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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폭우로 침수됐던 부산 연산동에서 주민들이 열려진 맨홀 뚜껑 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빗물이 하수관으로 역류하면서 일대 주택과 상가가 대부분 침수됐다.
 25일 오후 폭우로 침수됐던 부산 연산동에서 주민들이 열려진 맨홀 뚜껑 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빗물이 하수관으로 역류하면서 일대 주택과 상가가 대부분 침수됐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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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시간당 최고 130mm의 폭우가 내리자 부산 도심은 물바다가 됐다. 단 두 시간의 집중호우에 국제도시를 자처하던 부산은 5명 사망, 1387건의 침수피해, 51건의 도로붕괴 및 침하 등 1500건이 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날 역류하는 하수구와 범람하는 하천, 밀려드는 성난 물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건 시민들만이 아니었다. 통합안전을 책임지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한 부산시 재난안전대책본부도 허둥지둥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부산시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건 오후 1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지만 서병수 부산시장이 실·국장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주재한 건 5시간 뒤인 오후 6시였다. 그 사이 벌써 부산에서만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선진국 수준의 재난대응 능력을 키우겠다던 서 시장의 취임과 함께 출범한 경찰·소방·해경·군 상시 근무시스템인 통합안전협력팀이 있었지만 상황 파악에는 어두웠다. 폭우로 생겨난 급류가 구포동 양덕여자중학교로 들이닥치던 순간에도 재난 담당 부서 관계자는 현장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구청 관할"이라며 "우리도 알지 못한다"고 답할 뿐이었다.

물이 차오르는데 "대기인원 70명"...먹통된 긴급전화

지난달 28일 출범한 부산시 통합재난관리위원회는 민·관·군의 통합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로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정작 재난 앞에서 위원회는 통합과 재난관리 모두 실패했다.
 지난달 28일 출범한 부산시 통합재난관리위원회는 민·관·군의 통합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로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정작 재난 앞에서 위원회는 통합과 재난관리 모두 실패했다.
ⓒ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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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신고 전화에 112와 119와 같은 긴급 전화는 먹통이 됐다. 평소 11회선으로 긴급전화를 받던 부산소방본부는 이날 19회선을 급하게 늘렸지만 오후 2시부터 자정까지 밀려든 6000건의 전화를 견뎌내기에는 무리였다. 경찰은 이마저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16회선만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시각 물이 차오르는 지하도 안에서 수없이 119와 112를 눌렀던 할머니와 손녀는 "70명이 대기중"이라는 ARS 멘트만 듣다 세상을 떠나야 했다. 물살에 휩쓸려 가다 숨진 여성 역시 이를 본 시민들이 119에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건 통화 연결이 어렵다는 기계음의 반복이었다.

결국 어렵게 연결된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건 1시간이 지난 뒤였고 여성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양대 기관 모두 통화량이 폭주하다 보니 신고내용과 사고 진행 상황을 함께 들을 수 있도록 구축한 112 공청시스템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뒤늦게 부산시와 경찰, 소방본부 등은 공조체계를 개선하고 인력과 장비를 보강하겠다는 계획을 다시 내놓았지만 늘 나오던 대책의 재탕을 받아보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대표적인 예는 소방방재청의 백업센터 구축 계획이다.

28일 소방방재청은 119로 폭주하는 전화를 대비한 백업센터 구축 계획을 대책으로 내놨다. 약 60억 원을 쏟아 부어 통화가 특정 시·도로 밀려들면 백업센터가 이를 대신 맡아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계획이 잡힌 건 3년 전 서울 우면산 산사태를 겪고 나서였다. 하지만 백업센터가 완성되기까지 아직도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 번에 끝내는 미국과 영국... 한국은 주요 긴급전화만 13개

한국의 긴급신고 전화가 다원화된 반면 미국과 캐나다는 911로 일원화되어있다. 긴급상황 시 911로 전화를 걸면 공공안전대응센터(PSAP)의 통신요원이 이를 받아 각 기관으로 전달한다. 사진은 미국 뉴욕의 공공안전대응센터.
 한국의 긴급신고 전화가 다원화된 반면 미국과 캐나다는 911로 일원화되어있다. 긴급상황 시 911로 전화를 걸면 공공안전대응센터(PSAP)의 통신요원이 이를 받아 각 기관으로 전달한다. 사진은 미국 뉴욕의 공공안전대응센터.
ⓒ 뉴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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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긴급 신고전화 일원화도 아직 먼나라 이야기다. 미국은 범죄와 화재, 각종 사고, 테러까지 911이면 통하게 되어있다. 시민들이 사안을 알아서 판단해 적합한 기관에 신고하는 게 아니라 전문상담요원이 모든 신고를 접수해 이를 경찰, 소방, 긴급기관에 전달한다. 영국도 999번 하나면 범죄와 화재, 구급 신고가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긴급전화만 13개로 나뉘어 있다.

정부도 세월호 참사 이후 긴급전화에 대한 통합·단일화 요구가 이어지면서 '긴급전화 통합서비스'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부처 간의 이견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어떤 번호로 합칠지, 몇 개를 합칠지는 여전히 정부 내에서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부처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전문성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필요한 긴급신고 통합 이전이라도 탄력적 운영을 통해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자연재해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만큼 시기에 맞춰 하루 이틀 전에 회선을 늘리는 등의 탄력적 방식을 도입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 분류하면 훨씬 효과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 조언했다.

류 교수는 "통합 신고망을 갖추기가 어려운 이유는 부처들이 각자 목소리를 내려하기 때문"이라면서 "각 부처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양보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그:#긴급전화,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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