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모비스는 전주 KCC와 더불어 프로농구 최다 우승팀이다. 특히 현재와 달리 기아 엔터프라이즈 시절에는 지역 연고를 떠나 전국구 인기팀이었다. 실업 시절부터 슈퍼스타 군단으로 인정받던 기아자동차를 인수했기 때문인데, 허재-강동희-김영만 등 국가대표 라인업으로 유명했다. 그런 만큼 모비스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들의 면면도 쟁쟁하다.

KCC 조니 맥도웰의 영향이 크기는 했지만 최초로 용병 더블포스트를 구사하던 팀은 모비스였다. 프로 원년 대부분의 팀들은 단신 테크니션+빅맨형으로 외국인 선수 조합을 맞췄다.

그런 상황에서 모비스는 클리프 리드, 로버트 월커슨 조합이라는 골밑형 용병 둘로 포스트를 구축했다. '황새' 김유택(197cm)이라는 걸출한 국가대표급 센터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당시 적지 않은 나이의 그가 주전으로 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고 더불어 1-2-3번 라인이 원체 강력한지라 따로 테크니션 용병이 필요없던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

최초 1순위 용병 클리프 리드, 원년 우승 이끌다

모비스 최초의 스타 용병은 단연 클리프 리드(44․190.4cm)다. 1996년 11월 11일, UCLA체육관에서 치러진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리드는 일찌감치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모비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리드를 품에 안았고 이는 탁월한 선택이 됐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리드 외에도 제이슨 윌리포드, 에릭 이버츠 등 그에 못지않은 뛰어난 용병들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당시 모비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다재다능함도 무시무시한 득점력도 아닌 튼실하게 포스트를 지켜주는 유형이었다. 이에 리드는 딱 맞춤형이었다는 평가다.

부산 개막전에서 6개의 덩크슛을 터트리며 단숨에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신장은 크지 않았지만 엄청난 탄력을 활용한 골밑 플레이가 위력적이었다. 탁월한 개인기로 상대 골밑 수비를 찢어버리거나 알고도 못 막는 포스트업을 구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높이 뛰어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어지간한 골밑슛은 블록으로 차단해버렸다.

리드를 통해 잡힌 수비 리바운드는 강동희의 손을 거쳐 엄청난 속공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거기에 자주 쏘지는 않았지만 오픈 찬스에서 외곽슛까지 던질 수 있어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팀 공헌도를 자랑했다.

KCC 첫 우승 시절 펼쳤던 챔피언 결정전은 지금까지도 명승부로 불린다. '농구 천재' 허재가 마지막 불꽃을 활활 불태우며 승부를 마지막까지 몰고 갔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받아 허재는 준우승팀에서 챔피언결정전 최우수 선수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당시 허재는 외국인 선수 한 명이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제이 웹과 조니 맥도웰이라는 두명의 최상급 용병이 가동되던 KCC포스트를 맹폭했다. 어쩌면 그러기에 당시 허재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홀로 포스트를 지키며 고군분투했던 리드의 공로도 적지 않았다. 당시 리드는 웹-맥도웰 두명과 싸우며 필사적으로 리바운드를 걷어내는 투혼을 선보였다.

'백인탱크' 와센버그와 '앉은뱅이 리바운더' 루카스

'탱크' 맥도웰의 전성시대가 계속되던 시절, 모비스(당시 기아)는 새로운 대항마를 야심차게 영입한다. '백인 탱크', '하얀 맥도웰'로 불렸던 존 와센버그(40․192cm)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기존의 백인 용병들과 달리 통통 튀는 탄력적 움직임과 과감한 돌파를 통해 골밑을 공격하는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와센버그는 국내 리그에 오기 전 2차례나 용병 트라이아웃에서 미역국을 먹었을 정도로 각팀 들에게 관심 밖의 선수였다. 신장이 썩 큰 것도, 그렇다고 공격 옵션이 다양한 것도 아닌 데다 농구에서는 오히려 '역차별'받는 백인 선수라는 점도 이유로 작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무지하게 잘 뛴다'는 공통의 평가는 꾸준히 있어왔다.

그는 LG에서 무단 이탈한 버나드 블런트와 세인트 조셉 대학 동문이다. 백인이지만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치는 그는 NAIA 및 1997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MVP까지 받은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와센버그는 호불호가 아주 뚜렷한 타입이었다. 순간적인 스피드를 활용해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고 골밑을 파고드는 것은 물론 속공시에도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리는 등 골밑슛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외곽슛이 아예 없다시피 한지라 대부분의 공격 성공이 골밑에서 나왔다. 정통 센터 타입이 아닌 단신 포워드라고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었다. 골밑 지배력이 뛰어난 외국인 센터가 파트너로 함께하지 않는 이상 활용도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토종 선수들의 외곽 지원도 필수였다. 물론 당시 모비스 선수 구성에서는 와센버그가 잘 맞는 편이었다. 파워풀한 골밑 플레이만큼 성격도 화끈한지라(?) 1999년 12월 5일 SK전에서 상대 외국인 선수 로데릭 하니발과 멱살잡이를 펼치는 등 상남자 캐릭터로 기억되고 있다.

대체 용병으로 잠깐 모비스에 몸을 담았던 '상이용병(?)' 마리오 루카스(205cm)는 활약 기간은 짧았지만 특유의 개성(?)으로 오랫동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토시로 저머니(39․202cm)의 발목 부상으로 인해 모비스는 부랴부랴 대체 용병을 알아봤고 그때 들어온 선수가 루카스다.

1999-2000시즌 당시 각 구단들은 유달리 대체 외국인 선수를 많이 들였는데 때문에 모비스 입장에서는 저머니를 대신할 용병 수급이 무척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전자랜드(당시 신세기) 대체 용병으로 뛰었던 모리스 로빈슨을 쓰게 해달라고 KBL에 요청했지만 규정상 '절대 불가'답변만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이전해 8월 트라이아웃에서 상위 지명이 유력시 되었지만 발목 부상으로 도중 하차해 각팀 관계자들을 아쉽게 했던 선수였다. 모비스는 우연한 기회에 루카스가 미국 멤비스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긴급히 연락을 취해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루카스에 대한 모비스의 기대는 굉장히 컸다. 버넬 싱글턴(삼성)의 골밑 플레이와 재키 존슨(SK)의 외곽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가 있었을 정도다. 1996~1997 칠레리그 MVP를 비롯 인도네시아, 중국 리그 등에서 맹활약하며 실력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루카스는 기량 자체는 뛰어난 선수였다. 문제는 부상이었다. 아쉽게도 모비스에 대체 용병으로 들어왔을 때의 루카스는 몸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오른쪽 무릎은 십자인대 수술을 했고 왼쪽 무릎은 반월상 연골이 손상되어 역시 수술을 받았다. 무릎 부상도 낫지 않은 데다 그로 인해 근력 자체도 다른 선수들 절반 수준도 안 되는 것으로 드러나 경기에 뛰기 힘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스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잘 뛰지는 못하지만 놀랄 만한 위치 선정과 긴팔을 활용해 이른바 '앉은뱅이 리바운드'를 선보였다. 볼의 낙하 지점을 정확히 예측해 미리 자리잡고 있어 점프 없이도 공을 낚아챘다.

2000년 2월 20일 KGC(당시 SBS)전에서 19개, 22일 삼성전에서 15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양팀 최다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팀에 미안했던지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때문에 당시 언론에서는 그에게 '상이용병'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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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역대 모비스 외국인선수들>

클리프 리드, 로버트 윌커슨, 저스틴 피닉스, 제이슨 윌리포드, 토시로 저머니, 마리오 루카스, 존 와센버그, 듀안 스펜서, 루이스 로프튼, 딜론 터너, 래리 애브니, 채드 헨드릭, 데니스 에드워즈, 아이지아 빅터, R.F 바셋, 무스타파 호프, 조니 맥도웰, 맥글로더 어빈, 바비 레이저, 아담 첩, 제이슨 웰스, 다이안 셀비, 크리스 윌리엄스, 토레이 브렉스, 벤자민 핸드로그텐 , 로데릭 라일리, 제이슨 클락, 크리스 버지스, 키나 영, 케빈 오웬스, 에릭 산드린(이승준), 얼 아이크, 브라이언 던스톤, 오다티 블랭슨, 저스틴 보웬, 빅터 토마스, 압둘라히 쿠소, 애런 헤인즈, 마이카 브랜드, 켄트렐 그랜스베리, 로렌스 엑페리건, 말콤 토마스, 테렌스 레더, 리카르도 라틀리프, 아말 맥카스킬, 커티스 위더스, 로드 벤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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