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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는 가게 자리와 안 되는 가게 자리가 있다는 말은 진리다. 어떤 곳을 보면 들어오는 가게마다 흥해서 주인에게 권리금을 두둑이 챙기게 해주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들어오는 족족 망해 나가는 자리가 있다.

내가 매일 지나치는 길목은 이른바 비활성 상권이다. 대로변도 아니고 그나마 살던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가 현상만 유지하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건물 1층에 아주 아기자기한 공예숍이 하나 들어섰다.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동네에 핸드메이드숍이라.

'위험한대.'

게다가 북유럽 감성이 깃든 것 같은 소품을 만드는 그 곳. 추억의 떡볶이나 푸짐한 순댓국을 파는 게 더 어울릴 법한 이곳에?

하지만 가게는 참 예뻤다. 소품 하나하나 마다 주인의 정성과 사랑이 느껴졌다. 곳곳에 쓰인 칠판 글씨며 벽지며 인테리어는 이 거리에서 보기 힘든 그 특별함이 있었다. 그리고 '수강생 모집'이라고 쓰여져 있는 홍보판넬. 몇 달 뒤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는 그 가게.

"이상하다. 이게 될 리가 없는데."

가게 안을 흘낏 들여다봐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며칠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불은 켜 있지만 사람은 없었다.

"내가 시간대를 잘못 골랐나?"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그 가게는 사라져버렸다. 나는 나의 예상이 맞은 걸 기뻐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자리에 특이한 가게가 하나 들어섰다.

먹음직스러운 튀김. 하지만 환기가 되지 않는 실내에는 기름냄새가.......
 먹음직스러운 튀김. 하지만 환기가 되지 않는 실내에는 기름냄새가.......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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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가게'

분식집은 많이 봤어도 튀김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튀김이라고 하면 왠지 시장이나 노점에서 먹는 느낌이 강한데 떡볶이나 순대도 없이 단일품목으로 튀김만 판다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어색했다.

그리고 하나 더, 튀김은 냄새가 많이 난다. 특히나 환기를 아주 잘 하지 않으면 실내에 기름 냄새가 진동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또 망하는 거 아니야?'

드디어 오픈 당일 날. 유리 진열대에 놓인 튀김은 먹음직스러웠지만 실제로 구입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그건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밤에도 진열장에는 수북이 튀김이 담겨있었다.

'팔리지 않는 튀김들은 어디로 갔을까?'

안타까운 마음에도 호기심은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가게가 변신했다.

흔한 야채나 오징어말고 뭐든지 튀겨주는 가게가 있었다. 잠시동안
 흔한 야채나 오징어말고 뭐든지 튀겨주는 가게가 있었다. 잠시동안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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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튀겨드립니다.'

그러더니 닭부터 시작해서 무엇이든 튀겨주는 튀김가게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잘될 리가 없었다. '치킨은 치킨집에 피자는 피자집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누가 가게에 와서 음식을 튀겨달라고 부탁하겠으며 굳이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의 튀김집에 와서 치킨을 포장해서 가져갈 리는 없었다. 여기는 더군다나 대로변이 아니니까.

이 네 글자는 왜 이렇게 사람을 울컥하게 하는지.
 이 네 글자는 왜 이렇게 사람을 울컥하게 하는지.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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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예상대로 그 가게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내게 고민 하나를 남겨줬다. 그냥 알면서도 지켜보는 사람으로 남을지 아니면 조언을 해 줄 사람이 될지.

하지만 전문가도 아닌 내가 가게를 찾아가 조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 날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는 장사가 잘 될 것 같지 않은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나의 의견을 쪽지로 써서 가게 문틈에 남기는 거야."

내 조언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방관자로만은 남지 않겠다는 나의 아주 조그마한 용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임대문의'라는 쪽지가 붙기 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태그:#튀김, #임대문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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