석구석을 안내해주신 사진작가 김광섭씨가 5년여 동안 청산도를 사진으로 기록하여 전시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장소는 (구)청산면사무소 건물.
 청산도를 처음 찾은 우리 일행들에게 2박3일동안 청산도 구석구석을 안내해주신 사진작가 김광섭씨가 5년여 동안 청산도를 사진으로 기록하여 전시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장소는 (구)청산면사무소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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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이 일상화된 청산도 사람들은 도시를 동경할지도 모르지만 '빠름'에 젖어 있는 도시사람들은 청산도의 논과 밭 사이 길을 걷다가 시원스레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마주치면 가슴이 확 뚤리는 장쾌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청산도 슬로길을 걷는 동안은 '빠름'을 잠시 내려놓고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느림'속으로 빠져드는 여유를 갖고 싶음은 나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태그:#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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