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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두령이 연주하는 팬플루트. 옆에서는 그의 부인이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다. 장흥 마실장에서 만난 풍경이다.
 산적 두령이 연주하는 팬플루트. 옆에서는 그의 부인이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다. 장흥 마실장에서 만난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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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양치기'다. 팬플루트의 감미로운 선율을 타고 흐르고 있다. 시골 장터에서 만나는 선율이 익숙하지 않다. 구레나룻이 멋스럽게 난 사람이 연주를 하고 있다. 장터를 찾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팬플루트를 연주하는 이는 주정필씨다. 그는 전남 화순군 이서면에서 민박집 '산적 소굴'을 운영한다. 자칭 산적 소굴의 '두령'이다. 그는 요즘 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꽃차와 장아찌, 대추 등을 싣고 나온다. 흡사 마실을 가듯이 나선다. 하모니카 솜씨가 남다른 부인도 동행한다.

주씨가 팬플루트를 연주하고 있는 장터는 '마실장'이다. 조그마한 장터지만 나름대로 튼실하다. 마실장은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용산오일장 한쪽에 선다. 오일장은 매월 1일과 6일에 선다. 마실장은 이 가운데 토요일과 일요일이 겹치는 날에만 선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단 2시간만 열린다.

귀농·귀촌자가 함께 모여 어울리는 장터

젊은 귀농자와 귀촌자들이 장꾼으로 나선 장터. 현지 주민들이 손님으로 장터를 찾는다. 마실장의 특징이다.
 젊은 귀농자와 귀촌자들이 장꾼으로 나선 장터. 현지 주민들이 손님으로 장터를 찾는다. 마실장의 특징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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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장은 부모가 자녀와 함께 나다닌다. 계란 꾸러미를 팔고 있는 장터 풍경이 정겹다.
 마실장은 부모가 자녀와 함께 나다닌다. 계란 꾸러미를 팔고 있는 장터 풍경이 정겹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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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마실장을 찾았다. 고요하던 장터가 왁시글덕시글하다. 아이들도 신이 나 뛰논다. 하모니카 연주를 벗 삼아 책을 읽는 사람도 눈에 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만의 공간이었을 난장에 청년들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소문으로 듣거나 알음알음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귀농 혹은 귀촌자들이다. 장흥과 해남, 강진, 보성은 물론 멀리 장성, 화순, 나주에서도 찾아왔다. 자신들이 직접 가꾼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판다. 물물교환도 한다. 농촌생활에 긴요한 정보도 주고받는다. 요즘 시골 장터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 아직 남아있다.

"농사를 짓던 주변의 아줌마 서너 명이 '모여서 놀자'고 시작한 겁니다. 가끔 만나서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게미지게' 살아보자고요. 장난삼아서 시작한 건데 이렇게 커져 버렸네요."

마실장을 처음 제안했던 김승남씨의 말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서로 안부도 물으면서 시들어가는 오일장을 살려보자고 마음을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게 지난 2013년 4월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마실장이 지금은 장흥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장터에 갖가지 효소와 잼이 진열돼 있다. 장흥 마실장에서는 보통의 장터와 달리 장꾼들이 직접 만든 것들이 나온다. 마실장의 특징이다.
 장터에 갖가지 효소와 잼이 진열돼 있다. 장흥 마실장에서는 보통의 장터와 달리 장꾼들이 직접 만든 것들이 나온다. 마실장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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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물건을 고치는 장꾼들의 표정은 언제나 진지하다. 귀농자와 귀촌자들이 꾸미는 작은 장터에서도 그렇다.
 갖가지 물건을 고치는 장꾼들의 표정은 언제나 진지하다. 귀농자와 귀촌자들이 꾸미는 작은 장터에서도 그렇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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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장터지만 물건은 '풍성'... 입이 호강한다

"어물전 두어 곳, 과일전 한 곳으로 시작했는디... 지금은 제법 장터 냄새가 난당께. 장은 역시 시끌벅적해야 제 맛이 나제."

옛 장터의 모습을 떠올리는 터줏대감들도 이구동성이다. 이제는 흥이 나는 장터로 변했다. 하긴 장터를 찾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리운 세상인데, 이 정도면 신명이 절로 날 것 같다.

장터는 '반짝' 서지만 물건은 풍성하면서 알차다. 유기농산물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샛골여름지기'네에서는 유기농 양파와 마늘잼, 무화과잼이 나왔다. '게으른 농부'네가 자연농업으로 지은 해바라기씨도 있다. 방촌 김현욱씨는 달걀 꾸러미를 가져왔다. 그가 시래기와 풀을 먹여 직접 키운 촌닭이 낳은 달걀이다. 화순 산적소굴 두령부부가 싸온 죽순장아찌와 밤도 보인다.

단감과 고구마 말랭이, 수제 단무지, 고추장, 막걸리, 곶감식혜, 구들에서 띄운 청국장도 정갈하다. 수제 치즈와 건포도 쿠기, 초코칩, 빵, 잼, 호떡, 밤호박조각 떡 케이크도 먹음직스럽다. 모두 유기농업으로 가꾸거나 직접 만든 먹을거리들이다. 시식도 할 수 있다. 갓 지어온 잡곡밥에 갖가지 반찬을 곁들어 먹는 맛에 입이 호강한다.

소꿉놀이 같은 장터. 몇 백원에서부터 몇 천원짜리 물건이 즐비하다. 장흥 마실장의 정겨움이다.
 소꿉놀이 같은 장터. 몇 백원에서부터 몇 천원짜리 물건이 즐비하다. 장흥 마실장의 정겨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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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도 장꾼으로 나섰다. 아이들에게 마실장은 소꿉놀이 공간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도 장꾼으로 나섰다. 아이들에게 마실장은 소꿉놀이 공간이기도 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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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도 싸다. 1만 원을 웃도는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단돈 1000원짜리 물건이 수두룩하다. 비싸봐야 5000원이다. 젊은 장꾼들의 손도 크다. 듬뿍듬뿍 퍼주는 후한 인성이 장터를 더 풍요롭게 해준다. 여기저기서 "살림 거덜 나것소", "자그마치 주쇼"하며 정겨운 덕담이 오간다.

수공예품도 장터를 빛낸다. 보성 '까끔살이' 공방에서 빚은 접시도 아기자기하다. 오롯이 손으로 깎아낸 비자나무 수저와 대로 만든 젓가락도 있다. 앙증맞은 목공예품도 즐비하다. 한량처럼 솔방솔방 다니며 장터를 훑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눈길 끄는 죽공예품 시연.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대바구니 하나가 금세 만들어진다.
 눈길 끄는 죽공예품 시연.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대바구니 하나가 금세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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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는 농사정보 교환의 공간이기도 하다. 마실장에서 만난 귀농자가 서로 정보를 나누고 있다.
 장터는 농사정보 교환의 공간이기도 하다. 마실장에서 만난 귀농자가 서로 정보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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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는 교육의 현장, 귀농 준비하는 사람들도 찾아와

나주에서 온 죽공예가 김막동 할아버지의 죽공예품 시연도 눈길을 끈다. 흉터투성이인 거친 손으로 대를 쪼갠 올대를 지그재그로 엮어내는 솜씨가 예술이다. 눈 깜작할 사이에 대바구니 하나가 만들어진다. 귀촌한 제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품새도 당당하다.

이 마실장은 어린 자녀들한테도 교육의 현장이다. 장터 한쪽에 난장을 펴고 장난감과 인형을 갖고 와서 판다. 강아지도 데리고 나온다. 필요한 물건으로 서로 교환도 한다. 마실장이 아니고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각광을 받고 있다. 귀농자와 귀촌자 20여 명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귀농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마실장을 찾는 이유다. 마실장은 이래저래 소중하고 귀한 남도의 새로운 장터다.

장터에서 책을 보는 풍경은 흔치 않다. 하지만 장흥 마실장에서는 가능하다.
 장터에서 책을 보는 풍경은 흔치 않다. 하지만 장흥 마실장에서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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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실장, #장흥, #남도장터, #귀농귀촌,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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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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