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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끝나지 않았는데 여름은 가고 있다 (중략) 어젯밤엔 광화문 돌바닥에 누워 어지러운 한뎃잠을 자고 /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굽어보며 / 다시 초췌한 눈동자로 확인한다 (중략) 이렇게 모여 몸부림치는 동안만 희망이라고 / 꺼질듯 꺼질듯 여기서 몸을 태우는 동안만 희망이라고 / 정갈한 눈물 아니면 희망은 없다고 / 정직한 분노 아니면 희망은 없다고"
- '광화문 광장에서' 도종환(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시인)

시인의 절규처럼 광화문 광장은 고통의 광장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창자 마디마디가 끊어진 단장(斷腸)의 고통을 끌어안고 이 세상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참척(慘慽)의 피눈물을 흘려도 아직 광장은 푸르른 희망의 잎새를 싹 틔우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각계각층 시민들이 광장의 콘크리트 바닥에 분노와 연대의 씨앗을 심고 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무얼까. 순전히 콘크리트 바닥 때문일까. 아니면 응답 없는 청와대와 유가족과의 면담을 '민생 마케팅'을 위한 언론플레이로 이용한 새누리당 때문일까.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명색이 21세기 공화국의 대통령이 중국 후한 동진시대 군주 환온 보다도 못하기 때문이다. 환온은 병사가 잡은 새끼 원숭이를 따라 수백리 길을 뒤따라 온 어미 원숭이가 죽어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진(단장) 걸 보고 그 병사를 엄벌에 처했다고 한다. 하물며 원숭이의 죽음에도 준엄한 책임을 물을진대, 우리 대통령은 어떠한가.

박 대통령의 제부 신동욱(박근령의 남편)은 가문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 단식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며 물과 소금만으로 먹고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지 세월호 단식 실체규명 실험단식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조롱과 농락도 이 정도면 '짐승의 시간'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일까. 한 손에 분노를, 다른 한 손에 연대를 쥔 시민들은 짐승의 시간에 맞서고 있다. 시인의 절규처럼 '수도 서울의 한복판이 아니라 고통의 한복판'에 희망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아직도 더 걸어 올라가야 할 슬픔의 계단'을 묵묵히 함께 걸으며,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며 다시금 서로의 어깨를 단단히 겯고 있다.

광화문 광장을 세월호 특별법으로 조각하는 사람들

서울 광화문 단식 농성장 텐트에 박근혜 대통령이 유가족과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발언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며 결단을 촉구하는 펼침막이 게시되어 있다.
 서울 광화문 단식 농성장 텐트에 박근혜 대통령이 유가족과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발언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며 결단을 촉구하는 펼침막이 게시되어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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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광화문 광장은 '세월호 특별법'으로 조각되고 있다. 석공이 날카로운 징과 망치, 찍자귀로로 돌을 조각하듯 분노와 연대만으로 거대한 콘크리트 바닥에 '2014년 4월 16일'을 문양으로, 문자로 남기고 있다. 그렇게 광화문 광장은 '세월호 광장'으로 다시 조각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광화문 광장을 세월호 광장이라고 부른다.

9월 1일 현재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한 시민들은 5000명을 넘어 섰다. 온라인으로 단식에 동참하겠다고 나선 시민도 2700명을 넘어서는 등 전국 곳곳에서 릴레이 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광장 한 켠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고 있으며, 전국에 걸쳐 450만 명이 넘게 동참했다. 

광화문 광장을 방문한 시민들은 청와대 앞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지난달 22일부터 12일째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찾아 격려하는 '세월호 순례'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유가족은 2일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특별법 제정 3보 1배에 나섰다. 서울 도심 한복판, 대통령이 있다는 그곳을 수호하기 위해 경찰은 '차벽'으로 가로막았지만 유가족과 시민들은 '세월호 벨트'로 맞서고 있다.

안산까지 벨트를 뻗쳤다. 세월호 문제해결을 위한 안산시민대책위(안산시민대책위)가 지난달 29일부터 안산시청 앞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촉구 안산시민농성장'을 열었다. 안산의 한복판에 희망의 뿌리를 내려 또 다른 세월호 광장을 조각하겠다는 다짐이다.

기자가 시민농성장을 찾은 2일 오후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졌다. 한낮의 햇볕을 가로막아 준 구름이 기특하다.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이 한낮의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대견하기만 하다. 그렇다 해도 광화문처럼 지나가는 차들이 뿜어대는 매연은 고스란히 들여 마셔야 한다.

이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답하라!

세월호 문제해결을 위한 안산시민대책위원회가 7월 29일 안산시청 앞에 마련한 안산시민농성장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동조단식에 참여한 엄마들은 노란리본 만들기에 세월호 특별법 서명받기까지 1인 다역을 하고 있다.
 세월호 문제해결을 위한 안산시민대책위원회가 7월 29일 안산시청 앞에 마련한 안산시민농성장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동조단식에 참여한 엄마들은 노란리본 만들기에 세월호 특별법 서명받기까지 1인 다역을 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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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농성장은 10여 명의 '엄마'들이 지키고 있었다. '엄마'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릴레이 동조단식과 함께 노란리본 만들기, 세월호 특별법 서명받기, 홍보물 나눠주기 등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시민농성장은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한다. 엄마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취재는 하고 가는데 기사로 보도되지는 않는다고. 

그중 한 '엄마'로부터 1일 릴레이 단식을 하게 된 이유를 들었다. 윤민례씨는 스무 살과 열일곱 살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집은 서울이지만 다니는 직장이 안산인데 회사에 월차를 내고 참여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이 학교에서 수학여행 간다며 부모 동의를 해달라고 해 4월 16일에 서명을 하고 이튿날 출근을 했는데 세월호 참사가 터졌어요… 마치 우리 아들을 (단원고 아이들과) 수학여행 보낸 것 같았어요. 그 뒤 광화문에서 동조단식을 한 번 하고 안산에서도 한다고 해 참여하게 됐어요. 앞으로도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할 거예요."

광화문에 이어 안산에 시민농성장을 마련한 이유는 무얼까. 방우성 상황실장은 시민농성장을 운영하게 된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광화문 광장에 참여하지 못한 안산시민들을 위해 마련했다. 시민들이 지나가면서 호응도 해 주고, 서명도 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고생한다고 음료수도 건네주면서 특별법이 빨리 제정됐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준다. 힘이 난다."

며칠 전에는 단원경찰서에서 다녀갔다고 한다. 민원성 신고가 들어 와 현장 확인 차 왔다고 했지만 그 정도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응답할 때까지 시민농성장을 광화문 광장처럼 '안산의 광장'으로 만들어갈 작정이란다. 그렇게 안산판 세월호 광장을 만들기 위한 분노와 연대는 쉼 없이 전진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오해와 진실, '시민농성장'에서 풀어드립니다

안산시민농성장 주변에 걸린 펼침막(위). 세월호 특별법 오해와 진실에 대해 질의 응답식으로 쉽게 풀어 시민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 아래 펼침막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소개하고 있다.
 안산시민농성장 주변에 걸린 펼침막(위). 세월호 특별법 오해와 진실에 대해 질의 응답식으로 쉽게 풀어 시민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 아래 펼침막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소개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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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농성장을 시청 앞에 설치한 이유는 무얼까?

세월호 특별법과 유가족에 대한 각종 마타도어(흑색선전, 중상모략)와 유언비어에 맞서 진실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읽힌다. 다행히 안산시장은 '사람중심 안산특별시'를 위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시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시민농성장 주변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들의 요구와 안산시민대책위 활동의 진정성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너른 장으로 디자인됐다.

세월호 피해자 의사자지정과 대학특례 입학, 유가족들의 실제 요구사항 등 풍문으로 떠돌고 있는 소문들에 대해 유가족의 입장을 밝힌 '세월호 특별법 오해와 진실 Q&A' 펼침막을 게시해 시민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유가족이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만든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과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발의한 세월호 특별법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만든 펼침막도 나란히 걸려 있다.

시민농성 5일째인 2일까지 릴레이 단식에 참여한 시민은 10여 명이 넘는다. 시민농성장은 추석 연휴 동안 문을 닫고 오는 11일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추석 연휴를 제외하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시민농성장은 그 자리를 계속 지켜 나간다. 세월호 유가족이 'OK'하는 그날까지.


태그:#안산시민농성장, #세월호 특별법 오해와 진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릴레이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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