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먼 데서 오는 여자>에서 남자를 연기하는 이대연

연극 <먼 데서 오는 여자>에서 남자를 연기하는 이대연 ⓒ 극단 코끼리만보


연극 <먼 데서 오는 여자>에서 아내는 곁에 있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남편을 기다린다고 이야기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종종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배우 이대연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를 한결같이 곁에서 지켜주는 든든한 남편을 연기했다.

하지만 남편의 헌신적인 아내 내조만 보여주는 연극은 아니다. 파독 간호사, 월남전 파병 등 우리 시대의 근현대사를 이들 부부의 사연 가운데서 압축하여 보여준다. 특히 대구 지하철 참사를 언급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도록 만들어서 어린 생명들을 지켜주지 못한 사회의 책임을 간접적으로 통감하게끔 만든다.

지금 이대연은 송강호와 유아인 주연의 영화 <사도> 작업과 병행하며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방송이라면 무리수일 수도 있겠지만, 이준익 감독의 배려로 무대에 오르면서 영화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의 남편을 연기할 때보다도 극 중 대구지하철 참사를 언급할 때 세월호의 아픔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하는 이대연을 만나보았다.

"고단한 삶 견디다 기억 저편으로 도망친 아내의 이야기"

 <먼 데서 오는 여자>의 이대연과 이연규.

<먼 데서 오는 여자>의 이대연과 이연규. ⓒ 극단 코끼리만보


- 2인극이다 보니 여타 공연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갔을 텐데.
"모노드라마보다는 덜 외로운 작업 아니겠는가. 상대 배우가 있으면 정서적으로 기대게 된다. 공연을 끝내면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맥이 풀리는 것이지 물리적으로 힘들지는 않다."

-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근현대사를 압축했다.
"아내가 기억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건 현대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사는 개인이 몸담는 사회의 역사와 유리될 수 없다. 남편은 월남 파병 군인으로 참전해서 살기 위해 사람을 죽여도 보고, 중동 건설 붐이 일 때에는 사막에서 고단한 삶을 견딘다. 아내는 멀리 떠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아내는 평생 기다리다가 기다릴 힘도 없어서 기억 저편으로 멀리 도망친다.

아내가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중요한 이유는 대구 지하철 참사 때문이기도 하다. 극 중 대구 지하철 참사는 지금의 세월호 참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만든다. <먼 데서 오는 여자> 대본을 받았을 때가 세월호 참사 직후였다. 작가에게 언제 구상했느냐고 집필 시기를 물은 적이 있다. 집필하던 중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고 한다.

당시 <한겨레>에 '왜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은 유골 암매장범으로 몰렸는가' 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극에는 세월호의 '세'도 언급되지 않지만 이 사회가 초래한 무기력한 죽음을 언급했다.

이런 억울한 죽음을 조롱하고, 아직 치유되지 않았는데도 잊으라고 하는 논리가 억울한 죽음 앞에서 가능한 이야기인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교황도 '슬픔 앞에서 중립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세월호 참사는 충분히 슬퍼해야 하고 위로받아 마땅하다."

"일 년에 연극 한 편은 꼭 하자는 스스로와의 약속"

'먼 데서 오는 여자' 이대연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 있다. 일 년에 연극 한 편은 꼭 하자는 약속이다. 연극을 한 지는 27~8년, 방송은 20여년 가까이 된다. 아직은 매년 연극을 해왔지 연극을 거른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 '먼 데서 오는 여자' 이대연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 있다. 일 년에 연극 한 편은 꼭 하자는 약속이다. 연극을 한 지는 27~8년, 방송은 20여년 가까이 된다. 아직은 매년 연극을 해왔지 연극을 거른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 박정환


- 영화와 드라마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지만 연습 기간은 7월 초부터 한 달 보름 이상을 가졌다.
"<먼 데서 오는 여자>는 배우 단 둘이서 90분을 이끌어야 한다. 만일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고 무대에 올랐을 때 망신당하는 건 배우 자신이다. 다른 공연을 연습할 때에는 제가 연기하는 장면만 연습하고 나머지는 조금 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연극은 단 둘이 하는 공연이라 2시간만 연습해도 지친다.

아는 이들에게 공연을 보러 오라고 하면 대충 보고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는 이야기겠구나' 하고 신파적인 공연으로 생각하기 쉽다. 감상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배우가 감상적이지 않고자 많이 노력했다. 연습한 지 2/3 쯤 되었을 때에는 너무 감정에 몰입해서 연습할 때 눈물이 줄줄 흘렀다. 배우가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면 안 되겠다 싶어서 감정을 꾹 참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을 보여준다."

- 무대에 섰던 배우가 유명세를 타면 무대를 떠나기 쉽다. 하지만 이대연씨는 최소한 일 년에 한 편 이상은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TV나 영화처럼 다른 매체가 주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무대는 배우가 관객과 직접 만나서 100%를 모두 던져야만 한다. 무대에서 얻는 희열과 기쁨은 방송과는 다르게 100% 배우가 가져갈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예전처럼 연극 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한다.

그럼에도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 있다. 일 년에 연극 한 편은 꼭 하자는 약속이다. 연극을 한 지는 27~8년, 방송은 20여년 가까이 된다. 아직은 매년 연극을 해왔지 연극을 거른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방송이나 무대로 간 분들이 무대로 돌아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무대로 돌아오는 걸 무서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대만의 매력을 알면서도 돌아오지 못하는 배우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 이성계로 출연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800만을 넘었다.
"제가 <공동경비구역 JSA>에 출연했을 때는 극장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지방 관객은 집계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업계에서는 천만 영화라고 이야기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600만이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제 영화 프로필로는 가장 많은 관객 동원을 한 영화가 되었다. 많은 관객이 관람한 영화에 일조할 수 있어서 기쁘다."

이대연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먼 데서 오는 여자 세월호 사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