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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이 든 가을 들판을 거칠 것 없이 달립니다.
 노랗게 물이 든 가을 들판을 거칠 것 없이 달립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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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유난히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여름이 더디 가는 것과 달리 가을은 뭐가 그리도 바쁜지 잠시 짬도 주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짧아서 아쉽고 안타까운 게 가을이다.  

가을에는 놀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노루 꼬리 마냥 짧다는 가을 햇살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기라도 하는 듯 따갑게 내리쬔다. 들판은 노랗다 못해 샛노랗게 변해가고 마침내는 노란색을 단 한 방울도 더 보탤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때쯤이면 놀아도 노는 게 아니다. 햇살 한 줌도 그냥 비추지 않고 바람 한 줄기도 의미 없이 불지 않는다. 모두 바쁘게 몰아치며 돌아간다. 다가올 겨울을 예감이라도 하는 양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가을에는 놀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가을은 또 모든 것들에 물을 들인다. 하늘을 티 한 점 없이 맑게 물들이더니 산마저도 옷을 갈아입힌다. 산이 빨갛고 노랗게 물이 든다면, 들은 단 한 가지 색으로 옷을 입는다. 가을 들판은 노란색 일색이다.

단풍 중에서 가장 으뜸은 '나락(벼)' 단풍일 것이다. 그보다 더한 노랑이 또 있을까.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들판은 가을이 주는 최상의 선물이다. 그 들판 속으로 들어가면 창공은 끝없이 드높고 햇살은 눈 부시게 빛난다. 그래서 나선 걸까. 지난 11일 강화 심도 중학교의 통일 기원 자전거 달리기에 참여했다. 가을의 손짓을 모른 체하기에는 그 끌림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가을 들판을 달린다는 소리에 그만 나는 유혹 당하고 말았다.

운동장에 나란히 서있는 자전거들
 운동장에 나란히 서있는 자전거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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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을 달린단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들판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평화 전망대까지 가는 사제동행 걸음이 있다고 남편이 말했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날 아침은 달랐다. 뭔가 모를 설렘에 가슴 부풀어 있는 남편의 모습은 꼭 열서너 살 소년 같았다. 

마니산 아랫동네인 화도면 상방리에서 평화 전망대가 있는 양사면까지 가는 길을 그려보았다. 강화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다. 최단 거리로 가는 것도 아니다. 서쪽 동네인 외포리와 황청리를 거쳐 북쪽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못 잡아도 30 킬로미터는 넘을 것이다. 왕복으로는 근 70 킬로미터에 달할 그 길을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달린다니, 이보다 더한 가을 여행이 또 있을 것인가.  

자전거 타고 떠난 가을 여행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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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자전거를 세심히 손봐주고 있는 선생님들
 학생들의 자전거를 세심히 손봐주고 있는 선생님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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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따라가다 드넓은 망월리 들판 속으로 스며들어 달릴 자전거 부대의 모습을 그려본다. 가을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노란 들판 속을 거칠 것 없이 달릴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자유이면서, 가득함이다. 가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최상의 방법으로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나도 따라가면 안 돼? 내가 학생들 사진 찍어줄게요."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반색을 한다. 그러더니 눈을 빛내며 행사의 취지를 이야기해 준다.  

"얼마나 좋은 뜻이 담긴 자전거 하이킹인지 몰라. 평화전망대까지 갔다 오면 힘은 들겠지만 그래도 끝마치고 나면 결국 해냈다는 것에 학생들은 뿌듯한 마음이 들 거야. 그러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긍지를 갖게 되겠어?

이 경험이 오래도록 아이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서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늘 자신 있게 해나갈 수 있을 거야. 그런 의도에서 시작한 자전거 종주 기행이야. 양사면 평화 전망대까지 가는 길이니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바닷가의 철책을 따라 달리노라면 분명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거야."

가을 속으로 달려가니 기쁨과 환희가 피어오릅니다.
 가을 속으로 달려가니 기쁨과 환희가 피어오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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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을 하늘과 들판을 즐길 속셈으로 따라나서길 자청했는데 남편은 학생들이 얻을 교육적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남편의 말을 듣자 성취감에 들떠서 달아오를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분명 환하게 빛날 것이다.

강화도는 자전거 타기의 천국이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는 원래는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려 시대부터 바다를 메워 지금의 모습이 됐다. 간척했으니 들이 얼마나 넓을 것인가. 그 너른 들판에는 농 계들이 다닐 수 있도록 온 사방으로 길을 닦아 놓았다. 자동차 두 대가 서로 엇갈려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에는 농번기에나 바쁘지, 보통 때는 지나다니는 농기계나 차들도 없다. 그런 길을 자전거로 달린다니. 이보다 더 좋은 자전거 도로가 있겠는가. 

서둘러 아침을 먹고 심도 중학교로 달려갔다. 운동장에는 자전거들이 나란히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자전거 핸들에는 머리를 보호해주는 헬멧도 하나씩 다 걸려 있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선생님들의 세심한 배려가 헬멧에 담긴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학생들이 교문으로 들어온다. 모두 기대감으로 얼굴들이 빛나 보였다. 여학생도 여럿 보인다. 오늘의 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어린 여학생들이 이겨낼 수 있을까. 차량으로 지원하는 선생님들도 계시니 정 힘들면 자전거를 차에 싣고 돌아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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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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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심도 중학생들의 자전거 종주

강화 심도 중학교는 마니산 아래 있다. '심도'는 강화도의 옛 이름이다. 더구나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마니산 아래 있어서 산의 정기를 오롯이 받는 학교이니 심도 중학교는 강화의 정신을 이어받은 학교라 할 수 있다. 고운 심성과 알찬 실력, 그리고 큰 꿈을 가꾸고 키워가는 것을 목표로 60여 명의 학생이 오늘도 열심히 배우고 또 익히고 있다.

오늘의 자전거 종주를 기획하고 준비한 선생님으로부터 행사의 의미와 당부의 말씀을 듣고 17명의 학생과 3명의 선생님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섰다. 길을 안내할 선생님이 앞장서고 그 뒤를 여학생들이 따라간다. 그다음으로 1학년과 2학년 남학생들이 뒤따르고, 맨 뒤에는 체격이 좋은 3학년 남학생들이 줄을 지어 교문을 힘차게 빠져나왔다. 중간과 후미에도 선생님이 한 분씩 맡아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챙겼다.

이들이 달릴 길은 대부분 자전거 도로이거나 들길이지만 간혹 찻길의 갓길을 달려야 하는 구간도 있다. 특히 이날은 외포리 어판장 주변에서 새우젓 축제가 있는 날이라 그곳을 지날 때 주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강화경찰서 교통계 소속 경찰관이 나오셔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호위를 해주었다. 뜻깊은 행사에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니 행사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3학년 형들이 앞장서서 달려갑니다.
 3학년 형들이 앞장서서 달려갑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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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영글어가는 들판 안으로 들어간다. 코스모스 꽃대가 바람에 온몸을 내맡긴 채 휘청대며 손짓을 하고, 모시옷을 차려입고 나들이라도 가는지 억새들도 길가에 서서 배웅을 한다. 바람을 가르며 휙휙 지나간다. 얼굴이 바알갛게 물들었다. 기쁨과 환희가 담긴 얼굴이다. 그것은 또 '거침없는 행진'이기도 하다. 바람도 하늘도 그리고 가을 햇살까지도 다 나와서 응원을 보내고 있는데 누가 이들을 막을 것인가. 

얼마 안 가 해안 도로가 나왔다. 외포리까지 가는 이 길에는 자전거 도로가 다 만들어져 있다. 왼편으로 바다를 끼고 오른편에는 노란빛으로 물이 든 들판이다. 여학생들을 먼저 출발시키고 그 뒤를 1학년 남학생이, 그리고 마지막에 3학년이 출발했건만 어느새 선두그룹이 바뀌었다. 자꾸만 뒤로 처지는 여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생님 한 분이 아예 뒤로 빠져 아이들에게 힘을 내라고 북돋워 준다.

자전거 한 대가 멈춘다. 뭐가 잘못됐는지 이리저리 들여다봤지만 잘 해결이 안 되는 모양이다. 뒤따라 오던 지원 트럭이 멈추더니 얼른 다른 자전거로 교체해준다. 기어에 문제가 있어 고생하던 학생은 새 자전거를 타고 다시 쌩하며 달려간다.  

망월 들판 앞으로 별립산이 보입니다.
 망월 들판 앞으로 별립산이 보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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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함께 달리다

가을 바다는 한가롭게 햇살과 논다. 하얀 뱃살을 다 드러내놓고 까르르 웃어댄다. 그때마다 바다는 반짝인다. 들에는 햇살이 지천으로 쏟아져 내린다. 햇살은 공짜니 마음껏 누려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자전거 부대는 그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달린다. 바람도 옆에 끼고 달린다. 그런 그들에게 거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전거 부대를 위해 중간중간 새참이 마련됐다. 마치 마라톤 선수들이기라도 한 양 음료수며 바나나 등을 마시고 먹으며 힘을 보충한다. 힘들어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모두 신이 나서 우쭐대며 나아간다.  

출발한 지 거의 두 시간이 지나 망월리 들판 속으로 들어왔다. 망월리는 들판 한가운데 동네가 있다. 승용차로 달려가도 한참을 가야 그 동네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망월 들판은 크고도 넓다. 드문드문 추수를 끝낸 빈 논들이 보이고 한창 벼를 베고 있는 트랙터들도 있다. 그 너른 들에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모두 기계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일손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리라. 

모시옷을 차려입고 나들이를 가던 억새들도 손을 흔들어줍니다.
 모시옷을 차려입고 나들이를 가던 억새들도 손을 흔들어줍니다.
ⓒ 전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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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군 단위 지역으로는 전국에서 쌀 생산량이 많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열 마지기 2000평 정도만 농사를 지어도 중농 소리를 들었던 우리 고향과 달리 강화도에서는 기본적으로 1만 평 정도씩은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그렇게 큰 농사를 지으니 소득도 당연히 많을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논농사를 짓지 밭은 별로 없다. 밭농사라는 건 일 년 내내 고생하며 일을 해야 하지만 그에 비해 논농사는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간다. 모내기 철과 추수할 때를 빼고는 그다지 손이 갈 일이 별로 없는 게 논농사다. 강화도 농부들이 여유가 있는 이유다.

끝 간 데 없이 넓은 망월 들판을 달리면서 큰 들논 한 떼기를 갖는 게 소원이었던 우리 부모님이 떠올랐다. 경지 정리를 한 들논 한 자락을 가지는 게 산밑 동네였던 우리 마을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큰 들논은 수로가 잘 갖춰져 있어 가뭄이 들어도 걱정이 없다. 그러나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은 가뭄이 들면 물을 퍼서 올려야 했고, 다듬고 손 봐야 할 잡일도 많았다. 이렇게 넓은 망월 들판을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이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하실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 부대의 뒤를 따라서 간다. 학생들의 얼굴이 빛난다. 스스로 생각해도 흐뭇하고 뿌듯할 것이니 어찌 빛나지 않겠는가. 강화의 최남단에서 북쪽 끝까지, 30 킬로미터도 넘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으니 저절로 신이 날 것이다.   

평화와 통일 꿈꾸며 밟는 페달

철책을 따라서 달립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빌었습니다.
 철책을 따라서 달립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빌었습니다.
ⓒ 전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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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면 얼마의 두려움과 망설임이 필연적으로 따라오지만 그러한 것들을 넘어서면 도전은 무한한 자긍심을 돌려준다. 이렇게 한 번 자기 극복의 기쁨을 누려본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을 들판을 달린 이 학생들은 오늘의 이 느낌을 평생 간직하고 살 것이다. 

들 길을 따라서 달리다가 다시 자전거 도로로 들어왔다. 빠르게 차들이 지나간다. 빨리 가는 차가 부럽지 않은 것은 스스로 자랑스럽기 때문이리라. 점심을 예약해 둔 식당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학생들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점심을 먹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간다. 강화도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이지만 남쪽 동네에서 자란 터라 철책도 또 검문소도 낯선 모양이다. 들판 저 너머로 우리나라 산과는 다른 모습의 산들이 보인다. 

"산이 왜 저렇지요? 나무가 안 보여요."

가을 들판을 달립니다.
 가을 들판을 달립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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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산은 민둥산이다. 산을 개간해서 농토로 만든 곳이 많은 데다 연료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베어다 때서 산에 나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땔감으로 나무를 쓴다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풍요를 누리며 자란 세대이니 북한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철책과 바짝 붙어 있는 길을 따라 달린다. 평상시에는 민간인이 다닐 수 없는 길이지만 통일 기원 자전거 종주 팀을 위해 군대에서 특별히 허가를 해줬다. 철책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도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처져 있다. 그것은 우리의 관념이 만든 울타리이자 분단 선이다. 어쩌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철책보다 우리의 생각 속에 박힌 이 울타리들이 더 견고하고 완강할지도 모른다.

북녘의 들판도 노랗게 물들어 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또 추수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학생들처럼 북한에도 중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숲이 우거진 남쪽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의 처지를 모르니 생각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가을 하늘 아래 마음껏 날개를 펴며 꿈을 꾸는 것은 남북의 학생들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근 다섯 시간이 걸려 목적지인 평화 전망대에 도착했다. 높다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평화전망대는 원래 '제적봉'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적을 제압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던 곳이 평화를 생각하고, 원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적으로 생각하면 평화는 요원한 것이지만 한 형제로 바라보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란 생각도 든다.

억새들도 응원을 합니다.
 억새들도 응원을 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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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것을 견디면 보람이 찾아온다

모두 북한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빌었다. 그리고 오늘 자전거를 타고 평화전망대까지 달려온 것처럼 북쪽 동네들도 달려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통일이 되면 반드시 자전거로 개성까지 달려가 보겠다며 불끈 주먹을 쥐는 아이도 있었다.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까마득한지 한숨을 내쉬는 학생들도 있다. 안장에 쓸린 엉덩이도 아프고 다리는 무거워서 페달을 밟을 힘도 없다. 지치고 힘들어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포기하는 학생이 없었다. 힘들면 지원조로 뒤따라오는 선생님들 차를 타고 돌아가도 된다고 했지만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해온 노력이 아깝다는 마음과 함께 끝까지 완주해서 스스로 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며 다시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뒤에 처진 여학생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시는 선생님.
 뒤에 처진 여학생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시는 선생님.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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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한 번 지나갔던 길이기도 하고, 또 끝이 보이는 길이라서 가깝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도 엉덩이는 배길 것이고 종아리도 아파서 쉬고 싶을 것이다. 도착하면 탕수육에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빨리 집에 가고 싶을 것이다. 오늘의 장도를 이겨낸 자랑스러운 모습을 부모님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일지도 모른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왔다. 교실 안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다르게 들떠 있었다. 평화전망대까지 자전거로 갔다 온 학생들은 뭔가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의 얼굴에는 부러움과 함께 아쉬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년에는 꼭 가서 자신도 이 기쁨을 맛보겠다며 다짐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제힘으로 70 킬로미터를 달렸다. 그것은 용기 있는 선택이었고, 또 도전이었다. 혼자라면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있어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앞뒤에서 이끌어준 선생님들의 북돋움이 없었다면 중간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을 원 없이 달렸다. 페달을 밟는 두 다리는 거침이 없었고 그런 학생들 옆으로 바람이 휙휙 지나갔다. 그 들판에서 학생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바람도 구름도 그리고 하늘까지도 모두 그들 편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완전한 자유를 맛보았다. 가슴 가득 차오르는 희열 또한 느껴보았다.

이제 그들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힘든 것을 참고 견딘 뒤의 성취감을 맛보았던 터라 어떤 애로 사항을 만나더라도 극복하고 이겨낼 것이다. 바삐 가는 가을을 온몸으로 품었던 하루였다. 가득 찬 기쁨과 자신감을 얻었던 자전거 종주였다.

노랗게 물이 든 가을 들판
 노랗게 물이 든 가을 들판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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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화도, #강화 심도중학교, #심도중학교, #자전거, #평화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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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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