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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이인호 KBS이사장의 김구 선생에 대한 역사발언이 커다란 후폭풍을 낳고 있다.
▲ "김구 건국공로자로 볼 수 없다" 지난 22일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이인호 KBS이사장의 김구 선생에 대한 역사발언이 커다란 후폭풍을 낳고 있다.
ⓒ 채널A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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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KBS 이사장에 취임할 당시부터 '내 조부가 친일파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는 역사관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이인호씨가 지난 22일 KBS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역사발언을 해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야당, 시민단체, 일부 언론에서는 그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문제의 발언은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문으로 시작됐다. 최 의원은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인물이라고 주장한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이 이사장은 향후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김구 선생 관련 발언을 내놓았다.

이 이사장은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수반까지 하시면서 독립운동가로서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었지만 1948년 대한민국 (단독)독립에는 반대하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로서 김구 선생님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역사왜곡①] 김구 선생은 정부가 인정한 '제1의 건국공로자'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인호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이 자신을 둘러싼 편향적인 역사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이인호 KBS 이사장 "역사관 편협하지 않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인호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이 자신을 둘러싼 편향적인 역사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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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발언은 김구 선생에게 '건국 최고 훈장'을 수여한 대한민국 정부의 의사결정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후폭풍이 거세질 전망이다.

김구 선생은 스스로 직업을 '독립운동가'라고 했고 평생 소원 역시 '조국 독립'이었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그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며 그 중 최고등급은 대한민국장으로 김구, 이승만, 김좌진, 안중근, 안창호, 윤봉길 선생 등 총 30명에게 수여됐다.

그런 김구 선생을 대상으로, 공영방송 이사장이 건국과 관련된 공로를 부인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김구 선생이 차지하는 현대사에서의 위치와 KBS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위 발언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KBS가 준조세 성격의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됨을 고려할 때, 이는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이날 국정감사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이 자신의 역사관을 공격하자 이 이사장은 "제가 거듭 말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은 국민 전반의 것하고 크게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6·25 전에 태어난 세대의 90% 이상은 제가 얘기한 게 정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언론사가 지난 2008년 실시한 사회문화 여론조사 결과 '대한민국 정부수립'하면 떠오르는 인물 1위가 김구 선생이었다. 2위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이뿐 아니라 2007년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건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1위 역시 김구 선생이었다. 2위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심지어 KBS가 지난 2011년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했던 기획을 위해 전문가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 1위 자리에 백범 김구 선생을 올려놨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각각 3위와 8위에 그쳤다.

[역사왜곡②] 정부는 왜 '건국 60주년' 홍보책자를 수정했나

2008년 12월, 건국과 임시정부의 법통 논란을 촉발시킨 문화체육관광부의 홍보책자 배포와 관련해 광복회가 건국훈장을 반납키로 결의한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광복회를 찾은 유인촌(왼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영일 광복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2008년 12월, 건국과 임시정부의 법통 논란을 촉발시킨 문화체육관광부의 홍보책자 배포와 관련해 광복회가 건국훈장을 반납키로 결의한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광복회를 찾은 유인촌(왼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영일 광복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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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사장은 이날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발언을 내놓았다. 임시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발언이 그것이다. '우리가 역사 교육을 잘못했다'고 포문을 연 그는 "1919년(임시 정부 수립 때) 대한민국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통용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제가 1919년 임시정부를 정신사적으로만 인정하자는 것도 민주공화국으로서 실체적으로 대한민국이 세워져 인정받은 것이 1948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새로운 꿈' 홍보책자를 발간했다. 그런데 최초 발행본은 '임시정부를 폄훼하고 법통을 훼손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 같은 내용에 반발해 광복회가 건국 훈장을 모두 국가에 반납하기로 결의하자, 발행을 주관했던 당시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은 12월 29일 직접 광복회를 찾아 "임시정부의 법통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라며 "나라를 세우는 데 가장 고생하신 어른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마음이 아프다"고 사과했다. 이듬해 문광부는 임시정부 법통과 관련된 내용을 수정해 재배포했다.

최초 배포자료에는 임시정부를 이렇게 기술했다.

'물론 1919년 3·1운동 직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기본 이념으로 설정했고, 이로써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한국인의 정치의식으로 자라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에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었다.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었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기점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선언적·상징적 의미에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 보듬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고, 또 우리가 앞으로 굳건히 이어가야 할 정신적 자산이지만, 현실 공간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하략)'

위 내용에 대해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문광부는 임시정부와 관련된 내용을 이렇게 수정했다.

'...(중략)... 아울러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기본이념으로 설정했듯이 민주공화제는 제헌헌법 이전에도 대한민국의 기본 이념이었다. 제헌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했다고 선언했고, 현재의 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는 등 임시정부의 법통을 명문화하고 있다. 따라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 보듬어야 할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고,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도 굳건히 이어가야 할 역사적 유산이다. 대일항쟁기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임시정부와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이 대한민국의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하략)...'

이 이사장의 임시정부에 대한 '정신사적으로만 인정, 민주공화국 실체 부정' 발언은 '임시정부를 폄훼하고, 법통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최초안과 유사한 것이어서 문제가 된다. 정부에서 사과하고 수정한 역사 인식을 공영방송의 수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인호 사퇴 주장한 진보언론, 침묵하는 조중동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사설을 통해서 이 이사장의 발언을 강력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반면 조중동 등 보수성향 언론들은 사설 등을 통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24일자 '백범 김구까지 내리깎는 이인호씨의 역사관'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22일 국정감사에서 이 이사장은 백범 김구를 폄하하는 망언 수준의 발언을 했다"며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이사장 자리에 있다니 참담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런 발언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고 국민의 눈과 귀 노릇을 하는 공영방송의 수장을 계속 맡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라며 이인호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경향신문> 역시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공로자가 아니라니' 제목의 사설에서 "공영방송 이사장이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조국 독립에 헌신한 애국지사들을 모욕한 것이다"라며 "이 이사장은 즉각 국민 앞에 사과하고 자리에서 내려옴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역사학자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됐든 진보주의 역사관이 됐든 자신의 역사관을 사실과 해석에 기초해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 이사장의 위치에서 특정 역사관에 치우친 주장을 펴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자리에서 물러나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 역사학자로서 본인의 이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태그:#이인호,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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