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투 러브 국내 스페셜 포스터

▲ 타임 투 러브 국내 스페셜 포스터 ⓒ 인벤트 디

날은 쌀쌀하고 옆구리는 시려온다. 블록버스터와 공포물의 시기가 지나고 로맨틱 코미디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증거다.

만나고 사랑하고 위기를 겪지만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 남녀는 로맨스를 담당하고, 주인공의 친구들은 웃음을 책임진다.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감동을 기계적으로 버무린 탓에 얼핏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본적인 설정부터 흐름과 구성, 심지어는 캐릭터까지도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로맨틱 코미디의 현주소다.

여기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를 벗어던지고자 노력하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전형성을 이용하면서도 진부함을 경계하는 참신한 작품, 신인급 감독인 저스틴 리어든이 연출하고 크리스 에반스가 주연한 <타임 투 러브>가 그것이다. 로맨스와 코미디의 정형화된 두 축을 가져가면서도 장면연출과 흐름에서는 참신한 시도가 이어져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성에 지친 관객들에게는 제법 괜찮은 대안일 수 있겠다.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후 사랑 불감증에 빠진 시나리오 작가 '나'는 어느날 참석한 자선파티에서 느낌이 통하는 '그녀'를 만난다. 나는 첫만남에서부터 그녀가 나의 짝임을 직감하지만 그녀의 곁엔 그녀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한 애인이 있다. 그날 이후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그녀를 찾아 온갖 자선파티를 찾아다니는 나. 우여곡절 끝에 운명처럼 그녀와 재회하지만 그녀는 내게 애인과 곧 약혼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전형적인 장르 가운데 참신함을 위한 장치들

타임 투 러브 영화는 이처럼 나(크리스 에반스 분)의 자아를 시각화시켜 표현한다

▲ 타임 투 러브 영화는 이처럼 나(크리스 에반스 분)의 자아를 시각화시켜 표현한다 ⓒ 인벤트 디


영화는 독특하게도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전개된다. 3인칭 관찰자 시점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혼용하는 영화는 주인공인 '나'의 독백을 통해 '나'와 '그녀'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로부터 서로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주인공에 몰입하여 그들의 로맨스에 공감하게 하는 장치로 기능하는데, 이런 시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인 주인공 '나'가 한 번도 써 본적 없는 로맨틱 코미디를 써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영화 속에 등장시키는데, 이것이 실제 관객들이 보는 영화와 대비되어 참신함을 느끼게 하는 장치로 쓰인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늘 자신을 따라다니는 자아를 시각화시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몇몇 장면에서의 세련되고 기발한 연출을 통해 참신한 인상을 더한다. 특히 주인공이 그녀를 찾아 온갖 자선대회에 참가하는 장면이나 할아버지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장면,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영상화한 장면 등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하다.

영화는 에피소드가 벌어지는 타이밍을 통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성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술에 취해 그녀의 애인에게 얻어맞은 후 갑작스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등이 그러하다. 전형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도식적인 전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서도 이와 같은 독특한 설정들이 있어 영화는 관객에 참신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자기 색깔을 가진, 흔하지만은 않은 로맨틱 코미디

 <타임 투 러브>에서 조선시대 유생이 된 크리스 에반스.

<타임 투 러브>에서 조선시대 유생이 된 크리스 에반스. ⓒ 인벤트 디


물론 이와 같은 참신함은 양념일 뿐이고 영화의 정체성은 현실과 판타지가 적절히 어우러진 로맨틱 코미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주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 틀 안에서 약간의 유연성을 도모하는 이와 같은 영화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만남으로부터 위기, 전환, 결말까지 이어지는 똑같은 전개를 얼마나 유쾌하고 세련되게 할 수 있는가가 로맨틱 코미디의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이고, 바로 그 측면에서 <타임 투 러브>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가 아닌가 한다.

마블 시리즈의 히어로이자 <설국열차>를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은 크리스 에반스는 이 영화 속에서 조선시대 양반으로 분해 직접 한국어 대사를 소화한다. 다소 과장되었다고 생각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이 그리 흔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녀'의 역할을 맡은 미셸 모나한은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지만 영화 전반을 통해 고혹적인 매력을 과시하며 이로부터 충분히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듯하다.

형편 없는 오프닝에도 매력적인 러닝타임을 거쳐 인상적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타임 투 러브>. 전형성 속에서도 특별함을 추구하고 뻔하지만 공감되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호감이 가는 영화다. 10월 23일 개봉, 94분, 청소년관람불가.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goldstarsky)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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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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