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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문학박물관 앞에서 허형만 원로 시인 김윤숭 관장, 장규제 학예사, 박행달 함양 문화관광 해설사, 시인학교 수강생들과 함께 기념 촬영
▲ 문학기행 기념 사진 지리산 문학박물관 앞에서 허형만 원로 시인 김윤숭 관장, 장규제 학예사, 박행달 함양 문화관광 해설사, 시인학교 수강생들과 함께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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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 흔들어
이별을 말하지 않아도
내사 다 아는데
굳이 붉은 가슴 열고
부리지 못한 마음 내보일까
내내 감추던 속내
이제 사 서러운 빛으로 다가와 가슴시리다

가을이다. 여름내 푸름 속에 갇힌 핏빛이 이제야 제 색을 찾아 결별을 고하고 있다. 그 사이로 가을 햇살이 스며들어 번득일 때마다 눈물겨운 생의 종착역에서 흔드는 손짓 같아 가슴이 아리다.

문학관 중앙에 배치된 목판
▲ 지리산 문학관 목판 문학관 중앙에 배치된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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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을을 맞아 지난 10월 18일, 순천삼산 도서관 시인학교에서는 지리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리산 문학 박물관으로 문학기행을 갔다.

오전 9시, 도서관 앞에 집결하여 출발한 일행은 경남 함양으로 향했다. 아직은 푸름 속에 갇혀 제 색을 찾지 못한 잎들이 많아 간간이 얼굴을 내민 단풍잎들만 아쉬움으로 바라보며 가는데, 구례 터널을 지나자마자 산자락을 따라 길게 뻗은 안개가 반겼다. 고운 단풍 대신 산허리를 휘도는 안개를 위안 삼아 가다 오전 11시 무렵, 지리산 문학 박물관에 도착했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지리산 가는 길 961번지에 위치해 있다.

2009년 4월 20일 최초 죽염 발명가인 인산 김일훈 선생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인산의 삼남인 김윤숭 시인이자 수필가가 설립해 2009년 6월 8일 개관한 문학 박물관이다. 마치 창고를 방불케 하는 조립식 건물로, 입구에서 낯선 이들의 방문을 저지라도 하려는 듯 하얀 개 한 마리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지리산 문학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김윤숭 관장과 장규재 학예사에게서 지리산 문학 박물관 설립과 그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 문학관을 둘러보았다.

'지리산 문학관'이라는 한자가 검은 색으로 또렷하게 새겨진 목판을 중앙으로 수집한 작품이 진열되어 있는 문학관에는 지리산 출신 시인 40여 명을 적은 액자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위로 송수권 시인의 '지리산 뻐국새' 외 여러 시인들의 액자가 걸려 있고 맞은 편 벽에도 허형만 시인의 '겨울 들판을 거닐며' 등 원로 시인들과 여러 시인들의 작품이 두 벽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이 외에도 최치원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의 작품이 진열된 진열장에는 한문학, 고전문학, 현대문학 등 수집된 자료나 시집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앞으로는 문인들이 기증한 그림, 도자기, 서예 등 여러 애장품이 있었다.

시조시인 사봉 장순하 기념관의 2만여 권의 책들
▲ 사봉 장순하 기념관 시조시인 사봉 장순하 기념관의 2만여 권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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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을 둘러본 뒤 2012년 2만여 권의 장서를 지리산 문학관에 기증한 장순하 시조 시인의 기념관인 사조 시봉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두들 입이 떡 벌어졌다. 현대 시조 태두인 가람 이병기 사사를 받으며 시조의 맥을 이어온 시조 시인 장순하 시인이 기증한 수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마치 문학의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예전엔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고개였고 얼마전 타이어 광고로도 유명한 오도재.
▲ 오도재 예전엔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고개였고 얼마전 타이어 광고로도 유명한 오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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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봉 기념관을 벗어나 박행달 함양문화관광 해설가의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담긴 오도재 스토링 텔링을 들으며,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도로이자 오묘하게 도를 깨닫는다는 오도재로 향했다.

오도(悟道)는 서산대사, 벽송대사, 사명대사, 민모대사, 완성대사로 이 오대사들이 지리산을 오가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구비구비 아름다운 오도재를 넘어 남계서원과 일두 고택, 회림동 계곡을 보기 위해 달렸다.

함향의 인재를 양성한 남계서원
▲ 남계서원 함향의 인재를 양성한 남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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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원로 시인이 고택을 둘러보고 있다
▲ 일두고택 사진 허형만 원로 시인이 고택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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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에 도착한 경남 항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 서원은 일두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곳으로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고 존속되어온 서원이다.

앞으로는 남계천이 흐르고, 넓은 들판 너머 백암산을 마주보고 있는 남계서원은 지형을 허물지 않고 언덕진 지형을 유지하며 지어진 서원으로 일두 정여창 외에도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곳이라 하였다.

일두 고택은 옛 선인들의 지혜와 배려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으며, 마당 왼쪽에 지붕처럼 드리운 해묵은 소나무에서 오랜 선비들의 깊은 학문과 절개를 읽을 수 있었다.

함양 화림동 계곡의 농월정
▲ 농월정 함양 화림동 계곡의 농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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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학기행지인 화림동에선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커서였을까? 골 깊은 지리산의 자랑인 기암괴석을 풍광 삼아 즐기던 선비들의 정자 문화를 기대했지만, 입구 공사로 길이 질척거렸고 정자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받침대까지 눈에 거슬렸다. 더구나 다리 쪽에서 보는 풍광을 찍다 일행이 차에 오른 줄 모르고 다른 일행을 따라가는 바람에 늦게 버스에 오르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그 바람에 동호정과 거연정은 차창으로 보게 되어 안타까운 점도 있었지만 집으로 오는 동안 스쳐가는 기억 하나가 뇌리에 머물렀다. 그저 진열해 두어야만 하는 지리산 문학박물관의 미비점이었다.

사설 문학박물관으로서 역사적 산 증거인 수많은 기증품을 좁은 공간에 진열하다 보니 일목요연하지 않은 점이 있었고, 사봉 기념관의 수많은 책들을 보관하는 것도 오랜 기간을 견뎌내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함양, 산청, 하동, 구례, 남원 등의 지자체나 관공서, 기업들이 함께 나서서 이제 막 첫발을 뗀 지리산 문학박물관을 지리산 문학을 함께 아우르는 커다란 지리산 종합문학박물관으로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순천투데이도 송고



태그:#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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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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