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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추억이고 사랑이다. 영원한 그리움의 그루터기이다. 나를 키워준 은인, 부모님과 산과 강, 친구와 이웃들이 살고 있다. 명절이 설레는 이유다. 각박한 세상살이를 잊고 그리운 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한 시간들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절이 모두가 그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명절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아프지만 우리 곁에는 그런 이웃들이 있다. 진안 시골에 들어온 지 6년, 명절은 이제 나에게 설렘이 아니다. 함께 사는 가족들이 명절을 보내려 집으로 간다. 또 하나의 가족 닭과 돼지와 개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개들 때문에 명절에도 집에 갈 수 없다.

혼자 명절을 지내야 하는 나에게 명절의 기쁨이 찾아왔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한 네 아이들, 그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보는 수녀님과 남동생 부부와 조카들이 한가위 명절을 생태마을에서 지내려고 찾아온 것이다.

꽃님이 달님이 샛별이 금별이. 이름을 떳떳이 밝힐 수 없다. 새터민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아이들의 미래에 그림자가 되기 때문이다. 분단의 아픔이다.

모래재를 넘어 전주 모래내 시장에서 햅쌀, 갈비, 생선, 여러 나물과 과일, 송편 재료 등을 샀다. 북한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명절 차례상을 준비한다. 송편을 빚는 수녀님과 아이들, 부침개를 준비하는 제수씨와 조카들, 밤을 까는 동생과 조카들 재잘거림이 명절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유년 시절의 그 명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북한 고향에서 부모님께 배운 솜씨로 차린 차례상

북한 이주민 아이들과 함께 차린 차례상
 북한 이주민 아이들과 함께 차린 차례상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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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이 왜 그리 작나, 크게 좀 만들어라."
"내 손이 작은데 어떻게 크게 만들어요."
"수녀님 송편은 왜 그렇게 뚱뚱해요."
"네 송편은 왜 이리 날씬하니."
"절편은 어떻게 만들지."
"절편 찍는 판을 무얼로 하지."
"여기 찾았다. 채칼 결을 이용하면 좋겠네."
"우리 아이들 임기응변이 뛰어나네."
"그럼요. 누구 새끼인데요."
"대부님 수녀님 새끼죠."

초등학교 6학년, 중2, 고2 아이들의 송편과 절편을 만드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북한 고향에서 명절이면 부모님과 함께 익혔던 솜씨였다. 돼지갈비에 3년된 묵은지를 넣고 갈비찜을 만들고 돼지고기도 덩어리째 삶았다.

미사제단 앞에 차례상을 차렸다. 정종과 향을 올리고 부모님과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아이들이 술과 향을 올렸다. 북한에서 양부모를 잃고 중국을 통해 홀로 이주한 꽃님이 눈가에 이슬이 고였다.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울까.

동생과 조카가 마주앉아 밤을 까고 있다.
▲ 밤까기 동생과 조카가 마주앉아 밤을 까고 있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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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채칼로 눌러 만든 절편
▲ 절편 아이들이 채칼로 눌러 만든 절편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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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윷놀이 한판이 시작되었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모르겠다. 와작지껄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노래방 비용 내기 윷놀이에서 결국 수녀님팀이 지고 말았다.

한가위 명절에 전주 한옥마을 나들이는 아이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볼링장에도 갔다. 6학년이지만 초등학교 2학년 정도로 체구가 작은 꽃님이는 두 손으로 볼링공을 던졌다. 처음 던지는 볼링공이라 어색하기 그지없다.

3박 4일의 마지막 일정은 노래방이었다. 아이들에게 노래방은 놀이를 넘어선 그 무엇이다. 홀홀 단신으로 이주한 남한의 삶이 얼마나 힘들까. 남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남아야 하고, 부모님들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아이들, 어디 가서 큰 소리 한 번 지를 수 없는 서울 생활. 이래저래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엄마처럼 아이들의 여러 간식을 챙기고 짐을 꾸리는 수녀님과 동생부부. 개울물소리, 새소리, 꽃들 속에서 해맑은 웃음을 찾은 아이들. 내 유년의 추억을 되살려준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행복을 충전한 아이들을 실은 봉고차가 멀어져 간다. 코스모스 꽃잎이 바람에 손을 흔든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고향의 산과 언덕, 부모와 이웃이 되어준 생태마을이 있어 행복한 명절을 보냈다.

아이들이 떠난 야외 천막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새터민, 탈북자. 이런 단어가 또 하나의 벽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정치인들과 '기레기' 언론이 만든 편 가르기 용어가 아닐까.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만든 정치적인 용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3D 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이주노동자, 농민과 노동자와 혼인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주여성이라고 한다. 여러 이유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 또한 이주민이 아닐까. 색안경을 쓰고 보는 새터민, 탈북자가 아니라 이주민이다.

덧붙이는 글 | e진안신문에도 송고함



태그:#한가위, #송편,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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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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