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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다녀온 후 인간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스스로 변했다고도 한다. 인생 후반전이 시작되는 50세에 만난 그곳 덕분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돌아보았단다. 오죽하면 글을 쓰는 자신의 방에 '행복사회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일 생각까지 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에게 '그곳' 덴마크는 지난 1년 6개월 내내 행복한 화두였다.

기업에게도 노동자에게도 좋은 나라 만들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09 / 1만 6000원)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09 /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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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무엇이 그를 그토록 매료시켰을까. 덴마크는 유엔(UN) 행복지수 조사에서 2012년과 2013년 연속 세계 1위였다. 2011년 오이시디(OECD) 발표 조사에서는 생활 만족도 1위, 직업만족도 2위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인들은 각각 26위, 27위를 차지했다. 직업만족도는 심지어 '꼴찌'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덴마크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도 한다.

덴마크에서는 500인 이상 기업의 65%가 평직원이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은 70%를 넘는다. 유럽 연합의 평균이 20% 후반대, 우리나라가 10%대에 머무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런 높은 노조조직률 덕분일까. 덴마크에는 전국 식당 종업원 노조인 '3F'까지 있다고 한다. 여기에 가입한 노동자 수만 32만 명이 된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더 놀라운 점이 있다. 덴마크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은 대략 8년이라고 한다. 평생동안 6회 정도 직장을 옮길 수 있는 기간이다. 유럽 국가들 중 가장 잦은 이직이다. 우리 '상식'으로는 전직에 뒤따르는 심리적 불안감과 경제적 불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 그런데도 덴마크 노동자들의 일 만족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거시적인 지표들이어서 피부에 와 닿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저자가 만난 '정말(丁抹, 덴마크의 한자음 차용 표기)' 사람들의 육성을 들어보자. 17살 때부터 40년 동안 요리사와 웨이터로 일해 온 클라우스 페테르센은 열쇠 수리공으로 일하는 22살짜리 아들이 자랑스럽다. 자존감과 연대의식이 바탕에 깔린 덕분에 늘 즐겁고 당당할 수 있다.

권위 있는 '덴마크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 상'을 수상한 글로벌 제약회사 로슈 덴마크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직원과 가족들을 위해 저녁 도시락을 준비해 준다. 원한다면 직원과 그 가족의 세탁물 처리나 우체국 업무도 회사가 대신해 준다. 저녁 준비 시간을 아껴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사소하지만 성가신 일들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의사나 변호사 등 고소득자는 소득의 50% 전후를 세금으로 내면서도 억울해하지 않는다. 저자는 취재 기간에 만난 고소득자 10명에게 세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들은 저자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구동성으로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자기 수입의 56퍼센트를 세금으로 내고 있는 변호사 에리크 크리스티안센도 마찬가지였다.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냅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복지 제도 덕분에 서로를 믿는 사회가 됐잖아요." (본문 107쪽 중에서)

덴마크에서는 일자리를 잃으면 기존 월급의 최대 90% 수준에 이르는 실업보조금을 2년 동안 받는다. 대학 등록금이 공짜고, 병원비도 평생 무료다. 높은 세금이 가져다주는 혜택들이다. 저자는 덴마크 사람들이 자신이 낸 세금을 정부가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기 때문에 많은 세금을 내도 저항감이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평균적으로 수익의 26% 정도를 세금으로 내면서도 조세 저항감이 큰 우리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유연안전성'을 위한 '황금 삼각형', 덴마크를 바꾸다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은 일터와 사회와 학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행복사회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저자는 자유·안정·평등·신뢰·이웃·환경 등의 6개 가치를 제시한다. 덕분에 '개인'은 자존감을, '우리'는 연대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행복지수 1위 국가의 저력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무척 낯설게 다가왔던 '유연안전성(flexicurity)' 개념부터 보자. 이는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이 결합된 말이다. 기업에는 노동자의 채용과 해고에서 유연성을 보장하고, 노동자에게는 안정된 소득과 고용을 보장한다는 뜻이다.

높은 재취업률은 덴마크의 유연안전성 모델이 가장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언제나 해고될 가능성이 있되 재취업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래서 덴마크 사람들은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돼도 크게 충격 받지 않는다. 전직의 기회로,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는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처럼 격렬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 안전성은 부실하고 합의되지 않은 유연성만 강조되는 한국의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본문 77쪽 중에서)

덴마크에서는 매년 전체 직장인의 3분의 1가량이 직장을 옮긴다고 한다. 그런데도 유연안전성 모델 덕분에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 저자는 그 밑바탕에 노동자-경영자-정부의 협력을 뜻하는 '황금 삼각형(golden triangle)'이 '신뢰의 체인'을 형성해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효율과 평등의 논쟁을 넘어 그 두 가지를 긍정적으로 결합하는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학교의 철학과 전통은 덴마크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모두의 정신적·문화적 토대이자 행복지수 세계 1위 국가의 중요한 토대이다. 1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자유학교의 출발점에 덴마크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콜라이 그룬트비(1783~1872)가 있다.

그룬트비는 '노래'와 '살아 있는 이야기'를 통한 '함께 나누기'를 교육의 주요 방법으로 주창했다. 시민과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도록 아래로부터의 교육을 주장했다. 이를 통해 그룬트비는 '깨어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저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미래학자 롤프 예센의 입을 빌려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의 나라가 된 역사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우리 덴마크인들은 참 행운아들입니다. 우리 역사에 그룬트비 같은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그는 민주주의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주창했습니다. 민주 헌법보다 중요한 것이 시민의 자유, 시민의 각성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시민 교육에 열정을 바친 겁니다. 오늘날 그는 덴마크의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본문 277쪽 중에서)

자유를 향한 덴마크인들의 열정에도 그룬트비 정신이 흐르고 있다. 그룬트비가 유행시킨 '폴케(folke)'라는 말은 '민족성을 지닌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그룬트비가 이웃을 깨어 있는 시민으로 만드는 일을 진정한 사랑으로 여겼다고 말하면서, 그가 이를 덴마크의 문화와 시스템으로 만들고자 했고, 결국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그룬트비의 이웃 사랑은 즉흥적인 자선처럼 일회성 선행이 아니다. 그것과는 격이 전혀 다르다. 저자에 따르면 이웃 사랑은 형제애에 바탕을 둔 평등사회 구현과 연결된다. 이는 "부자가 적고 가난한 자는 더 적을 때, 우리 사회는 풍요로워진다"라는 그룬트비의 말을 통해 뒷받침된다.

그룬트비가 이런 믿음을 갖게 된 배경에는 덴마크의 아픈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1864년 덴마크는 독일(당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해 3분의 1에 이르는 국토를 빼앗기고, 인구의 5분의 2를 잃는다. 그 뒤 패전에 따른 절망감이 덴마크 사람들을 강하게 짓눌렀다.

그런 상황 속에서 덴마크는 그룬트비가 기틀을 세운 농민학교(자유학교) 운동, 협동조합 운동, 국토 개간 운동으로 새로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들 사회 운동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것. 덴마크판 '국가 개조'가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배경 요인이다.

그 출발점에 '깨어 있는 농민'이 있었다. 이들 상호간의 신뢰와 연대가 바탕이 되어 여러 가지 사회적 자본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깨어 있는 농민은 깨어 있는 노동자, 깨어 있는 시민으로 진화했다. 저자는 그 150여 년에 걸친 '깨어 있는 시민 만들기'가 덴마크를 오늘날의 행복지수 1위 국가로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곳곳에 뿌려지는 행복론, 싹 틔울 수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씨 뿌리지 않고 거두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길게 보고 뚜벅뚜벅 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미국식 자본주의 따라 배우기'라는,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 외에 다른 길도 있음을 돌아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자존감과 연대의식을 갖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위한 '나'의 일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저자는 군산 지역 시민단체인 '교육희망네트워크' 초청으로 군산에 와 강연을 했다. 그는 지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덴마크식 행복국가론'을 전파하고 있다. 대구 교육청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도 저자를 초청했다고 한다. 모두가 더불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그의 열정과 의지가 그 곳에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그날 강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글머리에 소개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질문을 했다. 우리 한국인에 대한 저자의 '믿음'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책 제목에서 던진 질문과 관련하여 우리가 행복해질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된다고 보는지 물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화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도 모두 같은 인간인데 우리는 왜 이 모양일까.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에도 변화의 기미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우리 현실이 너무 절망스러웠다. 저자 말을 들으니 덴마크를 부러워하며 열이 받아 웃통을 벗은 채 책을 읽은 독자도 있었다고 한다. 나의 '화'와 '절망'이 유별나지만은 않아 보였다.

저자에게서는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저자는 "한국은 세계의 모든 '쓰레기'가 모인 곳"이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저자의 답변이 이 책을 손에 쥐게 했다.

그리고 나는 책을 모두 읽고 가슴 한쪽에 자리 잡은 화와 절망을 버리기로 했다. 이런 책을 읽으면 부러움에 화가 나 웃통을 벗을 것 같은 독자들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미리 간곡히 말하고 싶다. 이 책에 그 까닭이 담겨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09 / 1만 6000원)

이 기사는 정은균 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대표 기자, #덴마크,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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