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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오마이뉴스> 기자 중 가장 먼저 진도에 도착해 약 한 달을 머물렀습니다. 이후 대부분 기자들이 현장을 떠났고, 계절이 두 번 바뀌어 9월이 됐지만 세월호 침몰사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우연히 진도에 머무는 동안 찍었던 사진을 다시 더듬었습니다. 당시 흘려보냈던 사진 중 몇몇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다시 꺼낸 그날'의 사진엔 반성, 후회, 분노 그리고 아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9월 첫날, 저는 다시 진도에 왔습니다. 오늘부터 '그날'의 사진을 다시 한 장씩 꺼냅니다. 당시 보도하지 않았던 사진을 원칙으로 사진 한 장과 짧은 글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

'기억은 곧 존재'라고 믿습니다. 사진기자도 아닌 제가 그날의 사진을 다시 꺼내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잘' 기억하고 싶을 뿐입니다. - 기자 말

4월 16일 오전, '전원 구조' 오보로 홍역을 치른 탓에 세월호에 부모, 형제, 자식을 태운 가족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아픔과 분노가 섞인 감정을 안은 채 '구조자 명단'이 적힌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누구보다 황망했을 가족들이지만 화이트보드 앞에선 누구보다 침착했다. 그들은 눈으로, 손으로, 가슴으로 구조자 명단을 훑고 또 훑었다.
▲ '내 자식은 살아있겠지...' 어찌 그날을 잊을까 4월 16일 오전, '전원 구조' 오보로 홍역을 치른 탓에 세월호에 부모, 형제, 자식을 태운 가족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아픔과 분노가 섞인 감정을 안은 채 '구조자 명단'이 적힌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누구보다 황망했을 가족들이지만 화이트보드 앞에선 누구보다 침착했다. 그들은 눈으로, 손으로, 가슴으로 구조자 명단을 훑고 또 훑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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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오후, 진도군실내체육관 앞에 큰 화이트보드가 놓였다.

'구조자 명단.'

화이트보드엔 세월호에서 빠져나온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손으로 쓴 이름도 있었고, 인쇄된 종이에 담긴 이름도 있었다. 이름이 적힌 종이는 더 나붙기도 했지만 어떤 이름은 지워지기도 했다.

"○○이가 명단에 없어…."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었던 한 단원고 학생은 몸을 감싸고 있던 담요로 눈물을 훔쳤다(관련기사 : "차분히 있으라고 방송... 방 안에 곧 물이 차올랐다").

이날 오전, '전원 구조' 오보로 홍역을 치른 탓에 세월호에 부모, 형제, 자식을 태운 가족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아픔과 분노가 섞인 감정을 안은 채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누구보다 황망했을 가족들이지만 화이트보드 앞에서는 누구보다 신중했다. 그들은 눈으로, 손으로, 가슴으로 구조자 명단을 훑고 또 훑었다.

139일이 지났다. 139일 전, 구조자 명단을 수없이 더듬었을 이들 중 몇몇은 여전히 진도에 남아있다. 아직 물밖으로 나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의 가족들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서울 광화문광장, 청운동 등에는 유가족들이 모여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139일이 지났지만 아픔과 분노는 그대로다.

* 곧 '다시 꺼낸 그날' 두 번째 사진이 이어집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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