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으로 프로야구 그라운드에 복귀한다. 사진은 지난 9월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고양원더스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알리고 있는 김 감독.

'야신'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으로 프로야구 그라운드에 복귀한다. 사진은 지난 9월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고양원더스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알리고 있는 김 감독. ⓒ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팬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졌다. 그리고 '야신' 김성근 감독이 돌아왔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 사령탑에 올라 3년 만에 프로 무대로 복귀하면서 야구판이 온종일 들썩였다.

한화는 지난 25일 김성근 감독과 3년 계약을 맺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화는 많은 구단이 원하면서도 꺼렸던 김성근 감독을 승부수로 선택했고, 총액 20억 원이라는 거액으로 자존심을 세워줬다. 이로써 김성근 감독은 오는 2017년까지 한화를 이끌게 된다.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만남이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사실상 구단보다 팬들이 선택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구단이 김성근 감독을 놓고 고민하자 팬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 기폭제가 됐다. 팬심보다 구단 경영진의 입맛에 따라 사령탑을 결정하는 프로 야구 관례에 비춰보면 엄청난 파격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한화 팬들의 김성근 감독 영입 청원 페이지 갈무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한화 팬들의 김성근 감독 영입 청원 페이지 갈무리. ⓒ 다음 아고라 누리집 갈무리


'야신' 김성근의 파란만장한 감독 인생

야구를 넘어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 김성근 감독처럼 파란만장한 사령탑 경력을 가진 인물도 드물다. 김성근 감독이 지금까지 맡았던 팀이 한화를 포함해 7개나 된다. 그만큼 만남도, 작별도 많았다. 1984년 두산의 전신 OB 감독을 맡으며 사령탑으로 데뷔한 김성근 감독은 코치진 인선을 놓고 구단과 마찰을 빚다가 결별했다.

넥센의 전신 태평양과 삼성을 잠시 이끌기도 했던 김성근 감독은 1996년 만년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최약체 쌍방울 사령탑으로 부임해 2년 연속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며 부족한 전력을 갖고도 어떻게든 성과를 내는 남다른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이 명장 반열에 오른 것은 2001년 LG를 맡으면서다. 당시 감독 대행으로 LG를 이끌기 시작한 김성근 감독은 이듬해 정식 사령탑에 올라 하위권이었던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뚫고 한국 시리즈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LG는 한국 시리즈에서도 최강의 전력을 갖춘 삼성과 프로 야구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펼친 끝에 준우승을 거뒀고, 당시 삼성을 이끌던 김응용 감독이 "야구의 신과 대결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되며 김성근 감독은 우승 대신 '야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독특하고 고집스러운 야구 철학과 소신으로 무장한 김성근 감독은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 끝에 준우승을 차지하고도 팀을 떠났고, 잠시 공백기를 가진 뒤 2007년 SK 사령탑에 오르면서 화려한 전성기를 열기 시작했다.

김광현, 정근우, 최정 등 최고의 스타를 발굴한 김성근 감독은 거의 매년 한국 시리즈에 올라 세 차례나 우승을 차지했고, SK 역시 김성근 감독과 함께하며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재계약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구단 프런트와 충돌을 일으켰고, 결국 2011년 시즌 도중 해임되며 씁쓸한 작별을 했다. 뛰어난 지도력과 성적에도 프런트와의 잦은 마찰 때문에 함께하기를 꺼리는 구단들이 늘어났고, 결국 김성근 감독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로 무대를 떠나 국내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이끌었다.

한화가 김성근 감독을 선택한 이유


 한화이글스의 차기 감독은?

한화 이글스 ⓒ wikimedia

부진한 선수들이 모인 고양 원더스에서도 김성근 감독은 3년간 20명이 넘는 선수를 프로 구단에 입단시켜 새로운 야구 인생을 만들어줬다. 지난 9월 고양 원더스가 전격 해체되고 올 시즌 프로야구 사령탑에 칼바람이 불어닥치면서 다시 김성근 감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역할과 상황에 걸맞은 지도력으로 리빌딩과 성적 향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감독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강력한 카리스마와 특유의 '까칠함'이 구단들을 망설이게 했다. 

같은 이유로 한화 역시 팀 사정상 김성근 감독이 최적의 선택임에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한용덕 단장 특별 보좌역이나 이정훈 2군 감독 등의 '내부 승격'을 고민하기도 했다.

사령탑 선임이 늦어지자 오랜 부진에도 참고 응원하며 '보살'로 불리던 한화 팬들이 마침내 팔을 걷고 나섰다. 김성근 감독을 영입해달라는 인터넷 청원이 쏟아졌고, 일부 팬은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펼쳤다. 결국 한화는 고민 끝에 김성근 감독 선임을 전격 발표했다.

물론 한화가 팬들의 여론에만 기대 김성근 감독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한화는 3년 연속 최하위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올 시즌 신생 구단 NC 다이노스의 돌풍과 KT 위즈가 가세한 10개 구단 체제가 되는 2015년. 한화의 선택에는 자칫 프로야구 사상 첫 10위라는 불명예 기록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묻어있다.

한화는 2008년부터 7년 연속 '가을 야구'를 즐겨보지 못했다. 최근 3년 연속 최하위를 비롯해 최근 6년간 5차례나 꼴찌를 기록했다. 일본에서 김태균이 돌아왔고, 130억 원을 들여 정근우와 이용규를 영입했다. 여기에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지만 실망만 남겼다.

시험대 오른 '김성근 야구'

한화가 원하는 것은 성적 향상을 넘어 김성근 감독의 '전매 특허'라고 할 수 있는 혹독한 훈련과 철저한 조직력으로 패배 의식에 젖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꽃 피우고 팀을 뿌리부터 개혁해달라는 것이다.

한화는 초라한 성적에도 선수 구성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타선에서는 이미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 등 걸출한 스타를 보유하고 있고 김경언, 송광민, 강경학 등이 더 성장한다면 남부럽지 않은 공격력을 갖출 수 있다.

류현진이 떠난 마운드도 침체기에 빠졌으나 아시안 게임 국가 대표로 선발된 이태양을 비롯해 안영명, 윤규진 등이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유창식, 김혁민 등도 김성근 감독의 손길을 거치면 얼마든지 더 좋은 투수로 성장할 수 있는 재목들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못지않게 구단 프런트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동안 뛰어난 성과에도 김성근 감독이 구단과 얼굴을 붉히며 결별한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프런트도 전폭적인 지원과 활발한 소통으로 사령탑의 힘을 실어줘야 한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한화는 내년 시즌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스타 선수 영입도, 김응용 감독도 살려내지 못한 한화로서는 김성근 감독에게 만병통치약 같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만약 김성근 감독이 한화에서도 성공을 거둔다면 역시 최고의 명장이라는 화려한 찬사가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김성근 감독마저 실패한다면 한화는 더욱 깊은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프로 야구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만남이 과연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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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한화 이글스 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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