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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약 200여 명의 통합진보당 중앙위원, 지역위원장, 열성당원들이 공주의 한 유스호스텔에 모여 '진보당의 평가와 전망'의 주제로 당 통합과정부터 오늘날까지 진지한 평가와 향후 진로를 토론하였다. 오랜 기간 쌓인 차이나 문제의식이 한꺼번에 모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이 토론회는 이제 시작을 의미할 뿐 완성된 형태가 아님은 물론이다. '진보의 단결', '노동중심의 진보대통합'이라는 목표에 대한 일정한 공감도 있었다. 나는 더 치열하게 토론하고 모색하면 의미 있는 방향이 나오리라 믿는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 숱하게 겪었던 어떤 어려움도 추억으로 삼고 싶을 만큼 힘든 시절을 살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아주 미미한 지지율로 버티고 있다. 그나마 헌신적인 당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정당의 생명이 지지율이라고 본다면 그 생명력이 많이 약해져 있는 것이다. 자랑스러웠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도 없고 "너희는 비록 지금 작지만 진심만은 믿어준다"던 대중적 신뢰도 약해졌다.

더욱이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심판 판결에 따라 '당 사형선고'를 받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천형을 당한 이들에게 퍼부어지는 주변의 손가락질을 묵묵히 지켜보며 후일을 기약하는 투지로 버티고 있다.

이 고통을 뚫고 다시 시작하고, 진보정당을 굳건하게 세워야 한다. 이것은 이 땅에서 진보운동 하는 모든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과제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려면 과거를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반성하며 고쳐야 하고 잘한 것은 올바르게 계승해야 한다.

나는 통합진보당이 '성찰하는 진보'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향후 진보의 단결을 실현하고, 많은 진보세력과 다시 함께하려면 과거의 잘못된 태도, 관행, 노선상의 오류를 모두 깨놓고 토론하고 또 비판을 수용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점에도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성찰 이전에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중요한 두 가지를 이야기 하고 싶다. 통합진보당에게 씌워진 두 가지 천형 말이다.

그들은 정말 '경선부정의 주범'이었나

첫째는 소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으로 인한 당 분열사태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있었던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 과거의 관행이든, 조직적이든 여러 형태의 선거부정이 있었다. 이것은 곧 당의 분당으로 치닫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그냥 덮어두고 없었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당시 조준호 위원장을 필두로 당 진상조사위는 너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저지른 '당의 총체적 부정'으로 규정하였고 이에 당 지도부는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전원사퇴 권고를 결정한 바 있다.

당시 나는 이 결정에 동의를 보낸 바 있다. 온 국민이 보고 있는 사안이고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아주 고강도의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작동한 것이다. 더욱이 당 주류로서 오랫동안 당을 이끌고 온 사람들은 억울해도 스스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보았다. 정치 도의적 책임이라고 할까? 그러나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을 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치 도의적 책임", 혹은 "정치력 발휘"란 말도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정치 도의적 책임이란 말 그대로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지 부정선거의 주범이라는 말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상황은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한쪽을 완전히 '천하의 나쁜 놈'으로 몰아세우며 죽으라고 하니,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모든 '총체적 부정'의 주범으로 몰려 악의 상징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리라. 결국 이 과정에서 당내 심각한 폭력사태를 빚었고, 한 당원이 자결하는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제의 진상은 그렇게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던 검찰에 의해 시시비비가 가려졌다. 사무실을 차려두고 온갖 범죄적 부정선거를 저지른 이들이 도리어 큰 소리를 쳤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들은 당을 뛰쳐나가며 정말 많은 아픔을 남겼다.

무엇보다 우선 통합진보당은 경선부정 당이 된 것이다. 나간 이들은 그 꼴을 보지 않겠다고 결심한 양심세력이 되고, 남은 이들은 도덕적으로 아주 타락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현실, 가해자는 여전히 당당하고 피해자는 여전히 짓눌려 살아야 하는 이 억울한 현실이 진행형으로 있다.

여기에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큰 역할을 하였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 진보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 통합진보당을 비난하였다. 심지어 한국사회의 양심적 지식인, 종교인들마저 통합진보당에 고개를 돌렸다. 국정원을 비롯한 공안기관들의 '진보진영의 대분열, 통합진보당의 고립'이라는 오랜 숙원사업을 실현한 것이다.

물론 당을 나간 이들의 이유가 경선부정 하나만은 아니다. 또한 당을 나간 이들이 모두 부정경선을 자행한 이들도 아니다. 오랜 기간 특정세력에 대한 반감, 일방적으로 당을 이끌고 나가는 패권에 대한 분노, 도무지 반성이 없는 모습에 대한 실망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한 진보언론, 진보 지식인과 단체들의 비판이 여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도 잘 안다. 실제 그 문제의식에는 객관적 근거도 있고 또 앞으로 진지한 성찰이 진행될 내용도 많다.

특히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는 어떤 이유를 들어도 용서하지 못할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공안기관의 공작으로 인해 어려워졌다'는 식의 해석을 경계한다. 공안기관의 탄압과 공작은 상수요, 이것에 맞서 더욱 손에 손잡고 단결하는 것은 주체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서로 설득하지 못하고 손을 놓아버렸다. 온갖 억울함, 분노, 원한을 가슴에 안고 말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진실이 있다. 통합진보당을 지키며 온갖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고 있는 이들이 경선부정의 주범, 목적을 위해 온갖 부정을 자행하는 그야말로 도덕적으로 망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부정선거 범죄를 저지르고 사법처리 된 이들은 당을 깨는 데 한몫하고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천형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그 억울한 누명은 이제 벗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부 진보인사와 진보언론에서 소위 진보당 부정경선 사태에 대한 지난 기간의 과도한 딱지 붙이기, 과장보도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진보운동, 진보정당을 하는 분들이라면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고, 정치적 주장은 정치적 주장대로 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란음모' 사건에 양비론은 있을 수 없다

두 번째 천형은 빨갱이, 종북, 내란세력의 딱지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그 위력은 대단하였다. "너희는 이석기 당이잖아?" 한마디로 더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석기'는 종북 빨갱이의 상징이 되었다.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이 아무리 초인적인 헌신과 노력을 기울여도 이 뭔가 음습한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는 한 집권정당으로 발돋움하기 힘들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통합진보당 지방의원들이 낙선하였고, 재선에 도전한 울산의 기초단체장들도 모두 낙선하였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종북 빨갱이의 천형이 갖는 본질은 무엇일까? 사건 자체는 별로 복잡하지 않다. 아무런 강령규약도 없이 한꺼번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알오(RO)라는 조직을 꾸미고 내란을 음모하였다는 사건이다. 최근 항소심 재판부는 알오(RO)는 실체가 없고 내란음모 또한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이 황당한 사건은 이석기 의원 본인과 가족을 비롯한 많은 당원들을 구렁텅이에 밀어넣었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은 대중정당으로서 치명상을 입었다.

'내란음모' 사건이 처음 알려진 작년 201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박근혜 정권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선개입공작이 드러나 정권의 정통성에 심각한 훼손이 일어난 것이다. 상황이 심상찮았다. 신부님들의 시국미사를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의 성명이 전국적으로 발표되고 있었고 광범한 각계각층 지도자들의 국정원 개혁에 대한 요구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대선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시대적 대세인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채 재벌의 편에서 노동자를 짓누르는 반민중적 정부의 태도에 분노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마침내 '박근혜 퇴진'의 구호와 함께 촛불이 전국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때 박 정권은 느닷없이 '내란음모' 사건을 터뜨렸다.

국정원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당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을 공포로 몰아넣고 종북몰이를 통해 진보진영을 분열시키는 아주 회심의 카드를 끄집어낸 것이다. 그들의 전매특허인 협잡과 왜곡을 통해 촛불을 꺼버리고 국정원 대선개입의 목소리를 한꺼번에 잠재워 버릴 한 방이었다. 목표는 간단하다. 통합진보당의 해체였다. 더 나아가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각개격파의 공격을 통해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촛불로 약화된 수구보수진영을 단결시키며 일거에 전세를 만회하는 것이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헌법적 가치'를 지키자고 여야가 함께 목소리도 내고, 정의당도 '헌법 내 진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단어를 쓰며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다. 종북 세력을 편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부담도 되고, '우리는 진보당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선입견도 작용했을 것이다.

모두 '셀프검열'을 시작했다. 통합진보당과 조금이라도 연관될까봐 전전긍긍하였다. 야당들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야권연대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통합진보당은 고립되었다. 같이 싸워주는 단체도 별로 없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비례경선 부정을 자행하는 부도덕한 당의 이미지에 내란음모까지 덧칠되었으니 무슨 수로 살아남겠는가? 모두 몹쓸 병 걸린 사람 취급하며 만나주려 하지 않았다. 병 옮길까봐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통합진보당이 이 천형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은 그 누가 뭐라 해도 희대의 공안탄압이요, 조작사건이다. 설령 백번 양보하여 많은 이들 앞에서 조심성 없이 뭔가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인정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다고 내란음모로 몰고 당을 해산시키는 것이 맞는가? 내란음모가 되지 않는다고 내란선동죄라는 희한한 죄목을 부쳐 9년이라는 장기형을 선고해도 된단 말인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 중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양비론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도, 이 사건에 대한 진보진영의 관점은 단 하나여야 하지 않을까?

통합진보당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대중정당답지 못하게 친북 성향의 발언을 한다거나, 혹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거나 해서 비판을 받는다면 차라리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의 진보정당답게 통합진보당도 적절한 표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하면서 살면 된다. 나는 통합진보당 행사에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고 '당가'도 부르고 '애국가'도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선거를 통해 집권을 하려는 정당에게 씌어진 '내란세력'이라는 굴레는 벗겨주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내란을 일으킬 마음도 준비도 없다. 이석기 의원은 정말 억울하다. 그는 당의 지지를 높여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정치적 희망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혁신은 숙명... 하지만 그 전에 천형은 벗겨줘야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는 더욱 중대한 문제다. '나는 당신의 사상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사상으로 인해 탄압받는다면 함께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21세기 대명천지에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정당해산을 하려드는데 보고만 있어야 되겠는가? 이것저것 다 떠나 소중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진보정치의 싹이 짓밟히는 일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에 대해서만은 모두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단결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관철하고 단결을 실현해나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정치적 주장을 앞세우는 것보다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어려울 때 손을 내밀고 상식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다. 물론 통합진보당도 이 문제를 성찰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통합진보당은 정말 바뀌어야 산다. 혁신하고 바꾸기 위한 노력을 그 어느 때보다 기울일 것이며 많은 여타의 세력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당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지난 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진지한 토론이 진행될 것이다. 서로 아픈 점이 많이 지적될 것이다. 통합과정, 분당과정, 내란음모 사건 이후 대응과정, 당의 미래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면서 당의 면모를 일신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민주노총을 비롯한 다양한 진보세력들, 여러 진보정당과 머리를 맞대고 연대의 기치를 들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 세월호 싸움에 힘을 모으고 나아가 노동자 농민 등 민중투쟁의 현장에서 만나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비판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변화에 대한 요구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오만하게 굴었거나 가르치려 들었거나 무엇이든 독식하고 패권을 부렸다면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북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심해야 할 것이다. 과거보다 훨씬 겸손하게 민중 속으로 들어가 통합진보당의 진심을 이해시키는 사업을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두 가지 천형만은 벗겨주기 바란다. 또한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정당 탄압에 대해서도 힘을 모아주실 것을 고개 숙여 부탁드린다. 이것은 단순한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고 진정한 진보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함께 일을 하려면 각자의 진심 어린 성찰과 함께 거꾸로 된 진실을 바로잡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입니다



태그:#통합진보당,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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