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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민주화운동 하려면 북에 가서 하라. 거기서 민주화운동하다 잡혀서 수용소에 가든지 말이다. 남쪽 민주화운동했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생명을 걸고 했다. 중앙정보부 잡혀 가서 고문을 당하고, 구속되고, 죽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려면 북쪽에서 그렇게 해야지 왜 남쪽에서 하나. 남한 민주화운동을 배워서 북에 가서 하라."

김영만(70)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공동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탈북자단체들이 대북전단지를 살포해 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김 대표는 최근 경남에서 기자회견 등을 열어 대북삐라 살포 중단을 촉구했다.

김 대표는 1966년 9월 말에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전투중 부상을 입어 이듬해 2월 귀국했다. 김 대표는 열린사회희망연대 의장,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회장 등 다양한 시민운동을 해왔다.

지역 진보단체 회원들은 25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대북삐라 중단을 요구하며 '풍선 날리기' 행사를 열 계획이다. 김 대표와 24일 오후에 나눈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영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공동대표.
 김영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공동대표.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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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 살포한 삐라를 본 적 있나?
"1980년 초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장충체육관에서 당선될 무렵이었다. 북에서 온 삐라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친구 만나러 서울에 갔는데, 서울 구파발보다 훨씬 더 북쪽인 곳에서 본 기억이 있다. 서울 외곽지역이었는데, 친구가 거기에 살아서 갔다. 길에 삐라가 떨어져 있었고, 통일 방안과 관련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당시 호주머니 넣어 두면 큰일 날 일이니까 보고 바로 버렸다."

- 그 때 삐라가 많이 날아왔나?
"친구가 많이 온다고 하더라. 거리에서 삐라를 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때만 해도 '통일'이라든지, '연방제통일방안'이라든지 하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 때는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 북한 삐라를 보고 믿는 사람이 있었나?
"모르겠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당시 서울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 시절에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 당시 삐라에 대해 언론 반응은?
"언론에서 본 일은 없다. 사람들 이야기를 드고 많이 날아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과 완전히 거꾸로다. 당시에는 북에서 상당히 공세적으로 삐라를 보냈다. 삐라 내용은 남쪽에 대한 비난보다는 통일방안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주로 연방제 통일방안 내용이었다."

- 월남전 참전한 것으로 아는데 그 때 심리전 차원에서 삐라 살포는 없었나?
"한글로, 그것도 인쇄가 아닌 볼펜으로 일일이 적은 삐라를 군부대 주변에서 본 적 있다. '여러분이 여기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데, 그것 때문에 부모들이 고향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북조선으로 오면 영웅으로 대접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베트남인데도 북에서 제작해 뿌린 삐라로 보였다. 그 삐라를 보는 순간, 북한군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삐라가 군대 주둔지 주변에 살포된 것이다."

- 당시 그 삐라를 본 군인들의 반응은?
"공식적으로 북한군이 월남전에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삐라를 보는 순간 그 전쟁에 북도 개입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는 워낙 반공주의 교육을 철저히 했는데, 그런 삐라를 보니 무서웠다. 삐라를 보고 북으로 넘어간 군인이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북에 대해 할 말 있으면 다른 방법 찾으라"

- 요즘 대북 삐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체들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탈북자단체 아닌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탈북자들이 남쪽에 왔으면 사회에 적응해 편안하고 무사히 살아야 한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픈 바람은 진보나 보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같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은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파주 지역 주민들은 삐라 살포에 반대하지 않나. 그 분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 삐라를 살포하는 탈북자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은 북에 사는 게 힘들고, 무엇인가 신변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내려온 것 아닌가. 그런데 이곳에 와서 남한 주민들의 생활과 생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사회에 이익을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남남갈등까지 일으키고 있다. 몇몇 사람 때문에 탈북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다."

- 그들은 북한 주민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것이라는데.
"거꾸로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는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사람이 많았다. 남한에서 민주화운동 인사가 북에 가서 남한의 민주화나 인권을 위해 삐라를 남쪽으로 보냈다고 상상해 보자. 오히려 독재자를 도와주고, 그것을 빌미로 독재를 더 공고하게 하는 거 아니겠느냐. 거꾸로 생각해 보면 지금 탈불자단체가 하는 짓이 진정 북의 민주화나 인권을 위해 하는 짓인지 의문이다.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북한 주민의 자유를 바라는 사람들이 탈북해서 남한 국민의 자격을 얻었다면, 남한에서 잘 적응해서 살면 문제가 안 된다. 남한 사회를 위험과 불안에 빠뜨리는 탈북자가 있다면 제3국으로 추방하면 좋겠다. 그런 탈북자는 국민 자격을 발탁해서 제3국으로 보내는 법을 만들었으면 한다."

- 삐라 살포는 언론 자유라고 하는데.
"최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논란이다. 설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박 대통령은 연애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설 의원은 '연애를 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 명예훼손도 아니다. 요즘 검찰에서 하는 '사이버 사찰'도 마찬가지다. 그런 언론의 자유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남남갈등 일으키고 남한 주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를 언론자유로 묵과할 수 있나.

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연설을 하거나, 교육하거나 방송에 나가서 말하면 된다. 그럴 때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 자유와 차원이 다르다. 전혀 다른 영역이다."

-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법이 있고 없고 간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줘야 하는 게 나라에서 할 일이다. 삐라를 날리면 당장 총알이 날라 오는 판인데, 국민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차원이라면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법 이전에 안전의 문제다. 국가라면 당연이 해야 할 일이고, 군대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국가도 군대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기본 아닌가."


태그:#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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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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