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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 제주 → 공주 → 거창 → 남도 일대 → 거창

지난 여름, 필자의 이동 궤적이다. 무슨 팔자(?)가 붙었는지 유랑단처럼 계속 이동을 하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잠자리도 계속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내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던 점이다. 매일 밤 폭우를 걱정하며 텐트 생활을 했던 장거리 여행 때보다는 그나마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그렇게 방랑 생활을 하다보니 한 가지 '잠자리의 철학'이 생겼다.

"7성급 호텔이든 공동묘지 옆에 친 텐트든 내가 두 다리 뻗고 누운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잠만 잘 자면 되잖아!"

실제로 이런 원칙을 세우고 장거리 여행을 다녔더니, 잠자리가 바뀌어서 겪는 불면증 따위는 겪지 않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나의 '잠자리 철학'은 역설적으로 안정된 거주지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그런 열망.

돈이 없어 모기장 텐트를 쳐가며 여행을 했을 때 사진. 전날에 내린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물난리를 겪은 모습을 담았다. 2011년 여름, 전북 완주 부근에서 촬영했다.
▲ 물폭탄 맞은 텐트 돈이 없어 모기장 텐트를 쳐가며 여행을 했을 때 사진. 전날에 내린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물난리를 겪은 모습을 담았다. 2011년 여름, 전북 완주 부근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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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가 된 내 방

대학 시절이었다. IMF 이후였다. 자영업을 하시던 삼촌이 일이 잘못되어 사업을 정리해야 했고, 사시던 집까지 잘못되어 가족들을 이끌고 우리집으로 들어오셨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삼촌 식구 4명이 들어오니 집안은 정신이 없었다. 삼촌네 살림살이들도 전부 다 이사 왔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이동할 때도 짐들을 피해 쏙쏙 옮겨 다녀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내 방도 짐이 쌓여 창고(?)처럼 보였다. 간신히 몸을 누일 정도만 됐던 것이다.
당연히 내 생활은 사라졌다. 창고 같은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학교 근처에다 방을 구하기로 했다.   

'룸메이트는 없고 방에서 술은 안 마시겠다'

이런 식의 나름대로의 독립생활 수칙도 정했다. 내 방이 주당들의 아지트화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시작한 자취생활

우여곡절 끝에 나의 '자취 일기'는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생활을 잘했다. 삼시 세끼 다 챙겨먹었고, 방 청소도 주기적으로 했다. 거의 다 학교 사람이긴 했지만 이웃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빨래, 설거지, 청소, 음식 장만 등등...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척척 해내니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같이 살 여자 친구만 있으면 되겠네!'

그 기원이 통했는지 정말 친구와 함께 살게 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친구는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같이 살고 싶다는 소박한 기원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친구 녀석인 성훈이와 동거를 하게 됐던 것이다. 룸메이트를 두지 않겠다는 수칙을 깨지게 만든 이 녀석의 사연도 기구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전부 뿔뿔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정한 수칙 때문에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제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친구를 위해 방 한편을 내주기로 결정했다. 다행인 건 성훈이가 생활 매너가 좋았다는 점이다.

성훈이도 방을 아지트화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서로서로 바빠서 그랬는지 방을 아지트화 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런대로 잘 지켜졌다. 또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그런지 서로간의 생활 트러블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성훈이가 등장한 이후로 이상한 일이 생겼다. 무언가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바퀴벌레!

전에는 한두 마리씩 보이던 바퀴벌레가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보이는 거였다. 소풍(?)을 가는지 어른 바퀴 뒤로 줄줄이 새끼바퀴들이 따라다니는 장면도 목격됐을 정도다. 전에는 분명 이렇게 자주 출몰하지 않았었는데...

바퀴벌레는 정말 별로다. 차라리 뱀이나 두꺼비가 낫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바퀴벌레 덕택에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어두운 밤에 집에 불을 켰을 때 처음 눈에 띄는 게 바퀴벌레라면... 그것 참 거시기 했다.

음식배달 어플이 있듯이, 이제는 부동산 어플도 등장했다.
▲ 부동산 어플리케이션 음식배달 어플이 있듯이, 이제는 부동산 어플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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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때문에 친구를 의심하게 되다

바퀴벌레들 때문에 성훈이를 오해한 적도 있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전날 알바 때문에 난 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성훈이도 알바를 하고 왔는지 골아 떨어져 있었다. 뒤척거리다가 선잠에 들었다. 몽롱한 기운이었지만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자꾸 내 허벅지를 뭐가 건드는 게 아닌가. 한쪽도 아니고 양쪽을 동시에 다 건드리고 있었다.

"너, 뭐야!"

소리를 냅다 지르고 일어나 불을 켰다. 그런데 성훈이는 방 한편에서 곤히 잘 자고 있었다. 정신없는 내 눈에는 범인으로 보이는 어른 바퀴벌레 두 마리가 도망가는 게 보였다. 그 중 한 마리는 성훈이 얼굴을 타고 도망을 갔는데, 그 기척에 놀라 성훈이도 일어났다.

"뭐야... 도둑 들었어?"
"어.... 아니..."
"그럼 꿈꿨냐? 빨리 자라. 나 내일 일찍 나가야 돼."
"......"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성훈이가 내 방으로 이사 왔을 때 살림살이도 좀 가지고 왔다. 그래서 그 이사 와중에 바퀴벌레들도 같이 이사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성훈이의 짐들을 방 한편에 쌓아두었으니 바퀴벌레 녀석들의 아지트도 넓어진 셈이다.

물론 이런 결론은 내 스스로 한 것이고, 성훈이한테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훈이도 눈치가 있었는지 바퀴약 사는데 '거금'을 내놓았다. 또한 집 청소와 이불 말리기에 손수 앞장섰다.  

우리들의 일제소탕 작전으로 그 녀석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일단 집안 청소에 신경을 쓰니 자연스레 그 녀석들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우리집 본가에서도 바퀴벌레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삼촌댁 이삿짐과 함께 그 녀석들이 옮겨왔던 것이다.

그 바퀴벌레 에피소드가 일어난 몇 달 후 나는 다시 본가로 복귀를 했다. 삼촌이 집을 구해 나가셨고 내 방도 창고 신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두 다리 뻗고 누운 곳이 바로 천국

글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필자에게는 돌아다니는 팔자가 붙은 거 같다. 역마살이 붙은 것 같다. 역사트레킹이니 도보여행이니 하는 역마살 팔자가 붙다보니 역설적으로 안정된 거주지에 대한 갈증이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갈증은 평생 해소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잠자리가 바뀔 때마다 '내가 누운 곳이 천국'이라는 다짐을 하며 유유자적하게 받아 넘겨야 할 것 같다. 그 곳이 7성급 호텔이든 허름한 오두막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정말 내가 두 다리를 뻗고 있는 곳이 천국인가? 진짜 그럴지도 모르지! 대신 바퀴벌레가 있으면 지옥일지도 몰라. 뱀은 자세히 보면 귀엽기라도 한데... 바퀴벌레는 진짜 별로야...'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태그:#자취생활, #세입자, #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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