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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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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 분야 최대 실적은 내리막길을 걷던 경제흐름이 상승세로 회복됐다는 것이다. 창조경제가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고, 경제민주화도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침체일로의 부동산 시장도 반전됐고, 일자리 창출도 긍정적인 신호가 보인다."

"우리 경제의 맥박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회기에 민생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경제 회복의 불씨를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길을 잃고 회복하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또한 가뜩이나 힘든 가계나 젊은 세대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첫 번째 인용문은 박근혜 정부 취임 1주년 평가로 지난 2월 26일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에서 내놓은 자료의 첫머리다. 두 번째 인용문은 지난 8월 2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 민생 법안 관련 대국민 담화문의 일부분이다. 두 인용문 모두가 사실이라면 '내리막길을 걷던 경제흐름이 박근혜 정부 취임 1년 만에 상승세를 회복했는데, 다시 6개월 만에 경제의 맥박이 약해져 회복하기 힘든 위험에 직면했다'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세월호 정국 때문에 '경제 호황 불씨' 꺼진다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장식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던 한국 경제가 단 6개월 만에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는 건데,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 나라의 경제가 이렇게 돌변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이유가 참 궁금하다.

사실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의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는 발언을 접한 뒤 개인적으론 공포를 느꼈다. 단 6개월 만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한국경제를 서민들이 어떻게 믿고 살겠냐는 말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경제의 상승세가 꺾인 이유가 '세월호 참사'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지난 7월 21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회동에서는 세월호 사고 영향 등으로 경기회복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내수부진 등 하방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7월 23일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나서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소비 침체와 내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며 경기 부양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정부와 여당, 보수 언론과 경제지가 한 목소리로 '세월호 사고 때문에 경제가 침체되고 있으니 여야가 민생 현안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경제 진단은 오락가락하다 못해 아전인수 격이다. 우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인 2월 25일 정부가 박근혜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내놓은 보고서는 낯 뜨거울 정도로 공치사 일색이었다. 보고서 내용만 보자면, 박근혜 정부는 출범 1년 만에 성장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까지 견인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와 현실은 너무 달랐다. 박근혜 정부 출범 1주년 되는 날 한국은행은 '2013년 4분기 가계신용'을 발표해 가계부채가 1천조 원을 돌파했음을 확인했다. 다음날인 26일엔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준 '송파 세모녀 자살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경상수지 흑자 707억 달러, 취업자 증가 수 38만 명(2013년 기준). 박근혜 정부는 이런 수치를 토대로 경제 불씨는 살렸다고 자평하지만, 이는 수입 둔화와 투자 감소, 내수 부진이 불러온 불황형 흑자다. 일자리가 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시간제 일자리였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했다는 게 최재성 새정치연합 의원의 주장이다.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모처럼 살려놓은 경제 호황 불씨가 세월호 정국 때문에 꺼지는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서민들 입장에서 박근혜 정부 1년 6개월 동안 경제 불씨가 살아난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징후는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다.

'아직은 괜찮다'던 그때 그 분들, 맞나요?

"세월호에 발목 잡혀 한국 경제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만큼 국회에서 심도 있게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물가안정 목표 범위가 2.5∼3.5%로 돼 있는데 3년째 하한선으로 가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대치 국면이 장기화되자 정부와 여당은 일제히 경제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첫 번째 발언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한 것이고, 디플레이션 진입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28일 언론사 포럼에 참석해 내놓은 주장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가게부채와 국가부채 폭등 문제와 공기업 부실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릴 때마다 '아직은 괜찮다'고 애써 국민들을 다독이던 그 분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토부가 내놓은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9·1 부동산대책) 설명 자료.
 국토부가 내놓은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9·1 부동산대책) 설명 자료.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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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부총리의 디플레이션 초기 진입 주장만 해도 그렇다. 성장이 멈추고 내수 시장이 얼어붙은 것이 저물가 때문인가? 지난 1년 6개월 동안 1%대 상승률을 기록하고 물가는 서민 경제가 더 이상 소비를 늘릴 수 없다는 방증이다. 소득 없는 소비가 1천조 가계부채를 만든 주된 원인임에도 부동산을 부양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를 볼 때면, 국민의 삶을 위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경제 회생을 위해 국민 희생은 감수해야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진단이 이러니 처방도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정부는 민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수 진작과 경기 부양을 말하지만 대부분 단기적이거나 오히려 서민 경제를 피폐화시키는 정책들이다. 그중 부동산 정책과 대출 완화 제도가 대표적이다.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 소비를 진작시킨다는 구상은 아예 배제한 채 대출과 집값 인상으로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발상이라니... 이것들은 이미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임이 검증됐지만, 정부여당은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정부의 경제 정책을 못 믿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최경환 경제팀은 1일 또 서민의 삶과는 엇박자를 내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대도시의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규모 공공택지 지정을 2017년까지 중단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도시 과밀화를 유발하여 집값을 띄우겠다는 발상이다. '가계 부채가 늘어도 집값이 오르면 위기는 도래하지 않는다'는 이해할 수 없는 경제 철학을 갖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묻고 싶다. 2014년, 서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나 있느냐고.

진짜 위기, 매번 남 탓만 하는 정부여당이 만든다

그렇다. 서민 경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1천조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치를 넘어선 가계부채는 그 끝이 어딘지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듯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또 재래시장을 위시한 소규모 자영업의 도산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원인은 세월호 참사가 아니라 정부의 무능과 수출과 대기업을 중심에 둔 경제 정책에 있다. 정부와 여당은 민생법안 국회통과가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돼야 하는 건 진지한 논의다.

박근혜 정부 1년 6개월은 '남 탓하는 정부'로 귀결된다.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높아질 때도 정부 여당은 민생을 외쳤다. 또 목숨을 걸고 40여일 넘게 단식을 한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민생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다'며 위기론을 조장했다.

그러나 경제를 더 나쁘게 만드는 건 정치논리로 경제를 진단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다. 경제를 이용해서라도 세월호 정국을 벗어나려고 하는 정부여당의 모습은 한 번만 만나달라며 몇 날 며칠 동안 청와대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을 뿌리치고 자갈치 시장으로 달려간 박근혜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경제 위기는 정부 여당의 편향된 정책을 먼저 바꿔야 타개할 수 있다. 그래야 서민도 살고 정권도 산다.


태그:#민생법안,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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