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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1월 해병대 1사단이 지뢰제거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3년 11월 해병대 1사단이 지뢰제거작전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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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이슈인 대인지뢰 문제에 한국은 둔감하다. 지난 10월 6일, 서해 최북단의 백령도 바로 밑에 위치한 대청도에서 민간인 2명이 지뢰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옹진군이 숲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벌목작업을 벌이던 중, 김아무개씨(55)와 최아무개씨(45)가 지뢰 폭발로 다리가 절단됐다. 구조대가 지뢰밭에 들어갈 수 없어서 결국 두 사람은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4살 난 딸을 두고 있는 가장인 최씨의 시신은 며칠 후에 민간인 지뢰전문가의 도움으로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계속되는 지뢰 사고

군 당국은 처음에는 사고지점이 지뢰지대에서 100m 이상 떨어진 곳이라서 지뢰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나중에 지뢰사고로 판명이 나자 인접한 지뢰지대에서 유실된 지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4일 민간인 전문가가 사고지역을 탐색해 한 시간 만에 M14플라스틱 지뢰를 포함 16개의 지뢰를 찾아냈다.

지뢰의 매설 형태로 보아 사고를 낸 지뢰는 유실지뢰가 아니라 군이 계획적으로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관할부대인 해병대에 의하면 1977년 지뢰탐지 작업을 거쳐 지뢰 사고가 일어난 야산의 지뢰매설 지역에 이중 철조망을 쳤고, 2012년에는 이 지역 철조망을 정비하고 사고지점 주변에 지뢰경고판을 새로 설치하는 등 보수작업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쟁을 위해 사용한 지뢰로 인해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 당하는 지뢰사고는 끝나지 않고 있다. 땅 속에 숨어서 희생자를 기다리는 지뢰라는 무기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필자는 몇년 전 과거 전쟁 시에 북한 지역이었던 경기도 연천 대광리 야산에서 지뢰를 발견한 적이 있다. 당시 민간인 지뢰전문가가 금속탐지기로 민가의 바로 앞에 위치한 야산 입구를 탐지한 지 30분도 안 돼 지뢰를 발견했다.

지뢰가 발견된 곳은 마을 사람들이 이불을 널거나 물건을 놓아두는 장소였다. 너무나 놀라서 우선 줄을 치고 위험 표시를 한 종이를 붙여 놓고 군 당국에 신고했다. 군은 얼마 안가서 철조망을 치고 지뢰 경고 표시를 했지만, 정밀하게 탐지하지 않아 매설 지뢰의 규모나 종류 등은 알 수가 없다.

동네 사람들에 의하면 전쟁 직후에는 그 일대가 모두 지뢰밭이었는데 민간인들이 지뢰를 제거해 논과 밭을 만들었다고 한다. 개간 중에 발견한 지뢰들은 땅을 깊이 파고 묻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을 '지뢰무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어린이 놀이터를 파보니 다량의 지뢰들이 발견돼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도처에 지뢰가 방치되어 있지만 그 전모를 알 수가 없고 대책도 없다. 대청도 지뢰사고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인지뢰는 비무장지대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정부

그런데도, 지뢰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안이하기만 하다. 1997년 9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세계대인지뢰금지협약 초안회의에서 한국정부대표는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한국에는 대인지뢰로 인한 어떠한 희생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민간인 피해가 없도록 철저하게 대인지뢰가 통제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합니다. 한국은 북한과 대치선상에 있는 155마일 비무장지대를 제외한 그 어떤 지역에도 대인지뢰를 매설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민통선 지역 마을 어디를 가도 금방 만날 수 있는 1천여 명 이상의 민간인 희생자들의 호소에 찬물을 뿌리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또 서울의 우면산, 김포의 장릉산, 경남의 원효산 등 후방지역에만 36개 이상의 지뢰지대가 있다. 그것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대회 직전에 매설한 지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무장지대 이외에는 지뢰를 매설해 놓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다.

국방부의 발표에 의하면 지뢰지대 가운데 군사목적상 불필요한 지뢰지대인 소위 미확인 지뢰지대가 전체 지뢰지대의 약 80%인 9792만여 평방미터에 달한다. 전체 지뢰지대는 안양시 면적(58.46㎢)의 약 두 배에 달하고, 그 1/4이 당장 제거해야 하는 지뢰밭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쟁이 끝나고, 군부대가 이전해 아무런 쓸데가 없어진 지뢰들을 제거하지 않아 무고한 주민들이 피해를 당하는 참담한 현실이 계속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지뢰사고를 유발하는 마을 주변의 지뢰밭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으면서 저 멀리 베트남의 지뢰제거를 돕겠다면서 한-베트남 양해각서에 서명했고, DMZ세계평화공원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도 지뢰의 불법성을 인정해

지난 2003년 9월 4일 오전 여의도에서 열린 '대인지뢰의 제거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촉구 집회에는 많은 수의 지뢰피해자들이 참석해 자신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낸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지뢰피해자인 사진 속 할머니의 왼쪽발은 의족이다.
 지난 2003년 9월 4일 오전 여의도에서 열린 '대인지뢰의 제거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촉구 집회에는 많은 수의 지뢰피해자들이 참석해 자신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낸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지뢰피해자인 사진 속 할머니의 왼쪽발은 의족이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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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엔이 마련한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는 것이다. '오타와협약'이라고 불리는 이 국제법은 1997년 12월에 성립되어 현재 162개국이 가입하고 있다. 오타와협약의 가입국은 지뢰의 생산과 사용, 수출 등을 금지하고 4년내 비축지뢰의 파괴, 10년 이내 매설 지뢰 제거, 이웃나라의 지뢰 문제 지원 등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당시에 한국을 예외조항에 넣어주면 한국과 함께 가입하겠다고 말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6년 이내에 대체무기를 개발한 후에 가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9년 10월 퇴임을 앞두고 "내가 대통령으로서 경험한 가장 큰 절망은 가장 양심적인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조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우방인 한국방어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뢰를 계속 사용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 정부는 소위 '스마트 지뢰'라고 불리는 자폭장치가 부착된 대체무기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지뢰정책을 발표해 오타와조약의 가입에 대한 약속을 뒤집고 말았다. 다만 M14 플라스틱 지뢰와 같은 탐지 불가능한 재래식 지뢰는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이웃나라들에 대한 지뢰관련 원조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정부 대표는 2009년부터 오타와협약의 가입국회의에 참석했다. 2010년 가입국회의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오타와조약 가입을 위한 검토를 시작했음을 암시했다. 또 미국은 오타와협약의 의무규정의 하나인 지뢰기금의 제공에 있어서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원을 지뢰제거 및 피해자 구원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지뢰금지운동이 시작된 1993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정부는 약 2조 3천억 원을 캄보디아, 앙골라, 아프카니스탄 등에 지원했다. 특히 미군이 매설한 베트남의 지뢰제거와 피해자 지원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2012년 12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오타와협약 가입국회의에 참가한 미국정부 대표는 오바마 정부의 지뢰정책 검토가 "곧(soon)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해 가입이 임박한 것처럼 표현했다.

그러나 미국정부가 말한 '곧'은 '2년'이라는 세월이 되었고, 지난 5월 26일 모잠비크 마푸트에서 개최된 유엔회의에 참가한 미국대표 그리피스 대사가 "미국은 가입국이 아니지만 조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어떤 대인지뢰도 갖지 않을 것이며 조약에 따른 문제의 해결책을 성실히 모색하여 가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도 미국의 비축지뢰의 폐기방침을 확인하면서 지뢰사용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한국방어의 강고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9월 23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이 한국 때문에 오타와협약의 가입을 유보한다고 발표해 실망을 주었다.

한국이 오타와협약에 가입 못하는 진짜 이유

비록 미국이 한국에서의 지뢰사용을 이유로 오타와협약의 가입을 유보했지만, 오마바 대통령은 "지뢰는 불법적(illegal)이고 무차별적 살상을 가하는 무기이다. 왜냐하면 무장분쟁이 끝난 후에도 그 치명적인 전쟁무기에 의하여 시민들이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지뢰 포기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사실상 비축지뢰파괴, 매설지뢰제거, 지뢰관련 원조 등의 오타와협약의 규정을 모두 지키기로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오타와협약에서 빠진 대천자지뢰의 사용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미국정부는 오타와 협약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견디기 힘들 것이고, 한국정부가 재래식 지뢰사용의 필요성을 이유로 버티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한국은 재래식 지뢰를 대체할 다량의 스마트지뢰를 수입하고 있고, 한국형 신형지뢰를 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입이 어려운 유일한 이유는 의무조항인 지뢰제거의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국방부가 현재의 능력으로는 지뢰 제거에 400여 년 이상 걸린다고 했으니, 오타와협약의 '10년 내 제거'가 문제인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는 재래식 지뢰의 제거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지뢰로 황폐해진 자연을 주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재국님은 연대세 교수로 평화나눔회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대인지뢰, #지뢰, #오타와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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