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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택배는 마냥 반갑다. 우리나라 대표 공기업 '우정사업본부'의 비전처럼 우편·택배 배달은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일'이다. 이렇게 고마운 우체부 아저씨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희망'과 '행복'을 전한다는 집배·택배원들은 행복에, 그리고 희망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장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린다. 기자들이 각각 정규직 집배원·재택집배원·위탁 택배원 유형에 해당하는 이들과 하루를 동행했다. 집배원들은 사측과의 갈등을 우려해 모두 익명을 당부했다.... 기자말

지난 8월 12일 오전 8시, 박아무개(45)씨의 집배 업무가 시작됐다. 박씨는 우체국으로 출근하지 않는다. 박씨는 정규직 집배원이 가져다주는 우편물을 다시 가정까지 배달하는 '재택 위탁 집배원'(아래 재택 집배원)이다.

재택 집배원은 택배 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지난 2002년부터 아파트 단지를 위주로 시행한 고용 형태다. 애초에 정규 집배원의 업무도 줄이고 일자리도 늘리겠다는 취지였지만, 실상은 하청을 통한 인건비 감축이었다. 정규직 집배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배송 책임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씨가 일하는 지하 계단은 상가 주인에게 간신히 부탁해 얻은 공간이다. 박씨는 "나는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리를 얻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 씨가 일하는 지하 계단은 상가 주인에게 간신히 부탁해 얻은 공간이다. 박씨는 "나는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리를 얻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 고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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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작업장도 없어, 상가 구석에서 쪼그려 일해

박씨가 한 아름의 우편물 보따리를 받아 상가 지하 계단에 펼쳐 놓기 시작했다. 함께 섞여 있는 우편물을 동과 호수별로 분류해야 하지만, 작업을 수행할 장소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5번째 계단에는 5동, 4번째 계단에는 4동을 놓는 방식이었다. 귀퉁이에 쪼그려 앉은 박씨는 상가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계단을 이용할 때마다 연신 미안하다고 허리를 굽혔다.

재택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대부분의 재택 집배원들은 아파트 상가 구석이나 관리사무소 한쪽을 작업실로 삼는다. 박씨도 버스로 40분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어 우편물을 분류할 장소가 없다. 박씨는 "대부분 재택 집배원들은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40~50대 여성들이라 구역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며 "나는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리를 얻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일하는 지하 계단은 상가 주인에게 간신히 부탁해 얻은 공간이다. 관리사무소에 공간이 있었지만, 사용료를 내라는 통보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우편물을 분류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 쌓여 있는 우편물이 많아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박씨는 "평상시의 절반조차도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매월 초·중순은 폭풍전야다. 명세서들이 몰리지도 않고, 백화점의 세일 안내 책자가 발행되는 기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지면 배달해야 할 물량은 곱절로 뛰어오른다.

그러나 물량이 늘어도 일당에는 변화가 없다. 우정사업본부는 재택집배원과 1500세대, 등기우편 100통을 기준으로 일괄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박씨가 "지난 6월이나 7월처럼 선거 홍보 책자물이라도 생길 때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적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시급 5460원... "아이들 학원비 생각에 그만 둘 수 없어"

조심스레 임금에 관해서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씨는 "임금은 5460원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임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체국과 재택 집배원의 계약은 '사업자와 노동자의 노동계약'이 아니라 '사업자와 사업자의 도급계약'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계약할 경우 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우체국에서는 아예 이들과 노동자로서 계약하지 않았다. 박씨는 "4대 보험이 가입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작년부터는 3.3%의 사업소득세까지 내고 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재택 집배원이라고 하지만, 재택 근무라고 해서 실상 나을 것은 없다. 오히려 제대로 된 작업장도 없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녀야 한다.
 재택 집배원이라고 하지만, 재택 근무라고 해서 실상 나을 것은 없다. 오히려 제대로 된 작업장도 없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녀야 한다.
ⓒ 고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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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분류한 우편물의 절반쯤을 자전거에 싣고 본격적인 배달에 나섰다. 한 번에 자전거 짐칸에 다 실을 수 없기 때문에 나머지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조심스레 남겨두어야 한다. 박씨는 "오늘은 그래도 한 번만 더 오가면 된다"며 "애들 학원비 생각에 쉽사리 그만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씨의 자전거가 아파트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삼성언론재단의 제1회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 노력상 수상작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체국, #재택집배원, #집배원, #위탁택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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