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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밤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TV를 보시던 아버지께서 채널을 돌렸을 때 TV에서는 '대학가요제'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이날 마지막 출연자라며 사회자가 소개한 이는 밴드 '무한궤도'였습니다. 우연찮게 아버지는 채널을 돌리지 않으셨고 저도 그저 채널을 돌리지 않았기에 물끄러미 보게 됐죠.

그 순간, 제가 알고 있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묘한 매력의 노래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어린 나이였기에 자세한 건 알 수가 없지만 머리를 기른 한 남자가 부르던 묘한 목소리와 흥겨운 리듬, 그리고 급작스럽게 느리게 나가는 마지막이 저를 놀라게 만들었죠. 그렇게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이 밴드는 대학가요제 대상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그 노래의 제목은 '그대에게'. 이것이 신해철이라는 가수, 뮤지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당시 신해철은 외모와 노래가 '받쳐 줬기'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대에게',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등이 그 때 나왔죠. 요즘 아이돌의 인기를 능가했던 신해철은 그 인기만으로도 충분히 연예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해철은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밴드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더 어려운 길을 가려했죠. '가수'가 아닌 '뮤지션'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가 인기에 안주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겐 복음이었죠. 안 그랬으면 우리는 'N.E.X.T'라는 밴드를 보지 못했을 것이고 '날아라 병아리',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의 명곡을 들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쉽지 않은 길'을 가며 뮤지션이 된 신해철

 28일 오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고 신해철의 빈소가 마련됐다. 17일 장협착 수술을 받은 신해철은 22일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고,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에 머물렀으나 27일 오후 8시 19분, 46세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했다. 발인은 31일 오전 9시.
▲ 고 신해철, '왜 하늘은...' 28일 오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고 신해철의 빈소가 마련됐다. 17일 장협착 수술을 받은 신해철은 22일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고,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에 머물렀으나 27일 오후 8시 19분, 46세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했다. 발인은 31일 오전 9시.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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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분명 우리 음악에 있어서 큰 혁명가였습니다. 물론 서태지가 랩을 보급하고 김건모가 레게를 도입하며 다양한 장르가 판을 치던 1990년대 음악계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음악의 질을 높인 이는 신해철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노래방에서 부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듣고 또 들어야 하는, 그래야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곡들이었고 우린 그 의미를 찾기 위해 그의 음악을 정말 듣고 또 들어야 했죠.

자, 이렇게 뮤지션으로 성공했으면 계속 그 길로 가면 좋았겠죠. 하지만 신해철은 또 어려운 길을 갔습니다. 그는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날리고 무능한 어른들이 이끄는 세상을 직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음악 장르만 받아들였을 뿐 그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 음악계에도 쓴소리를 날렸습니다.

그는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힘들었을 때 누가 도와줬는가? 모차르트도 아니고 베토벤도 아니었다. 바로 '굳세어라 금순아'였다" 그 말에 청중 몇몇이 웃었습니다. 그러자 신해철은 정색을 하고 말하죠. "왜 웃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저 '옛날 노래'라고 치부했던 노래들의 정신이 오히려 지금의 정신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그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죠.

신해철에게 '마왕'이라는 별칭을 갖게 해 준 '고스트 스테이션', '신해철의 음악도시'는 바로 그의 생각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해방구였던 셈이었죠. 밤 12시 혹은 새벽 1~2시가 되면 나오던 그의 목소리는 음악과는 또다른 묘미를 줬습니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새벽 공기를 타고 흐르던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청춘들은 희망과 공감을 얻었고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얻었습니다. 기존의 세계를 깨고 싶은 것, 그것이 청춘이었으니까요.

청춘들의 아픔을 자신만의 '독설'로 말한 신해철

'마왕'은 상처받은 청춘들을 달래려 했습니다. 그러나 상처를 만지는 것만으로 끝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청춘들의 아픔을 자신만의 독설로 말하고 싶어했습니다. 그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TV 지지연설을 한 것도,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것도 모두 그 일환이었습니다. '연예인이 왜 나서냐'라는 비난도 그에겐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감싸고 싶어했던 '마왕'이었으니까요.

그의 노래 '해에게서 소년에게' 가사대로 그는 남들이 뭐래도 믿는 것을 포기하거나 움츠러들지 않았고 그의 꿈을 비웃는 자를 애써 상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마왕'은 오히려 무서운 존재가 아닌 든든한 존재가 됐습니다.

그가 얼마 전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해서 한 말이 있습니다.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또 그 꿈이 행복과 직결된 것은 아니다.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그 말을 들으니 지금까지 제가 '쉽지 않은 길을 갔다'라고 말한 것이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쉽지 않은 길'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갔고 그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줬습니다. 그리고 '딴따라'라고 매도하려했던 어른들에게 '나는 당당한 음악인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어쩌면 그는 가장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신은 그 행복한 시간을 이렇게 짧은 시간만 허락하신 걸까요? 앨범을 내고 방송 출연도 결심하며 '또 하나의 행복'을 추구하려던 그를 왜 그렇게 빨리 데려갔을까요?

신해철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단순히 그의 음악이 좋았던 이유도 아니었고 재능있는 뮤지션을 잃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며 말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내려 하는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생각없는 독설, 영혼없는 속삭임이 '청춘을 향한 격려'로 포장되고 이것이 점점 대세가 되어가는 지금, 이를 말뿐이 아닌 작품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려했던 사람을 잃었다는 것만큼 큰 상실감은 없기 때문입니다.

"2014년은 너무나 잔인한 해가 될 것 같다"

신해철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한 누리꾼은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만약 마왕마저 데려간다면 2014년은 너무나 잔인한 해가 될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경주에서 지붕이 무너져 젊은 청춘들이 죽고,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들이 꽃다운 나이에 사라지고, 판교 환풍구 사고로 우리의 부모들, 친구들이 사라진 잔인한 상황에 그가 그렇게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의 노래를 지금도 듣습니다. 당분간은 예전의 그 때로 돌아가 그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신해철의 노래가 준 의미를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느껴야할 것 같습니다.

'미쳤다'라고 비난받아도 행복했을 그의 모습을, 그리고 그의 행복을 보며 진정한 행복을 얻었던 우리들의 젊음을. 그리고 그가 노래를 통해 질문했던 답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대답할 수 있나/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중)


태그:#신해철, #마왕, #대학가요제, #무한궤도,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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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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