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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는 힌두교의 섬답게 섬 안에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원숭이들이 사는 원숭이 마을만도 여러 곳 있다. 힌두교에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이 있고 원숭이를 신성한 동물로 숭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발리의 원숭이 숲 중에서 발리(bali) 서남부에 위치한 알라스 크다톤(Alas Kedaton) 원숭이 숲을 찾아갔다. 원숭이 숲 중에서 한 곳은 가보고 싶었고, 오늘 여행 코스의 동선 중간에 알라스 크다톤이 있었다.   

알라스 크다톤은 발리에서 그리 큰 원숭이 숲은 아니지만 여행자들이 구경할 만한 원숭이들은 충분하다고 할 만큼 많이 있다. 아내가 원숭이 공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공중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다.

외국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만큼 화장실 인심이 좋은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입장료를 내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이 동네의 현지 가이드 아주머니가 우리 옆으로 붙는다. 발리는 각 지역마다 마을 공동체별로 여행 가이드들을 운영하고 텃세도 심한데 이 동네의 작은 원숭이 공원에도 가이드 텃세가 심하다. 우리와 같이 온 발리 친구 아롬도 원숭이 공원 입구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뒤에 남았다.

발리의 수많은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는 원숭이 공원이다.
▲ 알라스 크다톤 발리의 수많은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는 원숭이 공원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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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들을 만나러 알라스 크다톤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주변에 숲이 있기는 하지만 원숭이 숲이라기보다는 원숭이들이 많은 원숭이 공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원숭이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우두머리 원숭이를 만났다. 현지 가이드 아주머니가 이 동네 원숭이 무리의 대장이라고 한다. 다른 원숭이에 비해 덩치도 크고 어깨도 넓고 자세에 위엄이 있다. 사람이 보기에도 원숭이 무리를 거느리는 힘이 느껴진다.

우두머리 원숭이 사진을 찍으려는데 이 우두머리가 가볍게 얼굴을 돌린다. 우두머리는 쉽게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자존심이거나 이제 사진 찍는 것은 질렸다는 표정 같다. 아내에게 이 우두머리 원숭이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사진기를 맡겼는데, 원숭이는 나와 잠시 있더니 다른 쪽으로 가 버린다. 이 원숭이 공원이 자기 영역이라 그런지 이 우두머리는 자신감 있는 자세로 공원 안을 활보한다.

힌두교의 섬 발리에서는 원숭이를 신성시한다.
▲ 알라스 크다톤 원숭이 힌두교의 섬 발리에서는 원숭이를 신성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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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원숭이들도 사진기를 피하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않는다. 원숭이들이 사진을 찍는 데  협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숭이 옆에 와서 사진을 찍어도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여행자들이 자신들을 해치지도 않고 자신들에게 가끔 먹이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원숭이들이 반기는 사람은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땅콩을 든 사람이 땅콩을 주지 않으면 원숭이들이 사람의 옷을 잡고 늘어진다. 이 공원에서 파는 땅콩을 들고 다니면 땅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숭이들에게 다 털리기 마련이다.

평화스러운 공원에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한 서양 아주머니가 당황하며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듯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주변의 원숭이 사진을 찍다가 조금 후에 다시 그쪽을 돌아보니 한 주민이 이 아주머니에게 안경을 돌려주고 있었다. 원숭이가 이 관광객의 안경을 빼앗아 갔던 모양이다. 원숭이도 남자와 여자는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약해 보이는 여자를 공격한 것 같다.

원숭이에게 안경을 돌려받은 관광객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다.
▲ 안경을 돌려받다. 원숭이에게 안경을 돌려받은 관광객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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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현지 주민이 이 서양 아주머니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자 이 아주머니가 원숭이와 같이 있던 현지인 아저씨에게 돈을 건넨다. 안경을 찾도록 도와준 사람에게 건네는 일종의 팁인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 원숭이는 안경을 여러 번 훔쳐봤던 상습범 같이 보이고 사람에게 훈련된 원숭이 같다. 훈련된 이 원숭이가 관광객의 안경을 훔치면 현지 주민은 다시 안경을 관광객에게 돌려주면서 수익을 챙겨가는 것 같다. 아마도 원숭이는 안경을 훔쳤다가 현지인 아저씨로부터 그 대가로 먹이를 받아먹었을 것이다. 추정을 통한 심증이지만 왠지 마음이 찜찜하다.

익살스런 표정의 원숭이 상이 민망스럽게 서 있다.
▲ 원숭이 입상 익살스런 표정의 원숭이 상이 민망스럽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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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공원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크기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수컷 원숭이 상이 서 있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익살맞게 웃고 있는 원숭이 입상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손을 들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원숭이 상의 전체 몸뚱아리는 원숭이인데, 원숭이 성기가 포경수술이 되어 있고 붉게 묘사되어 있어서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어미에게 달라붙어 젖을 먹는 새끼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 새끼 원숭이 어미에게 달라붙어 젖을 먹는 새끼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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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자주 띄는 것은 모녀 혹은 모자 원숭이들이다. 원숭이도 새끼를 젖으로 먹여 키우는 포유동물이다 보니 어미와 새끼 간에 정이 두터워 보인다. 원숭이 새끼들은 어미 품 안에 안겨서 나올 줄을 모른다. 원숭이 어미에 비해 원숭이 새끼들은 작은 인형 같이 귀엽다.

사람들이 나누어준 쌀을 집어 먹을 때에도 원숭이 가족들은 함께 모여서 단란하게 먹고 있다. 나는 원숭이 가족이 모여 있는 곳에서 원숭이들의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든 말든 서로 털을 빗겨주면서 서로 간의 유대감을 과시하고 있다.

무리 생활을 하는 원숭이 가족이 사이좋게 먹이를 나누어 먹고 있다.
▲ 원숭이 가족 무리 생활을 하는 원숭이 가족이 사이좋게 먹이를 나누어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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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공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알라스 크다톤 주민들의 힌두교 사원이 있다. 발리의 힌두교 사원들마다 볼 수 있는 탑과 종루가 열대의 밀림 속에 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원의 담장 위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얌전한 자세로 차분히 앉아 있다. 현지 가이드 아주머니가 그러는데 할머니 원숭이란다.

오랜 세월을 산 차분함이 느껴진다.
▲ 할머니 원숭이 오랜 세월을 산 차분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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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힘없이 쳐다보는 할머니 원숭이의 눈빛을 보면 적대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랜 경륜 같은 것이 느껴진다. 사람에 비해 짧은 생이지만 생의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원숭이 표정이 이리도 사람을 닮았는지 감탄하게 된다. 이 공원 원숭이들이 비교적 거칠고 사납다고 하는데 이 할머니 원숭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나는 원숭이 공원을 돌아서 나오는 곳에서도 다시 놀라운 동물을 만났다. 내 생전에 처음 보는 희한한 동물들을 만났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그 동물은 박쥐였다. 나도 박쥐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덩치가 너무나 커서 박쥐인가 싶었다. 실제로 박쥐들은 박쥐답게 나무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희귀한 박쥐들은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모델료를 받는다. 아내는 박쥐들의 모습이 너무나 기괴하여 그 앞에서 사진 찍는 것마저 징그럽다고 한다. 이 박쥐들은 엄청나게 큰데 내가 알고 있는 박쥐의 크기보다 10배는 크다. 박쥐 크기가 다람쥐보다도 더 큰데, 날개를 펼치고 있으니 사람 얼굴 크기만 하다.

거대 박쥐들이 관광객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있다.
▲ 박쥐 사진 찍기 거대 박쥐들이 관광객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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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의 얼굴은 묘하게도 개의 얼굴을 닮았다. 팔뚝과 몸체를 연결하는 날개 같이 생긴 진한 갈색의 막은 마치 배트맨의 망토처럼 얇고 윤택이 있다. 박쥐는 동굴에서 천장에 매달려 이 날개 같은 막으로 몸을 둘둘 둘러싸고 있는데, 이곳의 박쥐들은 날개 막을 펼치고 매달려 있어서 그 모습이 묘하다. 징그럽게 생긴 모습이지만 어찌 보면 박쥐로서는 참 잘 생긴 위용을 가지고 있다.

이 박쥐들도 역시 박쥐들이라 얼굴을 아래에 두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날개를 펼치고 매달려 있으니 큰 성기가 드러나 보인다. 사람의 성기를 닮은 성기가 위쪽에서 자랑스럽게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마도 박쥐 암컷들에게 자신은 이렇게 강하다는 구애의 표현인 것 같다. 수컷이 바바리 같이 생긴 날개를 펼치고 성기를 드러내놓고 있으니 마치 바바리맨 같이 보인다.

배트맨 같은 망토를 두른 거대 박쥐가 성기를 드러내고 있다.
▲ 발리 박쥐 배트맨 같은 망토를 두른 거대 박쥐가 성기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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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의 신을 모시는 힌두교의 섬답게 이곳 발리에서는 박쥐도 아주 신성한 동물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 원숭이 공원의 박쥐들은 철저하게 상품화 되어 있어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원래 발리 산간의 동굴 안에 수백 마리씩 집단으로 모여서 군집생활을 하는 박쥐들인데 마치 여기에 몇 마리만 포로로 잡혀 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야행성이라 낮에는 잠을 자는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서 졸고 있는 모습이 불쌍하다.

가이드가 한 박쥐의 배를 긁어주자 옆의 박쥐가 앞발을 내밀고 있다.
▲ 나도 긁어 주세요. 가이드가 한 박쥐의 배를 긁어주자 옆의 박쥐가 앞발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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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 박쥐들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길들여져 있다. 가이드 아주머니가 어느 박쥐 한 마리의 배를 손으로 쓰다듬자 그 옆의 박쥐가 자기도 앞발을 내민다. 자기도 좀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다. 애완용으로 길러지면서 이미 사람의 손을 너무 많이 탄 박쥐들인 것이다. 박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줄이 묶여 있는 것도 아닌데, 도망도 가지 않는 것은 알라스 크다톤에서 어릴 적부터 사람 손에 길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원숭이 공원을 모두 돌고 나오자 우리를 인도하던 가이드 아주머니의 행동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가이드는 이제 우리 가이드의 본론이라는 표정으로 자기가 운영하는 옷가게로 우리들을 데려간다. 그러면서 이 원숭이 공원에 오는 여행자들은 '필히 이 옷가게를 들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심 불쾌했지만 불쾌한 기색을 그녀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나와 아내는 인도네시아 수공예 직물인 바틱(Batik) 제품이 가득한 그녀의 가게를 둘러본 후 옷이 참 예쁘다며 웃고 나왔다. 어느 상황에서도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는 것은 이로울 게 없는 행동이다.

아내는 원숭이들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원숭이 공원의 원숭이들과 거대 박쥐들을 마음껏 둘러본 것이 즐거웠다. 나는 뭐든지 새로운 이국 풍광과 전에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처음 접하면 즐거움의 향연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잠시 헤어졌던 발리 친구 아롬을 다시 만나 발리 바닷가의 석양을 만나러 출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4년 6.19일~6.24일의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35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알라스 크다톤, #원숭이 공원,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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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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