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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지 않는 강> 표지
 <흐르지 않는 강> 표지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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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에게 아까운 국토

지난달 가장 무더운 중복을 맞아 남설악 계곡에서 1박 2일 야영을 했다. 그날 밤, 아름다운 계곡에서 다섯 사람이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가장 연장인 일산에 사는 여아무개 선생은 올해 79 세로 지난 삶의 경력이 다채롭고 화려했다. 그분은 젊은날 공직에 있을 때 이런저런 일로 해외출장을 자주 다녔고, 공직을 떠난 이후에도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날밤 그 분은 오대양 6대주를 누빈 이야기를 하시면서 결론은 우리나라처럼 산수가 아름답고 아담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당신의 결론을 다음 한 마디로 요약했다.

"우리 국토는 솔직히 우리 국민에게는 아깝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우물이 넓은지 좁은지 모르고 산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좋은지 나쁜지 모른 채 살아간다. 나도 그렇게 50여 년을 우물인 개구리로 살았다. 남의 얘기만 듣고 남의 나라가 마냥 좋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유럽, 미국, 러시아와 이웃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을 돌아본 후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결코, 이 세상에 천혜의 낙원은 없고, 낙원은 거기에 사는 사람이 만든다는 것과 우리나라는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점이다.

그 으뜸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수가 매우 아름답고 기후가 사람 살기에 알맞다는  점이다. 스위스가 아름다워보였지만, 국토 대부분은 산지로 평야가 적은데다가 산세가 험악하고 바다가 없으며, 지하 자원이 빈약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 소렌토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내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동해안이나 제주 바다보다 훨씬 못했다.

경북 상주 2009
 경북 상주 2009
ⓒ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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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모래의 강'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갈변 살자

이 시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로, 가수 정훈희씨가 불러 히트한 노래의 가사이기도 하다. 시의 운율이 경쾌한데다가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표현이 잘 어울러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이 시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일찍이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영국 성공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그는 1894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당신의 책에서 서울의 한강을 '금빛 모래의 강'으로 묘사하면서, 그 아름다움이 '천국의 향기와 같았다'고 탄복했다. 이마도 영국의 흐린 템스 강을 보다가 맑은 한강을 보니까, 그런 묘사와 경탄이 나왔으리라.

나는 유소년 시절을 낙동강 강가에서 자랐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소를 몰고 낙동강으로 가서 강둑에서 소를 뜯긴 뒤, 날씨가 무더우면 소년들은 자기가 몰고 온 소를 샛강으로 몰았다. 소들은 헤엄을 곧잘 쳤다. 그러면 소년들은 소꼬리를 잡거나 아니면 소등을 타고 천연의 수상스키를 즐겼다.

우리들은 그 놀이마저도 싫증이 나면 발가벗고 낙동강으로 뛰어들어 피라미를 잡아 자기 고무신에 넣으면서 서로 많이 잡는 시합도 했고, 갯밭의 감자를 서리하여 모래톱에서 구워먹기도 했다. 그 모래들은 금빛으로, 낙동강 역시 '금빛 모래의 강'이었다. 곧 우리나라의 모든 강들은 다 그랬다.

전북 임실 2009
 전북 임실 2009
ⓒ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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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2014년 8월,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증언, 4대강 개발사업 <흐르지 않는 강>'의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분노했다. 나는 4대강 개발론자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자 책장을 덮고 이튿날 아침 다시 책을 펴고 찬찬히 읽어보았다.

예로부터 강은 생명의 젖줄이라고 했다. 모든 문명은 강에서 비롯되었으며, 강은 흐르며 넘치며 풍요를 기약해 왔다. 이제 그 강은 흐르지 못하는 강이 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4대강 개발사진작업을 해 온 작가 김산은 아마 강의 울음을 들은 것 같다. 사진에 나타난 그것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개발독재시대에 잉태된 인간의 욕망은 드디어 자연에까지 미쳐 4대강마저 무참히 할퀴고 찢어 놓았다. 가공할 폭력이며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김산의 사진은 4대강 사업에 관한 기록이자 증언이다. 수천 년 면면히 흘러온 4대강에 대한 최후의 변론이다.
 - <흐르지 않는 강> 5쪽 '이 책을 펴내며'

작가는 4대강 개발사업 착수 직전인 2009년부터 이 사업이 마무리된 2012년 전후까지 4대강을 촬영해 온 98컷을 이 책에 수록하고 있다. 작가는 무분별한 개발의 기록을 남기고자 4대강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강 최상류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산골 작은 개울에서 드넓은 평야까지 그는 곧 사라지게 될 강의 모습을 그는 후세에 남기고자 소명감을 가지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경기 여주 강천보 2010
 경기 여주 강천보 2010
ⓒ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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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속았다

이 책 제1부 '흐르던 강'은 개발 이전 '금빛 모래의 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국토에 면면히 흐르던 자연 그대로의 강이다.

제2부 '수난의 강'은 끊임없는 트럭 행렬, 포클레인, 모래, 준설 등 개발사업으로 찢기고 훼손되어 가는 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죽어가는 강을 위해 작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그래서 후일 증언자가 되고, 사료로 남기는 것뿐이었다.

개발론자들은 4대강을 파헤치고자 군사작전처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강에는 불을 밝혔고, 트럭과 포클레인은 물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하여 강변 농경지에는 거대한 모래 산이 수 없이 생겼다. 그러자 사람들은 강가를 떠나야 했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환경운동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십자가를 세웠고, 목청을 높였건만 강을 죽이는 그 광란만은 막을 수는 없었다. 작가는 개발을 향한 인간의 탐욕에 발기발기 찢겨나가는 강의 끔찍한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경기 여주 2010
 경기 여주 2010
ⓒ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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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의 흐름을 막는 각종 설치물들과 그로 인해 발생한 오염과 녹조 현상을 기록한 사진들로 엮었다. 흐르지 않는 강은 썩게 마련으로, 악취를 풍기는, 날로 번져가는 녹조떼에서  뭔가 하늘의 벌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엄청 발전할 것으로 홍보했다. 홍수도 가뭄도 없어지고 수질문제도 모두 해결될 것이며, 강가에서 수영도 하고 요트도 타면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되어, 이를 기반으로 선진국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 최고 권력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의 생각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시작되었고, 불과 2년 만에 완공되었다. 그 결과는 지금 눈앞에 보는 그대로이다. 
- <흐르지 않는 강> 5쪽 작가의 말에서

경남 합천, 2012
 경남 합천, 2012
ⓒ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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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자망(逆天者亡)

사진들을 훑어보다 보니 이 사진들을 찍으며 사진가가 느꼈을 아픔이 전해진다. 반짝이는 백사장을 가진 강둑 위로 나란히 꽂힌 노랗고 빨간 깃발에 쓰인 숫자들, 눈 어두운 나에게는 무의미한 숫자이지만, 그에게는 거기까지 모든 생명체가 물에 잠긴다는 묵시록의 예언으로 보였을 것이다. 너무나 아팠을 텐데 그는 눈을 돌리지 않고 강이 잘리고 잠기고 죽어가는 것을 마지막까지 기록했다.

이 사진들은 누구보다 강을 사랑했던 한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강을 향해 바친 눈물의 고해성사다. 이 사진들은 또한 고발이다. 눈 밝은 그가 사진으로 남겨놓은 이 증거들은 곧 강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자들과 그들이 이런 짓을 하도록 허용한 우리 모두의 어리석음에 대한 공소장이다. 
- 최승호(뉴스타파 앵커, 전 MBC 피디수첩 피디)

나는 이 책을 덮자 맹자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천하가 어지러워 질서를 잃으면 소국은 대국의 지배를 받고, 약국은 강국의 지배를 받는다. 자연의 도리를 따르는 자는 유지되고, 이를 어기는 자는 망할 것이다.
- <맹자> '이루장구 상편'에서

그 아름답던 강과 금빛 모래톱이 녹조로 덮이는 강,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래톱을 보면서 "우리 국토는 솔직히 우리 국민에게는 아깝습니다"는 여 선생의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그들은 갑작스럽게 천문학적 돈을 퍼부어가며 4대강을 개발해야 했나? 우선 하나의 강만 개발해 본 뒤, 다음 강을 개발하면 안 되는 그 무엇이라도 있었나? 개발책임자를 청문회에라도 불러 그 변이라도 한번 시원하게 들어봤으면 좋겠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벌을 하늘은 어떻게 내리는지? 우리 세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 닥칠 하늘의 재앙이 마냥 두렵기만 하다.

경기 여주 이포보, 2010
 경기 여주 이포보, 2010
ⓒ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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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산 사진집 / 눈빛출판사 / 200쪽 / 값 25,000원



흐르지 않는 강 - 증언, 4대강 개발사업

김산 지음, 눈빛(2014)


태그:#4대강, #<흐르지 않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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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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