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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북 삐라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고 그때마다 남북정부 사이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졌다. "원점 타격"이라는 북의 위협도 계속되었지만 그냥 한때의 해프닝처럼 지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 10일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북이 삐라를 매단 풍선을 향해 고사포를 발사했고 그 중 한 발이 연천군의 한 면사무소 앞마당에 떨어졌다.

위험을 느낀 연천군민들이 대북삐라 살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건 당연한 일이고 예전과 달리 이번엔 시민단체들까지 나서 정부가 대북삐라 살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민간단체 일이라 정부가 개입할 수 없으며, 표현의 자유는 헌법의 영역이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간단체 일이라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말은 이명박 정부 이후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대북지원 단체들에겐 매우 섭섭한 얘기로 들리겠다.

표현의 자유도 그렇다. 개인의 사사로운 메신저까지 검열하겠다고 나서서 일주일에 백만명이 넘는 사이버 망명객을 만들어 낸 정부가 할 말은 아닌 듯싶다. 또 그동안 이적 표현물이란 이름으로 처벌받았던 많은 그림과 사진과 책과 유인물들은 또 무어란 말인가? 참 비겁한 변명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쟤들은 우리 편'이라고 밝히면 국민들이 덜 혼란스럽지 않을까?

대북삐라를 두고 정부는 표현의 자유라 얘기하지만 인근 주민들에겐 죽음의 공포이다. 오죽하면 분단의 불편함을 생활로 겪는 휴전선 인근 주민들이 대북삐라를 반대하고 나서겠는가.

이번엔 한 발이 떨어졌지만 다음엔 무엇이 얼만큼 떨어질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삐라 살포가 있던 10일 "북쪽에서 장사정포가 갱도에서 나와 사격 대기에 들어갔고, 남쪽에서는 F-15K 전투기가 출격 대기를 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한겨레신문 10월20일 자)이었다고 한다. 북의 사격과 남의 대응사격이 좀 더 지속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특히 이번 삐라 살포는 인천아시안게임에 북측 고위인사가 깜짝 방문하면서 남북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답답하다. 대화 상대방을 비방하면서 어떻게 회담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남북 대화의 단절이 계속되고 대립이 격화되면 삐라를 뿌리는 단체들이 그토록 존경에 마지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또한 물 건너가고 만다.

이렇게 남북 모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삐라를 계속 날리려는 이유는 뭘까?

탈북자 수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중국 쪽에서 날리는 게 현실적일 테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북의 체제를 바꾸거나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삐라의 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다.

모든 문제는 그 속에 해결책이 있다. 한 사회의 문제는 그 사회 내부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 외곽은 보조이고 기본은 내부이다. 더구나 사람도 아니고 삐라라면 그건 '보조의 보조'인 셈이다. 게다가 평양광장에서 지나가는 시민에게 나눠주는 것도 아니고 북쪽을 향해 공중에 날리는 삐라가 북측 주민에게 전달될 확률은 굳이 국토의 70%가 산이라는 지형조건이 아니더라도 매우 희박할 것이라는 것 쯤은 누구도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외부에서 그것도 대립하고 있는 남측에서 온 삐라라면 경계심만 키울 것이고 오히려 내부 결속력만 강화시켜 줄 것이다.

정보만 주면 생각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면, 가장 큰 인쇄소와 종이공장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거기에 풍선공장까지 갖고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이게 도대체 말이 돼?

북삐라를 주도하고 있는 탈북자 단체는 안팎의 열렬한 반응에 더욱 고무된 모양이다. 특히 북의 격렬한 반응이 삐라의 효과를 반증하는 것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런가?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북이 자신들의 체제나 지도자에 대한 태도가 다른 일반 나라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그간의 반공교육과 언론에서 간간이 보도되는 조선중앙tv의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 북이, 그것도 북측 정부가 자신들의 체제와 지도자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이는 삐라의 효과 때문이라기보다는 북측 정부 수준의 일반적 대응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최근 며칠동안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사이에 경고사격, 대응사격이 몇 차례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누가 먼저 공격하고 누가 나중에 공격했느냐는 중요하지도 판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그건 곧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북은 20일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단장'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통해 남측이 "도발을 지속할 경우 예상할 수 없는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고 남측은 "북측이 이러한 도발적 행위를 지속할 경우,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오는 25일 또 한 번의 대북삐라 살포가 계획되어있다고 한다. 탈북자 단체 회원들에겐 일단 이성적으로 상황을 점검해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 효과 없는 삐라 몇 장이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당길 수도 있다. 진정 전쟁을 원하는가?

지난 20일 민권연대라는 단체가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관련 유인물이 담긴 풍선을 날리려다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다. 청와대 주변이 비행금지구역이라는 게 이유였다.

DMZ도 비행금지구역이라고 한다. 오는 25일 정부가 어떻게 비행금지를 집행하는지 지켜보겠다.


태그:#대북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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