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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배를 끌고 바다로 향합니다. 배는 장난감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작은 배입니다. 다섯 꼬맹이가 귀엽게 생긴 작은 배에 오릅니다. 배에 오른 아이들이 바다를 훑어봅니다. 아이들 시선이 한곳에 멈춥니다. 곧이어 바람이 불어옵니다. 돛에 바람이 가득 담깁니다. 돛과 연결된 줄이 팽팽해집니다.

갑자기 배가 빠른 속도로 먼바다를 향해 미끄러집니다. 드디어 항해가 시작됩니다. 아이들이 '딩기요트'(엔진과 선실이 없는 작은 요트)를 탑니다. 제법 자세가 나옵니다. 육지에 선 요트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지릅니다.

요트의 돛은 비행기 날개처럼 생겼습니다.
▲ 줄 요트의 돛은 비행기 날개처럼 생겼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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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빙", "태킹"

제 귀엔 생소한 단어들입니다. 저로서는 알길 없는 말들, 아이들은 곧잘 알아듣습니다. 다섯 아이들이 선생님 명령에 맞춰 이리저리 자세를 바꿉니다. 기특하고 신기합니다. 파란 바다 위에 흰 돛 다섯 개가 떠 있습니다. 흰 돛이 한 방향으로 질서 있게 미끄러집니다. 그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요트를 한참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물에 빠질 듯 등을 수면 위에 내려놓습니다. 바람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요트 방향을 바꿀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 명령에 따라 재빨리 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돛대 밑을 지나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거침없고 단호합니다.아이들은 바람 부는 방향을 머릿속에 그립니다. 바람에 맞춰 몸을 움직입니다. 그 모습, 영락없는 뱃사람입니다.

영락없는 뱃사람...요트타는 아이들

세 아들이 요트 타는 경험을 통해 넓고 깊은 바다로 나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 걱정 세 아들이 요트 타는 경험을 통해 넓고 깊은 바다로 나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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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10시, 세 아들 앞세워 여수 소호요트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그날은 '요트 타는 날'이었습니다. 소호요트경기장은 세 아들과 가끔 찾는 곳입니다. 아들들과 저는 이곳 찾을 때마다 요트를 눈으로만 실컷 구경하고 돌아섰습니다. 날렵한 배(船)보면 배(腹)가 조금 아프기도 했습니다.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났습니다. 크기도 다양한 요트를 보며 다짐했습니다. 언젠가는 푸른 바다를 향해 돛을 세우리라고요.

두루뭉술했던 제 꿈, 한 달 전 우연히 현실이 됐습니다. 소호요트경기장에서 아내가 요트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요트 타는 법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죠. 아내의 요청을 선생님은 흔쾌히 받아 주셨고요. 그날 마음 급한 둘째와 막내는 요트맛을 살짝 보고 직접 오기까지 했답니다.

아내가 선생님 만나고 온 날 제 꿈은 현실이 됐습니다. 세 아들이 요트를 배우는 동안 선생님과 허물이 없어지면 저도 요트를 배워야지요. 하지만 제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며칠 지나도 요트선생님 전화는 없었습니다. 손꼽아 기다린 요트선생님 전화, 딱 한 달 만에 왔습니다. 아쉬운 마음 삭이며 요트에 대한 생각 지우고 있을 즈음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방학 동안 훈련 들어간 요트부를 가르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답니다. 숨 돌릴 시간 생겼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태풍이 불어왔고요.

하여, 전화 연락이 늦었답니다. 선생님 말씀 백번 이해합니다. 저는 속으로 연락 주신 일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절을 했습니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려 맞이한 날입니다. 소호요트장 가는 길, 하늘을 쳐다봅니다. 높은 하늘에 구름이 옅게 끼었습니다. 바람이 조금 약합니다.

요트타기 썩 좋은 날은 아닙니다. 요트는 바람 부는 날 타야 제 맛이거든요. 요트는 돛에 바람을 실컷 품습니다. 그리고 이때다 싶으면 품은 바람을 버리죠. 이런 동작을 반복하면서 물 위를 달리는 운동이 요트경기입니다. 그야말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즐기는 운동입니다.

바람 거슬러 항해하는 요트의 비밀

초보자들은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훈련을 시킵니다. 어느 정도 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바람에 대한 적응력이 생기면 아이들을 좀 더  깊은 바다로 이끕니다.
▲ 출항 초보자들은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훈련을 시킵니다. 어느 정도 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바람에 대한 적응력이 생기면 아이들을 좀 더 깊은 바다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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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죠. 요트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람을 거스르며 나아가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옛날 돛단배와 많이 다르죠. 두 배 모두 바람의 힘을 이용하지만 돛단배는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반면, 요트는 돛단배보다 그 능력이 훨씬 뛰어나죠.

요트가 바람을 거스르는 능력은 물 밑으로 내린 넓은 판 때문입니다. 요트 맨 밑바닥 중앙에 세로로 길게 구멍을 내는데 이를 킬(keel)이라 부르고 킬에 넣는 널따란 판을 보드(board)라고 합니다. 이 보드는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이 판이 배가 옆으로 밀리는 것을 막아줍니다. 또 한 가지, 요트의 돛은 비행기 날개처럼 생겼습니다. 요트는 맞바람 부는 쪽 좌우 45도를 제외하고 모든 방향으로 항해가 가능합니다. 바람을 거슬러 나갈 때는 지그재그로 움직이죠. 돛이 약간 휘어졌기 때문에 비행기 날개에서 양력(베르누이의 정리)이 생기는 원리와 비슷한 힘이 발생합니다.

이런 다양한 장치들 때문에 요트는 해양 스포츠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선생님 전화받고 신나게 소호요트경기장으로 달려간 날, 요트부 아이들과 세 아들이 탄 배는 '딩기요트'입니다. 요트부 꼬맹이들은 옵티미스트(Optimist)급 딩기요트를 탔습니다. 딩기요트는 작고 가볍죠.

때문에 사람들은 승용차에 싣고 다니다 적당한 바다가 보이면 항해를 시작합니다. 귀여운 딩기요트 훈련이 모두 끝났습니다. 선생님이 세 아들에게 요트에 오르랍니다.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구명조끼 잘 갖춰 입은 세 아들, 검푸른 바다 보더니 마음속이 오그라듭니다. 세 아들 얼굴이 굳어집니다. 요트선생님이 제게 말을 건넵니다.

구명조끼 잘 갖춰 입은 아들, 검푸른 바다 보더니 마음속이 오그라듭니다.
▲ 넓은 바다 구명조끼 잘 갖춰 입은 아들, 검푸른 바다 보더니 마음속이 오그라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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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처음 요트를 접하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일이 물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초보자들은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훈련을 시키죠. 어느 정도 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바람에 대한 적응력이 생기면 아이들을 좀 더 깊은 바다로 이끕니다."

아이들은 육지와 가까운 곳에서 요트를 타는데도 바다가 두렵습니다. 수영장에서는 오두방정 떨던 아이들이 아니네요. 바다에 나오니 사족을 못 씁니다. 아이들이 마음속에 품은 두려움, 이겨내야지요. 나를 향해 달려오는 바람 느끼며 돛을 움직이는 일, 두려움을 넘어서 매력적인 일이니까요.

세 아들은 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습니다. 아이들 몸과 마음이 바람과 바다 그리고 요트에 곧 적응합니다. 세 아들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요트가 점점 흥미로워집니다. 그렇게 바람 부는 날 신나게 요트를 탔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시 같습니다.

요트 타는 일, 세상 이치와 참 비슷합니다

요트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람을 거스르며 나아가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옛날 돛단배와 많이 다르죠.
▲ 딩기요트 요트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람을 거스르며 나아가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옛날 돛단배와 많이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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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요트 잘 타려면 "바람을 봐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바람도 보일까요? 선생님은 바람이 보인답니다. 또, "바람을 잘 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려줬습니다. 돛에 품고 있는 바람보다 더 큰 바람이 보이면 재빨리 돛에 품은 바람을 버려야 한답니다. 때를 놓치면 배가 뒤집히니까요.

선생님 말씀 들으니, 요트 타는 일이 세상살이와 참 비슷합니다. 욕심껏 바람 많이 품으면 요트가 바다에 처박히듯이 욕심껏 물질을 품으면 삶도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니까요. 문득 창밖으로 스치는 바다를 봅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간직한 바다, 바라만 봐도 지독히 원망스럽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손짓을 합니다. 사람들은 생명 넘치는 바다를 외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어부는 오늘도 변함없이 고기 잡으러 바다로 나가고, 사람들은 바다가 만든 절경 구경하려고 유람선을 탑니다. 바다는 여전히 바쁩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죽음 넘실대는 바다에 나갑니다.

아이들이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요트가 좋은 구실을 하겠지요? 세 아들이 그날 경험을 통해 넓고 깊은 바다로 나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바람 부는 날이면 요트가 생각납니다.  

저도 언젠가는 푸른 바다 향해 돛을 세우리라 마음먹습니다.
▲ 출항 준비 저도 언젠가는 푸른 바다 향해 돛을 세우리라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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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요트, #딩기요트, #여수요트학교, #소호요트경기장, #도원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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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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