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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부터 일반인에 개방되는 화순적벽. 1984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후 30년 만에 일반인과 만나게 된다.
 23일부터 일반인에 개방되는 화순적벽. 1984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후 30년 만에 일반인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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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그리움 서려 있는 곳

요즘 남도 사람들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23일부터 개방되는 화순 적벽이다. 화순 적벽을 품고 있는 동복댐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1984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후 30년 만의 개방이기 때문이다.

동복댐은 광주광역시 시민의 식수원이다. 광주 시민의 60%가 이 물을 마시고 있다. 동복댐의 관리권도 광주시가 갖고 있다. 그동안 화순군과 여러 단체에서 개방을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광주시는 식수원 보호를 이유로 거절했다.

하지만 민선 6기가 들어선 후 광주와 전남의 상생발전 차원에서 광주광역시가 화순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조심스럽게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이를 반긴 것은 당연지사. 특히 화순 적벽에 대해 아련한 기억을 가진 장년층의 반가움은 더 크다. 그동안 수몰지역 주민에 한해 설과 추석 때 성묘나 벌초를 위해 출입을 허가했다.

화순 적벽 개방은 23일 적벽 문화제로 시작된다. 화순 적벽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동복댐 조성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과 지역주민의 화합 한마당이다.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이 함께 마련한다. 화순 적벽 개방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 세 차례 진행된다. 시간은 오전 9시 30분, 12시, 오후 2시 30분으로 하루 세 번이다. 화순 적벽 입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나오는 일정이다. 시간은 100여 분 정도 걸린다.

하루 동안 33인승 버스 4대가 관람객을 태운다. 하루 396명에 한해 개방하는 것이다. 화순 적벽을 돌아보려면 화순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예약없는 입장은 허락하지 않는다. 예약은 방문 2주 전부터 받는다. 관람료는 따로 없지만 버스비로 1인당 2000원을 받는다. 상수원 보호를 위해 음식물과 주류는 갖고 들어갈 수 없다. 흡연도 안 된다. 개방은 겨울철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을 빼고 연중 진행한다.

적벽문화제를 앞리는 현수막이 화순적벽 망향정에 걸려 있다. 22일 모습이다.
 적벽문화제를 앞리는 현수막이 화순적벽 망향정에 걸려 있다. 22일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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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투어 버스를 타면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망향정까지 들어간다. 버스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숲길이다. 주차장에서 망향정까지는 4.8km. 경관 조망 지점에서 보는 화순 적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3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희소성은 장엄함을 더 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도 아찔하다. 그 절벽의 절반이 물속에 잠겨 있는데도 그렇게 보인다. 절벽 앞으로 흐르는 물도 상수원답게 깨끗하다.

노루목 적벽과 보산 적벽에서 물염 적벽과 창랑 적벽으로 이어지는 동복호의 물길도 수려하다. 옹성산을 따라가는 풍광도 빼어나다. 파란 가을 하늘과 동복호의 맑은 물이 만나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망향정에서 보는 적벽은 더 아름답다. 왜 '적벽'이란 이름을 얻게 됐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이 적벽은 댐 건설로 물에 잠기기 전까지 인근 지역 학생들의 소풍 장소였다. 대학생들의 단골 MT 장소이기도 했다. 적벽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자갈과 모래밭도 넓었다. 남도의 대표적인 물놀이 장소였다.

당시 적벽의 위용은 대단했다. 거대한 절벽이 거꾸로 솟아 있고, 그 사이에 제법 위용을 뽐내는 폭포도 있었다. 협곡에 한산사라는 절도 있었다. 물길에서는 삿대를 저어서 가는 나룻배가 있었다. 이 배를 타고 즐기는 뱃놀이는 적벽의 대표적인 풍류였다. 낙화놀이도 볼만했다. 마을의 장정들이 이 절벽에 올라가 짚덩이에 불을 붙여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 불꽃송이가 맑은 물에 어리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물속에 불을 밝힌 것이다. 이 놀이는 해마다 4월 초파일 밤에 펼쳐졌다.

삼국지 '적벽대전' 떠올라

화순적벽으로 가는 길. 일반인 개방을 앞두고 임도가 말끔히 단장돼 있다.
 화순적벽으로 가는 길. 일반인 개방을 앞두고 임도가 말끔히 단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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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정 앞에서 본 화순적벽. 3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신비감에다 희소성까지 더해져 더 아름답게 보인다.
 망향정 앞에서 본 화순적벽. 3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신비감에다 희소성까지 더해져 더 아름답게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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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적벽'이라고 처음 부른 사람은 선비 최산두였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유배 온 그가 이곳의 거대한 석벽을 발견하고 '삼국지'에 나온 중국의 적벽을 떠올렸다고 전해진다. 석천 임억령은 '적벽동천'이라며 감탄했다. 적벽이 신선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조선 중종 때 유배 온 조광조는 사약을 받기 전까지 여기서 배를 타면서 한을 달랬다고 전해 오고 있다. 조선 중기 대학자 하서 김인후도 적벽시를 지었다. 삿갓 김병연도 적벽의 장관에 빠져 이 일대에서 방랑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도 젊은 시절 여기에 들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만큼 화순 적벽은 조선에서 풍광 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조선의 비경 가운데 열 손가락에 꼽히는 조선10경 중 하나였다. '화순'하면 지금은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군을 떠올리지만, 근대까지는 적벽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댐 건설로 물에 잠긴 수몰민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망향정도 볼거리다.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고향을 떠난 주민은 창랑, 월평 등 이서지역 15개 마을 5000여 명에 이른다. 이렇게 수몰된 마을의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망향탑과 망배단도 있다.

망미정 앞에서 본 화순적벽.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 앞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망미정 앞에서 본 화순적벽.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 앞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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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적벽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가을색으로 물들고 있는 절벽이 신비롭게 다가선다.
 화순적벽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가을색으로 물들고 있는 절벽이 신비롭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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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미정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이 지은 정자다. 노루목 적벽 바로 밑에 있던 것을 물에 잠기게 되자 위로 옮겨서 다시 지었다. 그때 현판을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후광 김대중이 썼다. 망미정 앞에서 노루목 적벽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

망향정 반대편으로 가면 송석정도 있다. 조선 숙종 때 석정처사 한 명이 지은 정자다.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11년 전 다시 지었다. 적벽의 옆모습과 동복댐의 잔잔한 호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 화순 적벽 찾아가는 길

화순 적벽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다. 호남고속국도 창평나들목에서 광주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고서사거리에서 소쇄원 방면으로 광주댐과 소쇄원을 지나 유둔재터널을 넘으면 백아산과 이서로 갈라지는 구산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이서 방면으로 간다. 이서면 소재지에서 주암·순천 방면에 화순 적벽 주차장이 있다. 내비게이션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 산26-4.



태그:#화순적벽, #노루목적벽, #적벽투어, #이서적벽, #장항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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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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