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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2014년,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 4.8%에 불과했던 혼자 사는 1인가구의 비율은 2012년 25.4%로 늘어났습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청춘플랫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청춘플랫폼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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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청춘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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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던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는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 축제'가 열렸다. 올해로 3회째다. 축제 부제는 '불을 끄고 볕을 켜다'. 축제에는 마을 엄마들, 아이들, 노인들, 국사봉 중학교 학생 등을 포함해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축제를 위해 마을 아이들은 한 달 동안 인형극 연습을 했다. 인형은 밥주걱, 뒤집개 등 재활용품으로 만들었다. 비 내리는 천막 안에서 아이들은 '성대골 절전 부엉이' 등을 공연했다.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마을의 귀환'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소개한 바 있는 성대골 마을은 도시 속 에너지 자립마을을 꿈꾸는 마을공동체다. 평범한 동네 아줌마들이 의기투합하여 아이들과 함께 대안 에너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협동조합형 마을기업 '마을닷살림'을 설립한 아줌마들은 동네에서 '에너지슈퍼마'켙''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도서관, 마을학교에 이은 또 다른 도전이다(관련 기사 : "밤에 잠만 자러 왔던 동네가 이렇게... 박원순 시장이 도청하나 봐요", '폭염' 한 달 전기료 1만6천원...놀라운 비결).

김소영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장(45)은 "지금까지 성대골 마을이 전기에너지에 대한 운동을 했다면, 앞으로는 난방에너지에 대한 운동을 하려고 한다"면서 "이를 위해 마을에 있는 건축물들의 살림살이를 돌보자는 취지로 '마을닷살림' 협동조합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만만하게 다가가기 위해 협동조합 공간 이름을 '에너지슈퍼마켙'이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슈퍼마켙은 에너지 효율, 절약, 생산을 위한 컨설팅, 나아가 시공까지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에너지슈퍼마켙의 받침 'ㅌ'은 에너지의 'E'를 뜻한다.  

도화공원에서 본행사가 끝나자, 엄마들과 아이들은 상도동 골목에 있는 '청춘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눔부엌'과 함께 '환경영화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 승규(29)와 가은(25)이 이들을 반겼다.

공모전 준비 위해 찾은 동네, 이사까지 온 이유

청춘플랫폼의 시작은 2012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축과 도시설계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던 승규, 동리, 재성은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 공모전 준비를 위해 성대골 마을을 찾았다. 그 때 처음 만난 사람이 김소영 관장이었다.

승규는 "관장님의 마을에 대한 철학과 열정이 남달랐다"면서 "에너지 자립이라는 거대한 목표와 함께 당장 시급한 학교문제에 이르기까지 열변을 토하며 말씀해 주시는 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큰 인상을 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세 청년이 성대골 마을을 찾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블랭크' 청년들이 성대골 주민들과 함께 만든 에너지카 '해바라기'
 '블랭크' 청년들이 성대골 주민들과 함께 만든 에너지카 '해바라기'
ⓒ 청춘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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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골 마을 '에너지 슈퍼마켙'. '블랭크'에서 설계·시공에 참여했다.
 성대골 마을 '에너지 슈퍼마켙'. '블랭크'에서 설계·시공에 참여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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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후, 성대골 마을이 서울시 주거환경관리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승규는 기초조사 연구원으로서 마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공모전 때문에 (주민들과) 알게 됐던 건데, 저희가 사업에 포함 안 되는 일들을 많이 했어요. 주민들과 협업해서 마을 축제를 기획하고, 문화 관련 동아리를 만든다든가, 에너지카 '해바라기'를 같이 만든다든가... 학교가 마무리 되면서 취업을 해야 하나,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지역에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기반이 조금씩 생기면서 여기에서 우리가 주민의 입장으로, 주민이 돼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듬해, 승규와 동리는 아예 성대골 마을로 거주지를 옮겼다. 수원에서 태어난 승규는 대학 진학 후에는 줄곧 자취를 했다.

"학교 다니면서 이사만 7번은 한 것 같아요. 유목민적인 삶을 살았죠(웃음). 그러면서 대학원 때는 '커뮤니티'를 연구하겠다고... 괴리감이 들더라고요.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서 진정성 있게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아이들 키우는 문제에서 시작된 성대골 마을공동체에 1인가구 청년들이 새로운 구성원으로 결합하면서, 가족 중심이던 성대골 마을의 외연이 이전에 비해 한층 넓어지고 있다.

주민들과의 소통 공간도 문을 열었다. 바로 청춘플랫폼이다. 낮에는 승규를 비롯한 4명의 청년들이 함께 하고 있는 설계·디자인 사회적기업 '블랭크'의 사무실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는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된다. 승규는 이곳 청춘플랫폼이 청년과 주민을 이어주는 거점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블랭크는 에너지 슈퍼마켙 설계·시공, 최근에는 마을 노인정 단열공사 작업에도 참여했다. 현재 마을 주민들이 구상하고 있는 공동주택 건축도 함께 할 계획이다.

"지역에 자리를 잡고 우리의 기술이나 재능을 활용해서 뭔가를 하게 된다면, 지속적인 마을살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모하게 도전을 한 거죠. 여기에서 오랫동안 살고 싶어서 주민의 입장으로 일을 하는 거랑, 외부인의 입장에서 일을 하는 거랑은 다르니까요."

점심마다 열리는 아줌마-청년들의 '나눔부엌'

매주 화 그리기 모임
매주 수 코바늘 모임

10월 2일 음악감상+환경영화제
10월 10일 도자기 술잔
10월 11일 집+놀이
10월 12일 과일청
10월 16일 토피어리 원데이 클래스
...
10월 23일 밥 같이 먹자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청춘플랫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청춘플랫폼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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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청춘플랫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청춘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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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플랫폼 유리창, 손으로 삐뚤빼뚤 그려놓은 10월 달력에 일정이 빼곡하다. 가은의 손글씨다. 대부분의 모임은 마을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된다. 음악회와 전시회도 열린다.

"처음에는 제가 원숭이인 줄 알았어요(웃음). 다들 와서 한번씩 쳐다보고 가니까. 들어와서 '여기 뭐하는 데예요?' 물어보지도 않아요. 그냥 쳐다보고 가요. 그래서 궁시렁 궁시렁 뭔가를 쓰기 시작했어요. 요즘에는 이렇게 써놓은 것 보고 동네 주민들이 많이 오세요."

가은은 청춘플랫폼의 공간매니저다. 낮에는 안양 석수동에 위치한 '스톤앤워터'라는 대안예술공간에서 교육관련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서울 상도동에서 청춘플랫폼을 지킨다. 가은은 안양에서 혼자 살고 있는 1인가구다.

이날 나눔부엌을 위해 가은은 따뜻한 어묵탕을 준비했다.

"게를 사오려고 했는데, 손질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오만둥이 사왔어요."

살가운 성격의 가은은 아이들과 유난히 잘 지낸다. 동네 아이들이 가게를 지나가면 꼭 "들어왔다 가라"며 부른다. 이날 엄마와 함께 외식을 하러 가던 한 아이는 가은이 만든 어묵탕을 한 번 맛보고는, "외식 하러 안 가겠다"며 울음보를 터트렸다. 가은은 "내가 요리를 너무 잘 해서 그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눔부엌은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됐다. 승규는 "집집마다 부엌이 하나씩 있는데, 그 부엌을 하나의 공간에서 공유할 수 있으면 재밌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점심마다 청춘플랫폼에서 나눔부엌이 열린다. 김소영 관장은 "에너지 슈퍼마켙 근처에 식당이 있었는데 최근 없어졌다"면서 "맨날 사먹으러 가기도 그렇고 해서 여기 블랭크 청년들이랑 같이 점심을 만들어 먹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날은 10명이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한다.

청춘플랫폼 '나눔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승규
 청춘플랫폼 '나눔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승규
ⓒ 청춘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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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플랫폼 나눔부엌에서는 반찬나눔이 진행되기도 했다.
 청춘플랫폼 나눔부엌에서는 반찬나눔이 진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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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매일 다르다. 간단하게 비빔밥을 해먹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집에서 감자탕을 만들어 오기도 한다. 이날 낮에는 라면을 끓여먹었다. 승규는 "맨날 시켜먹고 사먹는 게 반복됐는데, 당번제로 요리를 하게 되니까 좋다"고 말했다.

"밥 먹는 게 일상적인 거잖아요. 꼭 필요하고. 주변에 먹을 데가 마땅치 않으니까, 앞으로 주민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같이 밥을 만들어 먹으려고 해요. 반찬도 공유하고. 알고 보니까 이 근처 교회 청년부가 400명이더라고요. 청춘플랫폼에서 코바늘 수업 하시는 분도 그 교회 다니시는 분이고요. 엄청난 시장(?)이 있는 거죠(웃음)."

"세대차이로 갈등도 있지만, 그런 게 바로 마을"

청춘플랫폼 '나눔부엌'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는 성대골 마을 사람들(맨 우측이 김소영 관장)
 청춘플랫폼 '나눔부엌'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는 성대골 마을 사람들(맨 우측이 김소영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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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플랫폼이 문을 연 지 1년. 마을에서 일을 하기 위해 성대골 마을에 들어왔지만, '일'과 '마을 살이'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마을 일만으로 먹고 살기란 아직 어렵기 때문. 현재 공간운영비와 공간매니저 임금은 '블랭크' 수입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승규는 "블랭크와 청춘플랫폼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외부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외부 일과 마을 일의 접점을 어떻게 찾을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공간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도 고민이에요. 지금도 커피나 공간대여료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가 건축을 하니까, 집에 대해 고민하는 강좌를 하나 열어볼 예정이에요. 동네에 있는 가족들을 초청해서.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려고 해요."

마을 살이에 온전히 '올인'할 수 없다보니 생기는 갈등도 있다. 이날도 청년들은 일 때문에 마을 축제에 참여하지 못했다. 청년들은 그들 나름대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김소영 관장은 "오늘 같이 바쁜 날 어떻게 안 도와줄 수 있냐"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세대차이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 아줌마들은 '인정'이 중요하니까 다 퍼주는데 청년들이 보기에는 주먹구구식으로 맺고 끊는 게 없는 것 같을 수 있고. 청년들은 쿨하고 정확한 건데, 아줌마들이 보기에는 정 없어 보일 수도 있고...(웃음) 어쨌든, 그런 꼴을 보는 게 마을이에요. 우리가 다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서로 다른 그룹들, 여러 세대들이 있어야죠." 

세대간의 소통 방법은 끊임없는 대화다. 승규는 "집이 청춘플랫폼 바로 근처"라면서 "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어머님들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밤 12시까지 청춘플랫폼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어머님들과의 조합, 만약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상상하지 못했던 관계죠. 그런데 같이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이제는 익숙해요. 많이 챙겨주시고. 동네에 이웃이 생긴 거잖아요. 정도 많이 들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을 빼고는, 진짜 '고향'이라고 느껴지는 곳은 여기가 처음인 것 같아요."


태그:#1인가구, #마을, #성대골마을, #청춘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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