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1부와 42부가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10개월 만인 지난 9월 18일과 19일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고 '그동안 밀린 정규직 임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린 지 한 달이 지난 24일 현재, 사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내에 연일 '판결에 문제 있다', '생산 현장 환경을 모르는 판결이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한다'는 등의 유인물이 붙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판결을 부정하는 여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진원지는 현대차 정규직 내 일부 현장조직과 반장들로, 이같은 주장들이 방송과 신문에 잇따라 보도되면서  마치 이번 '불법파견 인정 판결'이 크게 잘못된 판결인 양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지난 20일 현대차 정규직노조 내의 일부 조직을 시작으로 22일 현대차 울산공장 반장 조직, 그리고 24일엔 반장 조직 중 일부공장 반장들이 다시 유인물을 내고 이같이 주장했다.

울산공장에 '불법파견 판결' 부정 유인물 잇따라 게재

24일 현대차 울산공장 내에 붙은 엔진변속기공장 반장들의 유인물 지난 9월 18일~19일 법원의 판결을 두고 "더 이상 현장의 분열과 강들은 없어야 하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확정판결을 요청한다"고 적었다.
 24일 현대차 울산공장 내에 붙은 엔진변속기공장 반장들의 유인물 지난 9월 18일~19일 법원의 판결을 두고 "더 이상 현장의 분열과 강들은 없어야 하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확정판결을 요청한다"고 적었다.
ⓒ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현대차 울산공장 내 엔진변속기공장 반장(반장도 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은 24일 현장에 부착한 유인물에서 "1심 판결대로라면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업무성격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정규직으로 인정하라는 것"이라며 "이 판결은 현대차가 노무지휘권을 직접 행사할 수 없는 부품업체나 그 부품사의 2차 협력업체 직원까지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우리 공장 현장을 무시한 것이고, 오히려 직원의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1심 판결 후 하청지회(비정규직노조)는 투쟁을 통해 전원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겠다고 밝혀 우리의 일터인 현장이 더욱 갈등과 혼란을 겪을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며 "우리는 1심 판결을 가지고 현장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종 확정판결시까지 더 이상 현장의 분열과 갈등이 없어야 한다"며 "사법부의 현명한 확정판결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내린 사법부를 압박하는 듯한 이같은 주장은 이번 뿐이 아니다. 앞서 현대차 울산공장 830여 명의 반장 조직은 지난 22일 유인물을 내고 "이번 판결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이 원청업체의 작업지시권이었다"며 "우리가 현장을 책임지는 반장인데 (우리가 지시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작업지시를 한다는 것인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법원이 불법파견임을 인정한 요인 가운데 하나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작업지시서에 의해 일한다'고 한 판단과 상반된 것이다.

특히 현대차 반장들은 "부품업체의 하청 직원까지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나라에 적법한 기업이 있는가"라며 "사내하청 문제는 고용과 노사 합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더 이상 현장의 혼란은 없어야 하고,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며 역시 사법부를 압박하는 듯한 주장을 폈다.

이에 앞서 지난 20일엔 현대차노조 현장조직 중 하나인 '길을 아는 사람들'이 '중심잃은 불파(불법파견), 오락가락 법원 판결 문제있다'는 제목의 소식지에서 "불법 여부에 대한 기준조차 제시하지 않은 상식을 벗어난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비정규직이 기다리던 판결, 정규직은 왜 비난할까

1997년 IMF 이후 정규직노조의 묵시적인 합의 하에 등장한 현대차 공장의 파견 근로자는 이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급기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과 처우에 불이익을 받는 비정규직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호소에 지난 2004년 노동부는 조사를 거쳐 현대차 대부분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이번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가능하게 한 단서가 여기에 있었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으로 정규직 전환 목소리를 높이던 현대차 비정규직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수백 명이 해고되고, 수백 억 원의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가 하면 조합원들의 분신 등 극단적 선택이 이어졌다. 하지만 현대차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전환 목소리를 이어갔고, 결국 이번 판결을 이끌어 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이처럼 불법파견 소송에 집단으로 참여한 것은 지난 2010년 최병승 조합원이 7년을 끌어오던 정규직 인정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 주 요인이다. 그동안 법원은 선고를 3년 넘게 끌어오면서 올해도 2월 13일에서 4월 10일로, 다시 8월 21~22일에서 9월 18~19일로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며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같은 현대차 정규직 내의 잇딴 법원 판결 부정 목소리가 오히려 정규직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현대차노조는 통상임금과 관련해 회사측과 소송을 진행중이며 오는 11월 7일 1심 판결이 내려진다. 이 소송과 관련해 현대차노조 내 4개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들은 지난 20일부터 '현대자동차통상임금정상화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올바른 판결을 위한' 조합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오는 11월 2일 울산 태화강 둔치에서 대국민선전전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이 불법적 임금 착취 규정임을 밝히고 처벌을 요구한다"며 "올바른 판결을 위한 행동이 필요하기에 서명운동에 돌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근로기준법에는 단 1일을 근무해도 임금지급 의무가 있는데, 회사측이 법과 단체협약보다 하위규정을 들어 15일 미만 근무했다고 60일분 상여금 공제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현대차가 임의로 만든 규정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임금착취로 처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노조도 "사법부는 '상여금은 통상임금' 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적용하라"며 "노조는 통상임금 1심 판결 승소를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정규직 내에서 통상임금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적용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불법파견 인정 판결에 대해선 부정하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태그:#현대차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